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리콘밸리의 한인파워 'K그룹'

엔지니어 중심 브레인 모임… 최근엔 경영 인재까지
1600여 명 왕성한 활동

한국과 다른 벤처 생태계서 도전정신 하나로 실전 터득

실리콘밸리에서 제2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는 한국인이 있다.

페이스북과 구글에 이어 2011년 미국 벤처기업상을 받은 비키, 설립 3년 만에 나스닥에 상장한 이머신즈, 한국식 E-커머스를 미국에 소개한 사제 등은 실리콘밸리에 자리잡은 한국인 모임 K그룹 회원이 창업한 회사다. 포춘코리아는 최근 호에 실리콘밸리 한인 파워 K그룹을 집중 분석했다.

대권주자로 부상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2007년부터 K그룹 모임에 참석하고자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찾았다. K그룹은 '베이 에이리어 K그룹'의 줄임말로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는 한국인 1세대가 주축이 돼 결성한 단체다.

안철수 원장은 지난해 5월에도 실리콘밸리를 방문해 수십 명 앞에서 '21세기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한국에선 수천 명이 모인 청춘 콘서트 무대에 오르지만 실리콘밸리에선 수십 명 앞에서도 기쁜 마음으로 강의한다.

"우리 나라 여성 골퍼가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일이 없던 시절에 박세리 선수가 나타났다. 그가 미국에서 우승을 거머쥐었을 때 많은 한국 소녀들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부터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말한 '1만 시간 훈련'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 시간이 다 채워지기도 전에 한국에서 세계적인 여성 골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안 원장은 "세상에서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특정 시간이나 공간에서 집중적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사람이 롤 모델이 돼 주변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면서 "나와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여러분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K그룹에 대한 관심이 크다. 전자결제 업체 이니시스 창업자인 권도균 사장,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 공신 이택경 대표, 본엔젤스라는 엔젤 투자사를 만든 장병규 대표 등 한국 벤처 창업 1세다가 K그룹의 잠재력을 주목하고 있다. K그룹 회원은 대부분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 IT 기업에서 일하는 기술자다.

K그룹은 2007년 실리콘밸리에서 첨단 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기술자의 친목 모임으로 결성됐다. 인도 출신 엔지니어가 TIE를 통해 실리콘밸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본 터라 한국인끼리 뜻과 힘을 모아 K그룹을 만들었다. 올해 회원 1,600명을 돌파한 K그룹은 경영과 창업에 관련이 있는 한국인에게도 문을 열었다.

포춘코리아는 K그룹 회원을 살펴보면 MBA와 석사 과정을 마치는 시점인 34~36세가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인 회원이 전체 회원 가운데 절반 정도고 스탠퍼드와 UC버클리에 재학중인 20대와 실리콘밸리 터줏대감이 된 50대도 있다. 성별로 따지면 남성이 85%나 되지만 최근엔 실리콘밸리에 자리잡은 한인 여성도 꾸준히 늘고 있다.

소속을 살펴보면 명문대인 스탠퍼드대 학생이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삼성과 구글, 시스코, LG에 적을 두었다. 이건희 회장 지시로 삼성이 실리콘밸리에 소프트웨어 R&D 센터를 세웠기 때문에 삼성 소속 회원이 유독 많았다. 미국인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세계적인 정보통신 업체 구글과 애플에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들이 꽤 많아 눈길을 끌었다. 구글과 애플에서 근무하는 K그룹 회원은 30명 이상이었다. K그룹 회원은 자신이 속하는 조직에서 수석연구원이나 과장급 간부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는 K그룹 회원이 늘어나자 한국에서도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인재가 늘고 있다. 몇 차례 창업에 성공한 송영길 부가벤처스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에 도전해 크고 작은 성공을 거둔 한국인은 상당히 많다"면서 "미국에서 석·박사나 MBA를 하지 않고도 성공한 사례를 더 많이 만들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K그룹에는 30대 중반 회원이 많아 향후 실리콘밸리를 이끌 사업가를 양산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지난해 미국 최고 벤처기업상을 받은 비키 문지원 대표 "자본을 대는 다양한 벤처캐피털이 몰려있기 때문에 창업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 실리콘밸리는 벤처 생태계가 잘 조성돼 있는 곳이다"고 설명했다. 한국형 E-커머스 사제를 통해 매출 500억원을 달성한 김광록 공동 대표는 "한국에 창업 교육 기회가 많다고 하지만 실전은 교육을 통해서 배우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면서 "고객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는 실전을 통해서만 터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실패하더라도 자신이 많이 성장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선 실패한 경험도 귀중한 자산이 된다"고 덧붙였다.

기술 혁신의 상징 실리콘밸리에는 세계 곳곳에서 모인 인재가 많다. 이스라엘, 인도, 중국에서 몰려든 인재는 공부를 하거나 창업ㆍ취업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실리콘밸리 인재들은 다양한 사업을 꿈꾸고 실행한다.

사제 이기하 공동 대표는 UC버클리 박사 과정을 마치고 나서 창업했지만 실패했다. 한국에서라면 창업 실패의 충격이 꽤 컸겠지만 실리콘밸리에선 김광록, 김지희 등 공동창업자를 만날 수 있었다. 실패한 창업자에게도 기회를 주는 실리콘밸리에 있었기에 쉽사리 재기할 수 있었다.

이 대표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한국 벤처 자본은 성공한 경험이나 현재 수익을 중요시한다. 잠재력을 가진 사업 구상만으론 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선 빚을 내지 않으면 예비 창업자가 자본을 조달할 방법이 없다. 한 벤처 자본 관계자는 "성공한 경험이 있는 창업자에게 투자가 몰리면 그만큼 새로운 창업자가 설 땅이 좁아진다"고 지적했다.

송영길 사장은 "정부가 정책 자금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창업 붐을 일으키는 대신 단기 투자에 쏠리는 자금을 장기로 돌릴 수 있도록 미국처럼 주식 단기매매 수익에 세금을 무겁게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