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견기업 신사업으로 새 활로글로벌 경기침체에 자금난 심화되자잘나가는 본업 매각 신성장 산업 육성"어중간한 변신땐 실패"'이종사업 집중' 우려도

중견그룹들이 구조조정과 신사업 진출을 통해 체질개선에 나서는 것은 순발력 있게 핵심사업을 바꾸거나 늘려 생존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성장성이 정체된 가운데 글로벌 경기침체로 업황이 나빠지고 자금악화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본업에 충실할 것이냐, 미래 성장사업을 모색할 것이냐'의 갈림길에서 변신을 시도하는 것.

이 같은 중견그룹의 도전에 재계는 기대와 함께 우려의 시각도 나타내고 있다. 물론 국내에서 두산그룹이나 STX 등이, 해외에서는 펄프회사에서 휴대폰 업체로 변신한 노키아의 성공사례가 있지만 반드시 혁신에 성공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리스크가 큰 만큼 실패할 가능성도 높고 한국경제의 허리인 중견그룹이 고꾸라질 경우 IMF 외환위기 당시 중견그룹의 부도로 우리 경제가 타격을 받았던 전례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중견그룹 스스로 치밀한 전략과 판단하에 과감하고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추구하는 동시에 정부나 금융권 등도 필요한 지원을 해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희성 한화증권 미드스몰캡 팀장은 "두산ㆍS&TCㆍSTXㆍ유진기업ㆍ사조산업 정도가 중견기업이 주력사업으로 바뀌어 성공한 케이스"라며 "하지만 코스닥 기업 중 사업을 바꿨다가 망한 경우는 기억을 다 못할 정도"라고 분석했다.

메말라가는 자금줄

중견그룹의 변신 시도는 빡빡해지는 유동성이 주된 이유 중 하나로 파악된다. 당장은 아니지만 현상유지의 끝이 그리 밝지 않다는 점이 어려운 여건에서 결단을 내리게 한다는 지적이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신에 도전하려 한다"며 "좋게 말하면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고 나쁘게 말하면 기업계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경기침체가 발목을 잡으면서 중견그룹들의 자금사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는 건설업을 사들인 중견그룹들은 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웅진그룹의 경우 지난 2007년 극동건설을 인수하면서 7,000억원 이상을 외부에서 끌어들였는데 부동산 경기가 침체국면에 접어들면서 이자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대한전선도 무리한 부동산 개발과 건설사 인수(남광토건ㆍTEC건설)를 시발점으로 돼 현재는 알짜회사를 매각하고 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고 있는 상황이다.

LS그룹은 미래 신사업을 맡은 LS산전의 순이익이 반 토막 나면서 그룹에 타격을 줬고 효성그룹도 2008년 진흥기업을 인수했지만 시너지 효과를 내기보다 막대한 투자금만 날릴 판이다.

두산그룹은 1990년대까지 맥주회사로 불렸다. OB맥주 등 그룹 매출 중 70%가 소비재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두산은 1996년 이후 OB맥주와 음료사업 부문 등을 매각하며 변신을 꾀했다. 두산은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를 시작으로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2005년 대우종합기계 (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사들여 인프라 사업 구조로 체질을 바꿨다. 박용만 ㈜두산 회장이 사석에서도 "OB맥주를 매각하지 않았으면 오늘날 두산그룹은 없었을 것"이라고 털어놓을 정도다.

두산식 구조조정 이어지나

중견그룹의 변신 바람을 두고 재계에서는 과거 두산과 비교하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웅진코웨이를 매각하는 웅진그룹의 행보가 매우 유사해 보인다는 분석이다.

서만호 우리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두산이 중공업에 집중하기 위해 본연의 사업이었던 OB맥주를 팔았던 것처럼 웅진도 태양광에 집중하기 위해 웅진코웨이를 매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웅진그룹 전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중견그룹의 변신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 수석연구원은 "변신을 시도해 성공한 케이스보다 실패한 케이스가 훨씬 많다"며 "어정쩡하게 변신을 시도한 회사들은 대부분 실패했다"고 말했다.

시멘트·금융 '동양' 화력발전 준비… 시멘트·레미콘 '아주' 저축은행 인수
■ 중견기업 승부수

웅진ㆍ이수ㆍ대성ㆍ아주 등 중견그룹들이 핵심 사업 매각과 신사업 육성, 사업다각화 등으로 새활로를 뚫기 위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그동안 적극적인 인수합병 (M&A) 등으로 몸집 불리기에 주력했다면 최근 글로벌 경기위축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강도 높은 사업조정과 함께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알짜배기 사업 찾기에 나서는 양상이다.

특히 핵심 계열사인 웅진코웨이 매각을 선언한 웅진그룹은 '선택과 집중'식 체질개선으로 제2의 창업에 성공한 두산그룹을 벤치마킹하며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착수했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시멘트와 금융이 주력인 동양그룹은 건설업체ㆍ금융회사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내년쯤 강원도 삼척시 동양시멘트 46광구 부지에 화력발전소를 착공한다. 2,000㎿급 화력발전소를 가동하면 1조5,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역시 시멘트ㆍ레미콘이 핵심인 아주그룹도 지난해 12월 아주캐피탈을 앞세워 하나로저축은행을 인수했다. 이로써 아주그룹은 아주캐피탈ㆍ아주IB투자ㆍ아주자산운용으로 이어지는 금융 부문을 그룹성장의 주력으로 갖추게 됐다. 기존 화학과 건설 위주였던 이수그룹은 정보기술(IT) 소재와 바이오 사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에너지 기업인 대성산업은 유통과 부동산개발 사업에서 회사의 새로운 미래를 찾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 신도림의 옛 연탄공장터에 주거ㆍ업무ㆍ쇼핑 복합공간인 디큐브시티를 열었다. 또 서울과 대구에 있는 60여개의 직영주유소 등 부동산에 쇼핑몰과 리조트 사업을 꾀하고 있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경기가 어렵다 보니 의외로 많은 중견기업의 변신시도가 보이고 웅진그룹도 그 중 하나가 표출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경환기자 garde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