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적 닭^오리 가공업체인 화인코리아가 지난해 3월 전남 나주 공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자사의 회생절차개시를 방해하고 있다'며 사조그룹을 규탄하고 있다.
사조그룹이 위장 계열사를 동원해 회생 절차가 진행 중인 중소기업의 채권을 매입하는 방법으로 기업사냥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대상기업은 국내의 대표적인 닭•오리 가공업체인 화인코리아다.

화인코리아 측은 최근 육계를 중심으로 축산사업 강화를 꾀하고 있는 사조그룹이 꼼수를 통한 공격적 M&A로 알짜 중소기업을 집어삼키고 있다며 언론 광고를 내는 등 사조그룹 측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사조그룹 측은 자신들이 오히려 언론플레이로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이번 공방전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동반성장 움직임에 역행한다는 측면에서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화인코리아 회생길 보이나

화인코리아의 부동산에 대한 경매절차가 중지됐다. 광주고법 민사2부(박병칠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화인코리아에 대한 부동산 경매 절차를 중지하도록 했다. 화인코리아의 법인회생 절차 신청에 대해 법원이 가부를 결정할 때까지 채권자가 임의경매를 통해 본 회사의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화인코리아는 투자나 채무변제 등을 통해 법인회생의 요건을 갖출 기회를 갖게 됐다.

1965년 오리사육 및 부화업체인 금성축산을 모태로 사업을 시작한 화인코리아는 국내의 대표적인 닭ㆍ오리 가공업체로 발전했으나 2003년과 2008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인한 소비감소와 무리한 시설투자, 재고 누적 등으로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면서 결국 회생절차개시결정(법정관리)을 받고 파산 절차를 밟게 됐다.

파산선고 이후 화인코리아 측은 채권단과의 협의를 통해 채권보장 방안을 논의하며 회생에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2010년, 2011년 최고의 실적을 올린 것도 이 같은 의지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화인코리아 측은 식품 대기업인 사조그룹의 방해로 이런 노력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조그룹이 회생 가로막아"

화인코리아는 지난 7일 일간지에 광고를 내고 "대기업의 자금력과 회생법을 악용해 중소기업을 억지로 죽여 뺏지 말라"며 "사조그룹은 윤리경영을 통해 공정경제와 경제민주화를 몸소 실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회사를 헐값에 사기 위해 사조그룹이 끊임없이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 화인코리아 측 주장의 핵심이다.

화인코리아 측은 회생의지를 불태우던 지난해 1월께 사조그룹이 접근, 마치 회생을 도와줄 것처럼 행동했다고 주장했다. 화인코리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사조그룹 사옥에서 만난 주진우 사조 회장이 "도와드릴 테니 열심히 하십시오"라고 한 다음, 위장계열사인 애드원플러스를 통해 화인코리아의 담보채권 185억원을 매입했다.

이후 사조그룹은 뜻밖에도 관할 법원에서 진행된 회생인가 심문에서 '반대'의 뜻을 밝혔고, 화인코리아가 보유한 부동산을 매각하여 채권을 상환하려 할 때마다 이를 노골적으로 방해해왔다. 순수한 채권자라면 시간이 걸리고 매각금액이 적어지는 경매방식보다는 바로 전액을 상환받을 수 있는 자산임의매각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함에도 이를 고의적으로 방해해왔다는 것. 이는 사조그룹이 담보채권만을 인수하여 회사를 헐값에 빼앗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게 화인코리아 측의 주장이다.

또한, 사조그룹은 지난해 7월, 회사를 넘기는 조건으로 50억원을 제시한 뒤, 화인코리아 측이 그 제안을 거절하자 "경매 등 템포를 빨리하겠다"라며 협박하기도 했다는 것. 이후 화인코리아는 사조그룹을 몇 차례 찾아가 회생절차에 동의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그때마다 거부당했다고 한다.

화인코리아는 자사가 보유한 현금과 부동산 매각대금 등을 이용해 채권 상환을 진행할 계획이다. 담보채권 총액 약 256억원 중 사조그룹이 보유한 채권은 약 170억원(연체이자 26억원 포함 66.6%)으로 화인코리아가 현재 지니고 있는 현금 150억원과 현금화자산 70억원을 이용한다면 바로 상환할 수 있는 액수다.

그러나 회생법상 화인코리아가 요구하는 회생계획안 가결에는 회생담보권자 75%의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조기상환 능력이 있음에도 사조그룹의 동의 없이는 사실상 가결되기 어려운 상태인 셈이다.

사조그룹 "오히려 피해자!"

화인코리아의 공격에 대해 사조그룹 측은 "경영실패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계속 언론플레이만 하고 있는 화인코리아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사조그룹에 대한 비방광고가 너무 심한 까닭에 현재 형사고발 및 민사 명예훼손 가처분을 신청해 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사조그룹 측에 따르면 화인코리아의 고정자산은 500억원 규모의 근저당에 잡혀있어 담보채무 전체를 갚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화인코리아는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을 끌어모아 전체 채권액 중 절반 정도의 회생담보권만 일단 갚은 뒤, 법정관리에 들어가 회생하기 위한 시간을 벌고 있다고 사조그룹측은 주장한다. 일단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채권자들의 압박에서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까닭이다.

사조그룹 관계자는 "현재 오리업계 전체가 적자인데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는 화인코리아의 주장은 어폐가 있다"라며 "법원이 오랫동안 회생절차에 동의해주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채권자들의 변제권이 지속적으로 침해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라는 것이다. 실제로 법원은 파산선고를 내리기까지 4차례나 관계인 집회를 열어 회생계획안을 검토했지만 결국 화인코리아의 주장은 수용되지 않았다.

화인코리아 인수계획은 왜?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사조그룹이 최근 벌이고 있는 축산 및 육가공사업 수직계열화 움직임을 진행하다 삐끗한 것으로 보고 있다. 종합식품기업을 목표로 2000년대 들어 해표식용유, 대림수산, 오양수산, 옹가네 등 거침없는 M&A 행보를 보였던 사조그룹이 축산업에서도 그 흐름을 이어가려 했다가 큰 암초를 만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조그룹은 지난 2010년부터 축산업체만 7곳을 인수했다. 2015년 축산사업에서 2조원대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중소규모 기업들에 대한 M&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 화인코리아 사태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