완득이 엄마, 구두 수선사, 래퍼, 전 군법무관 등 이색 경력자들 눈길

이자스민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의미는 많이 퇴색됐다. 변호사 의사 약사 등 사회적으로 '양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부분 혜택이 돌아갔다.

그러다 보니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받기 위한 '물밑거래'가 공공연했던 것도 사실이다. 공천헌금이라는 말도 괜한 것이 아니다. 총선 전후로 늘 공천헌금이 말썽이 되곤 했다.

얼마 전에는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한 고발자가 "새누리당의 모 비례대표 의원이 2008년 총선 직전 상위 순번을 받기 위해 당 실세에게 12억원의 공천헌금을 제공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총선을 앞두고 개혁, 쇄신 경쟁을 벌이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비례대표 영입에서도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두 당은 비례대표 원래 취지를 되살리는 차원에서, 소외된 계층과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차원에서 이색 경력을 가진 인사들을 비례대표로 공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새누리당, 구두 수선사

김디지
조동성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인재영입분과 위원장은 20여 개의 단체와 만나는 과정에서 200여 명을 추천 받았다. 공식적인 채널 말고 개인적으로 조 위원장을 찾은 사람도 제법 된다.

지금까지 거론된 인사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완득이 엄마'다. 영화 '완득이'에 출연했던 필리핀 귀화 여성 (35)씨도 새누리당 영입 대상 리스트에 올랐다. 씨는 필리핀에서 의대를 나온 뒤 한국인과 결혼했으며, 현재 이주여성 봉사단체를 이끌고 있다.

구두 수선사 김병록(53)씨도 주목을 받고 있다. 11세부터 구두 수선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김씨는 자신의 봉사활동 경험을 적은 '낮은음자리의 행복'이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탈북 여성 박사 1호'인 이애란(48)씨도 영입 대상으로 꼽힌다. 이씨는 1997년 부모, 갓난아이와 함께 탈북한 뒤 국내에 정착했고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이씨는 북한전통음식연구원장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비례대표의 경우 전략 영입(75%)과 국민배심원단(25%) 두 갈래로 공천할 방침이다. 국민배심원단은 전문가 50명과 국민 당원 공모 50명 등 총 100명으로 구성된다.

곽정숙 의원
민주통합당, 젊은 래퍼

민주통합당도 '2030' 젊은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그 결과 내놓은 작품이 '청년 비례대표'. 민주통합당은 25~35세 청년을 대상으로 지원자를 모집했으며, '슈퍼스타 K' 방식의 경선을 통해 남녀 2명씩을 상위 순번에 배치하기로 했다.

2008년 18대 총선 때 서울 강남구 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래퍼 (본명 김원종)씨는 청년 비례대표를 신청했다. 사회 비판적인 음악을 추구해 온 김씨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에는 자신의 울음소리를 담은 추모곡을 냈다.

1999년 연평해전 참전용사인 서명훈(34) 뉴라이트 전국연합 중앙청년위원회 사무총장도 금배지에 도전했다. 서 사무총장은 "임기 4년 동안 세비를 모두 기부하겠다"고 일찌감치 '공약'을 발표했다.

군법무관으로 복무할 때 국방부 불온서적 지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가 파면된 박지웅(30) 변호사,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만들고 싶다"는 고려대 졸업생 성덕량(25)씨 등도 비례대표로 여의도 입성을 노리고 있다.

서울대 국악과 출신으로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가 '오나라'를 불렀던 가수 이안(31ㆍ여)씨, 용인에서 치킨 배달을 하는 최용천(29)씨도 후보로 등록했다.

민주통합당은 지원자 389명 가운데 중도에 포기한 사람 등을 제외한 372명을 대상으로 의정활동 계획, 고용, 복지 대책 등을 주제로 한 논술을 제출 받아 심사에 착수했다. 심사위원은 학계, 문화계, 시민사회단체 등의 인사 30여 명으로 구성됐다.

장애인 … 연기자 김을동 의원

●18대 국회에서 눈에 띄는 비례대표는 누구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의 숫자는 총 54명. 이 중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이 22명, 민주통합당(구 민주당)이 15명, 자유선진당 4명, 미래희망연대(현 새누리당) 8명, 민주노동당 3명, 창조한국당 2명 순이었다.

하지만 18대 국회 비례대표 중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할 만한 인물은 매우 드물었다. 대다수가 법조, 의료, 경제 등 이른바 '주류' 출신들이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회 상임대표 등을 지낸 곽정숙(52) 민주노동당 의원 정도만이 비례대표 본래 취지를 살린 케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 원내 부대표를 맡기도 했던 곽 의원은 여성가족위원, 보건복지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범위를 좀 넓혀 본다면 '꼿꼿 장수'로 통했던 김장수(64) 전 국방부 장관, 육군 군단장을 지낸 김옥이(65ㆍ여) 의원, 한국노총 부위원장 출신인 강성천(72) 의원(이상 새누리당) 등도 특정직업의 대표성을 살렸다는 점에 비례대표 취지에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베테랑 연기자인 김을동(67) 새누리당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최종원 민주통합당 의원(태백ㆍ영월ㆍ평창ㆍ정선)과 함께 '유이한' 배우 출신이다. 고 김두한 전 의원의 딸인 김 의원은 친박연대(미래희망연대) 비례대표 2번을 받아 오랜 숙원을 풀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