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공천 칼자루 쥔 정홍원, 강철규 공천위원장

새누리당 정홍원
새누리당
정 '대쪽' 이미지, '공천혁명' 강한 의지
현역 절반 솎아낼듯 "반발 뚫고 가겠다"

민주통합당
강 '원칙주의자', 실물정치에도 익숙
전략공권 30%선… 탈락자 무마가 숙제

딱 하루 차이였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끄는 새누리당은 지난달 31일, 한명숙 대표가 지휘봉을 잡은 민주통합당은 지난 1일 공천위원장을 선임했다. 이로써 원내 1, 2당은 본격적인 총선 체제에 들어갔다.

새누리당은 검사 출신인 정홍원(68)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에게, 민주통합당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강철규(67) 우석대 총장에게 공천 칼자루를 쥐어줬다.

위원장 선임과 함께 공천 작업에 착수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내달 23일 이전까지 공천을 완료할 계획이다. 또 두 당 모두 지역구 공천 작업은 공천위원장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위원장에 선임된 직후 정홍원 공직후보자추천위원장은 "쓴 잔도 마신다는 용기와 신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어려움이 많겠지만 소신과 역량을 다 발휘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은 "저는 심부름을 하기 위해 온 게 아니다"고 강조한 뒤 "제 철학과 소신, 원칙을 갖고 공천심사에 임할 것"이라고 다부진 각오를 비쳤다.

원내 제1당 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는 새누리당이나, 내심 과반의석까지 기대하고 있는 민주통합당이나 공천이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천 결과는 4월 11일 총선은 물론이고 12월 18일 대선에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부자 정당, 법조당, 엘리트 정당 이미지에 갇혀 있는 새누리당이 이번 공천에서 국민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헤어나기 어려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막연한 기대감에 들떠 있는 민주통합당도 '냉정한' 공천을 하지 못한다면 예상 밖의 성적표에 그칠 수도 있다.

민주통합당 강철규
정 위원장과 강 위원장은 걸어온 길, 정치적 성향 등은 판이하지만 원칙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닮은꼴로 평가된다. 두 원칙주의자는 단순한 '얼굴마담'을 넘어 진정한 공천 혁명을 이루는 데 앞장설 것을 다짐하고 있다.

정홍원, 박심(朴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경남 하동 출신인 정홍원 위원장은 강직한 성품으로 주위의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다. 30년간 검찰에 몸담았던 정 위원장은 1982년 이철희 장영자 부부 사기 사건, 조세형 탈주 사건, 수서지구 택지공급 비리 사건, 워커힐 카지노 외화 밀반출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하며 명성을 쌓았다.

정 위원장은 대검 감찰부장 시절 '낮술 금지령'을 내리는 등 검찰 내부 기강 세우기에도 앞장섰다. 참여정부 때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후보로 자주 거론됐던 정 위원장은 현정부 들어서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맡았다.

법조인으로서 크게 이름을 날린 정 위원장이지만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는 개인적인 친분은 별로 없다. 정 위원장과의 인연을 묻는 질문에 박 위원장은 "(사적인 인연 때문에 발탁한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비상대책위원회,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가 온통 박근혜의 사람들로 채워졌다"는 비판을 듣는 박 위원장이 정 위원장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 위원장이 '박심(박근혜의 마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 위원장은 '청렴' '대쪽'으로 통하긴 하지만 정치적 경험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결국 정 위원장으로서는 당을 이끌고 있는 박 위원장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입김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강철규, 친노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충남 공주가 고향인 강철규 위원장은 산업연구원 산업부장, 서울시립대 교수 등을 거쳐 참여정부 때 공정거래위원장을 맡았다. 또 강 위원장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며 '공정한 경제'를 강조했다.

강 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장 재직 시절 출자총액제한제 개선, 재벌 총수의 과도한 지배력 방지, 소액주주의 권리 향상 등 다양한 시장경제 개혁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민주통합당은 원칙주의자인 강 위원장이 당내 여러 계파의 갈등을 극복하고 공정한 공천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강 위원장이 친노 그림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강 위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손발을 맞췄다. 강 위원장의 전격 발탁도 한 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인사라는 후문이다.

강 위원장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 공직생활의 전성기를 누렸다. 정홍원 새누리당 위원장과 비교하면 '실물정치' 감각은 한 수 위겠지만, 친노 그룹과 함께 구 민주계의 눈치도 전혀 안 볼 수는 없을 거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홍원, 저항과 반발 뚫는 게 과제

정홍원 위원장과 강철규 위원장에게는 권한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이 부여됐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영향에서 100%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한계'가 지적되기도 하지만, 정 위원장과 강 위원장은 공천 혁명을 위한 강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현역의원 25% 물갈이 등 큰 폭의 공천 쇄신을 이미 예고한 상태다. 박 위원장과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는 권영세 사무총장은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25% 강제 탈락과 전략지역을 감안하고, 이미 용퇴한 분들을 고려할 때 어느 지역이든 (현역의원이) 절반 가까이 탈락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벌써부터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근거가 불분명한 '살생부'가 나도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친이계 주요인사들은 사지(死地)로 내몰리거나, 아예 공천에서 배제될 거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 8일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백의종군을 선언하긴 했지만 착잡한 심정은 감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정 위원장은 "공천은 정도(正道)로 가고, 그에 대한 저항이나 반발은 뚫고 가겠다"며 "공천 작업을 양심껏, 사심 없이 진행한다면 그에 대해서는 제가 위원장으로서 방패막이가 돼야 한다"며 다시 한 번 소신 공천을 예고했다.

강철규, 전략 공천이 성패의 가늠자

민주통합당은 무조건적인 물갈이론은 배제한 채 모바일 투표 등 완전국민경선제를 통한 자연스러운 쇄신을 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새누리당보다 현역 교체 폭이 적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난항이 예상된다. 민주통합당은 17대 대선 직후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 때는 심각한 인물난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다. 당 지지율 고공행진과 맞물려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은 예비후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따라서 강 위원장이 이끄는 공심위가 중점을 둘 부분은 전략 공천이다. 완전국민참여경선의 경우 경선에 참여할 예비후보 2~4명만 추리면 임무 완수다. 그 틀 안에서 후보들끼리 승자를 가리면 된다.

그렇지만 전략 공천은 대상 지역부터 후보자를 선정하는 것까지 모두 공심위가 주도해야 한다. 당 지도부는 전체 245개 지역구 가운데 최대 30%(74개)까지 전략 공천을 하기로 했다. 전략 공천이 강 위원장 성패의 가늠자인 셈이다.

정치적 상징성이 큰 서울과 경기의 주요 지역구, 당의 근간이라 할 호남의 몇몇 지역구가 전략 공천 대상으로 거론된다. 당에서 적잖은 기대를 걸고 있는 부산 경남의 일부 지역구, 충청 강원의 접전지역도 물론 전략 공천 지역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전략 공천이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예비후보로는 승산이 적다고 판단되면 당에서 중량감 있는 후보를 내는 것이다. 그럴 경우 오랫동안 밭을 갈아온 예비주자들의 반발과 저항은 불을 보는 뻔한 일이다.

줄곧 서릿발 같은 개혁을 강조해 온 강 위원장이 넘어야 할 산도 탈락자들의 반발과 저항이다. 이와 관련, 강 위원장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다소 추상적이지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들의 미래인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찾아줄 실현 가능한 방안은 무엇인가 ▲이 시대 99% 서민의 아픔을 정책적, 제도적으로 해결할 방안은 무엇인가 ▲경제의 가치와 사람의 가치가 충돌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등이다. 강 위원장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공천심사에 반영하겠다고 선언했다.

강 위원장은 "보기에 따라서는 정답이 있을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답이 없고, 사람마다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다"며 "국민과 함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짧은 답변 안에 담겨 있는지, 심사위원들이 깊은 논의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4년전 실패 다시 되풀이 말자"

■정·강 선임 배경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지난 18대 때 대검 중수부장 출신의 안강민 변호사를 공천심사위원장에 선임했다. 안 위원장은 "나는 당내 계파를 모른다"며 공천 혁명을 자신했다.

당시 공심위에는 외부인사 6명, 내부인사 5명이 포진했다. 공심위원들은 친이계와 친박계가 나름대로 적당히 안배됐다. 그럼에도 실제 공천은 '친박 대학살'로 불렸을 만큼 친이계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일각에서는 '쪽지공천'이라는 비아냥도 들렸다. 공천 결과가 발표된 직후 박근혜 위원장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깊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거대여당이 중립적인 성향의 정홍원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공천위원장으로 추대한 것은 18대 때의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민주통합당(구 민주당)은 18대 총선을 앞두고 '깐깐한 남자' 박재승 변호사를 공심위원장으로 영입했다. 박 위원장은 당 지도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만의 원칙과 소신을 내세웠지만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박 위원장은 교체 대상 인물을 선정하는 데까지는 무난했지만, 대체 인물을 뽑는 과정에서 뒷말이 무성했다. 지나치게 원칙만을 고집하다 보니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민주통합당의 '공천 혁명'은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

4년 전을 반면교사로 삼았을 때, 강철규 우석대 총장이 공심위원장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게 민주통합당의 생각이다. 강 위원장은 개혁 성향이 강한 교수 출신인 동시에 '실물정치'에도 능한 실무형 학자다. 다른 한편으로는 원칙과 융통성을 겸비한 지략가로도 불린다.

●정홍원 위원장은

생년월일: 1944년 10월 9일
출생지: 경남 하동
출신교: 진주사범학교-성균관대 법대
가족관계: 부인 최옥자(61)씨와 1남
주요경력: 사시 14회, 서울지검 특수 1, 3부장, 대검 감찰부장, 광주지검장, 부산지검장, 법무연수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강철규 위원장은

생년월일: 1945년 12월 25일
출생지: 충남 공주
출신교: 대전고-서울대 경제학과
가족관계: 부인 임규심(63)씨와 1남 2녀
주요경력: 산업연구원 산업부장, 서울시립대 교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장,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대통령 자문 반부패 특별위원회 위원, 공정거래위원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