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다툼에서 시작된 갈등, 마침내 소송으로 비화

이맹희씨
이맹희(81) 전 제일비료 회장은 '비운의 장자'다. 장자 승계 원칙이 생명처럼 지켜지는 재벌가문, 그것도 대한민국 1등 기업 삼성의 장자이지만 일찌감치 뒷방으로 밀려난 인물이 이 전 회장이다.

이 전 회장은 고(故) 이병철(1910~1987) 삼성그룹 창업주의 3남 5녀 중 장남이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부친이다. 이 전 회장은 경영권 승계 경쟁에서 밀린 뒤 국내 산간벽지나 해외를 유랑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회장은 그러나 동생 이건희(70) 삼성그룹회장을 상대를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중국 베이징 창핑구(昌平區) 후이롱관진(回龍關鎭)의 별장에 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회장이 거주하는 곳은 인공호수, 수영장, 골프장 등을 갖춘 최고급 별장으로 약 140억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7년 정도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이 전 회장은 팔순이 넘은 고령이지만 매우 건강하며, 동생에 대한 소송 진행에도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후문이다.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화우의 변호사들이 직접 베이징으로 날아가 이 전 회장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진 이 전 회장은 지난 14일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차명재산 반환 청구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제기했다. 형제간인 두 사람의 '정면충돌'은 1987년 이병철 회장 사후 처음이다.

정몽구
소장에서 이 전 회장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은 아버지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재산이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다른 상속인에게 알리지 않고 명의 신탁을 해지한다는 이유로 이 회장 단독 명의로 변경해 버렸다"며 "삼성생명 주식 824만 주와 삼성전자 주식 20주, 1억 원 등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이 전 회장은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도 삼성생명 주식 100주와 1억 원도 청구했다. 이 전 회장이 청구한 금액은 총 7,000억 원대이지만, 삼성전자 차명주식과 관련해 사실관계가 확인되면 최대 2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소송 결과가 어떻게 되든 삼성으로서는 체면을 많이 구긴 게 사실이다. 또 삼성은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으로 사실상 경영권 승계작업이 완성된 터라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잊힌' 인물이었던 이 전 회장의 '깜짝 소송'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녕대군과 충녕대군

재계에서 이 전 회장은 조선시대의 양녕대군, 이 회장은 충녕대군으로 자주 비유된다. 양녕대군은 태종의 장남, 충녕대군(세종대왕)은 3남이다. 양녕대군은 세자로 책봉되며 왕위 계승을 눈앞에 뒀으나 숱한 곡절을 겪은 끝에 동생인 충녕대군에서 보위를 내줘야 했다.

구본무
이 전 회장과 이 회장의 관계도 어찌 보면 600년 전 양녕대군과 충녕대군의 스토리와 비슷하다. 이 전 회장은 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의 책임을 지고 이병철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 전 회장은 한때 삼성전자 삼성물산 중앙일보 등 주력 계열사의 17개 직책을 맡기도 했다. 삼성그룹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에서도 이 전 회장의 대권 승계를 낙관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의 경영능력에 의문부호를 달던 이병철 회장은 일선에 복귀한 뒤 이건희 회장에게 지휘봉을 넘기기로 했다. 훗날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장남 맹희에게 경영을 맡겨 봤는데 6개월 못 돼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고 회고했다.

반면 이 전 회장은 1993년에 출간한 <묻어둔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와 사이에 상당한 틈새가 있긴 했지만 언젠가 내게 대권이 주어질 것으로 믿었다"고 썼다.

이 전 회장은 또 <묻어둔 이야기>를 출간한 이듬해인 1994년에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선대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대권을 넘기면서, 차기에는 (이)재현이한테 물려주라고 유언했다"고 주장하는 등 뼈있는 말을 남겼다.

고 이병철 회장이 62세 생일을 맞은 1972년 2월 12일 서울 장충동 자택에 모여 찍은 가족 사진. 맨 뒤에 앉은 이가 호암의 3남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며, 한복을 입은이가 장녀인 이인희(오른쪽) 한솔 고문과 5녀인이명희 신세계 회장이다. 호암의 무릎위에 앉은 이는 당시 5살이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알았다' VS "몰랐다"

소장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지난해 6월에야 비로소 자신의 상속권 침해 경위를 알게 됐다. 이 회장 측이 CJ 재무팀장에게 '상속재산 분할 관련 소명'이라는 제목의 문서에 서명날인해 서울지방국세청에 제출해 달라는 요청을 해 온 직후다.

이 문서에는 ▲선대회장이 삼성그룹 내 회사들의 주식을 실명주식과 차명주식을 포함해 모두 각 상속인에게 분할해 줬다 ▲선대회장의 상속재산은 상속 당시 모든 재산분할이 결정됐다 ▲모든 상속인들은 각자가 분할 받은 재산 이외에 다른 상속인의 재산에 대해 어떠한 권리나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또 특정 상속인이 차명재산을 국세청에 신고한 후 실명 전환하는 시점에서 다른 상속인들이 자신의 상속지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이 전 회장은 설명했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이 전 회장은 자신을 비롯한 다른 상속인들은 이 회장 측이 문서에서 밝힌 차명재산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만큼, 이 회장 측의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이 회장 측은 '차명재산에 대한 공동상속인들의 권리 존부'라는 법률의견서를 통해 ▲삼성생명 등의 차명재산은 선대회장의 유지에 따라 선대회장 사후 공동상속인들의 협의로 분할해 이건희의 소유로 하기로 했다 ▲이건희가 삼성생명의 차명주식에 대해 선대회장 작고 이후부터 독자적으로 점유ㆍ관리해 오면서 배당금을 수령했으므로 상속회복청구권의 제척기간(법이 정하고 있는 존속기간) 10년이 지났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가 2008년 4월 17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차명주식에 관해 언급했기 때문에 공동상속인들이 그때 상속권의 침해 사실을 알았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제척기간 3년이 경과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회장 측은 그러나 협의를 한 사실이 없으며, 지난해 6월 '상속재산 분할 관련 소명' 문서에 차명재산이 언급돼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상속권이 침해됐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반박했다. 다시 말해 상속권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지 않은 만큼 상속회복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직접 나선 이유 뭘까

그간 삼성그룹과 CJ그룹은 크고 작은 마찰을 빚어 왔다. 물론 이맹희 전 회장이 링 밖에 있었던 만큼 '숙부' 이건희 회장과 '조카' 이재현 회장의 싸움으로 전개됐다.

일각에서는 이 전 회장이 직접 나선 데는 향후 또 있을지도 모를 양사간의 충돌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포석이 깔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이 전 회장의 등장으로 양사 간의 갈등은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사실 삼성과 CJ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4년 이건희 회장은 사장단 인사에서 비서실 이학수 차장을 CJ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보냈고, 이 차장은 이재현 상무(현 회장) 등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1987년 12월 고 이병철 삼성그룹회장의 빈소에분향하고 나온 노태우 민정당총재로부터 조문인사를 받고있는 상주 이맹희,창의,건희씨 3형제(왼쪽부터). 주간한국 자료사진
그러자 CJ 측은 "이 회장이 회사를 빼앗으려 한다"며 반발했고, 삼성 측은 "경영을 도와 주려는 것뿐인데 CJ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 발 물러났다.

이후로도 양사는 크고 작은 신경전을 벌였다. 1995년에 3월에는 이재현 회장의 서울 장충동 집 이웃 옥상에 삼성이 CCTV를 설치하려 했다. 이 회장의 집에 누가 출입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CJ가 강하게 거부하면서 결국 삼성의 CCTV 설치는 무산됐다.

지난해 대한통운 인수를 놓고도 삼성과 CJ는 다시 한 번 격돌했다. 포스코와 연합군을 꾸린 삼성의 승리가 점쳐졌으나, 최종 승자는 CJ였다. 이 과정에서 CJ는 "삼성이 우릴 죽이려는 의도가 있고, 그 뒤에는 이건희 회장이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삼성은 "비즈니스 차원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CJ가 발끈했던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삼성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증권이 CJ의 대한통운 인수의 자문역을 맡는 상황에서 또 다른 계열사인 삼성SDS가 인수전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인수전이 끝난 뒤로도 CJ는 "삼성이 이중플레이를 했다"며 한동안 분을 삭이지 못했다.

장기전은 양자 모두 부담

삼성은 CJ를 통해 이 전 회장에게 소송을 취하해 줄 것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CJ 측도 "원만한 해결을 위해 포괄적인 노력을 하겠다"고 '원론적으로는' 화답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전 회장의 의지가 워낙 확고한 만큼 선뜻 소송을 철회하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 전 회장 측은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점을 강조하면서 승소를 자신하고 있다.

상속권 침해 회복을 요구하는 소송은 상속행위 발생일로부터 10년, 이를 상속권자가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소를 제기하도록 돼 있다. 이 전 회장 측은 이 회장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차명주식을 실명으로 전환한 것이 2008년 10월이고, 이 전 회장이 이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6월이므로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반면 이건희 회장 측의 승리를 전망하는 시각도 있다. 비록 경영권에서는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재벌가문의 장자인 이 전 회장이 차명주식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판세'를 떠나 양측이 전격 합의할 가능성도 적지는 않아 보인다. 1년 이상이 소요되는 길고 지루한 소송인 만큼, 서로에게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재벌에 대한 국민적 정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 형제들의 갈등이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진다면, 삼성이나 CJ 모두 기업 이미지에 엄청난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또 이 전 회장이 법정 공방 끝에 승리해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주식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4,151만 주, 20.76%)과 삼성에버랜드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은 40%가 넘기 때문이다.

1~3위 기업 차남이 승계
■장자 승계 왜 안되나

장자 승계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졌던 조선왕조. 하지만 27명의 임금 중 장자 자격으로 왕위를 이은 인물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6명뿐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같은 서울을 '터'로 하기 때문일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들 중 상당수도 장남이 아닌 차남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특히 삼성 현대 SK 등 1~3위 기업은 차남들 또는 그들의 2세가 그룹을 이끌고 있다.

삼성그룹의 장남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은 젊은 시절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오랫동안 유랑생활을 했다. 이번 소송이 있기 전까지 이 전 회장의 존재조차 몰랐던 사람들이 많았다.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슬하에 8남 1녀를 뒀고, 이 중 장남은 고 정몽필 인천제철 사장이다. 정 사장은 현대양행 과장, 현대건설 상무, 현대상사 부사장 등을 거치며 그룹의 후계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정 사장은 1982년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후계구도에서 지워졌다. '왕자의 난' 등 우여곡절 끝에 차남인 회장이 현대자동차그룹을 지휘하고 있고, 현대그룹은 고 정몽헌 회장에 이어 그의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맡고 있다.

SK그룹의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은 바통을 동생인 고 최종현 회장에게 물려줬다. 현재 그룹의 총수인 최태원 회장은 최종현 회장의 장남이기는 하지만 창업주를 기준으로 보면 조카다.

최종건 회장의 장남인 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은 2000년 8월에 50세의 한참 일할 나이에 별세했고, 최종건 회장의 차남인 최신원 회장이 SKC를 리드하고 있다.

반면 LG그룹은 장자 승계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다.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에 이어 그의 장남인 회장이 선봉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