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헤지펀드의 미래는

변동성이 큰 한국 증시는 역설적으로 헤지펀드가 성장하기에 적절한 토양이다.
유럽발 위기 코스피 폭락에 지난 연말 토종 12개 출범
설정액 합쳐 고작 1500억 최소 5억 필요 개인은 난색… 기관투자가도 아직은 꺼려
수익 방어용 전략 수십가지… 올 목표 수익률 10% 안팎
제도적 규제에도 시장 비옥 2년 뒤 고위험 전략 사용 등 전문가들, 무난한 성장 낙관

한국형 헤지펀드(hedge fund)는 성공할 수 있을까?

포춘코리아 최근호는 한국형 헤지펀드의 미래를 전망했다. 올해는 한국형 헤지펀드 원년이 되는 해다. 누가 제2의 마이클 스타인하트가 될까? 한국판 골드만삭스로 성장할 업체가 나타날까?

헤지펀드란 개인 투자가에게서 돈을 모아 증권 및 외환 시장에 투자해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이다. 최초의 헤지펀드는 미국 포춘 기자였던 알프레드 윈슬로 존스가 1949년에 만들었다. 존스는 약세장에서 손실을 회피할 수 있는 안정적인 투자 대상을 애타게 찾는 투자자에게 고수익을 안겨줬다. 1968년 80개에 불과했던 헤지펀드는 1년 만에 200개 이상으로 늘어났고, 현재 약 1만개가 세계 곳곳에서 운용되고 있다.

헤지펀드는 지난해 12월 13일 한국에도 나타났다. 정부가 지난해 9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석 달 만에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토종 헤지펀드 12개를 출범시켰다. 한국투자증권 김년재 부서장은 "지난해 코스피가 2,000포인트였는데 유럽발 재정 위기로 1,600까지 떨어졌다. 상위 10위권 주식형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 8% 이상이었다. 이제 시장이 헤지펀드를 필요로 할 때가 왔다. 장이 위험해져도 헤지펀드만큼은 수익을 지켜줄 수익률의 마지막 보루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앞의 황소 동상.
그러나 하락장에서 공매도를 남발해 주가 하락을 부추기고 금융 위기를 불러오는 헤지펀드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가 없다. 개인은 물론이고 기관 투자자 사이에서도 헤지펀드에 대한 불신이 많다. 2008년과 2009년에 헤지펀드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기관도 꽤 있다. 한국 증시는 유독 변동성이 강해 헤지펀드조차 약세장에서 수익 방어를 해주지 못했다.

여의도 증권가에선 동양자산운용 헤지펀드 운용본부 안창남 본부장을 주목한다. 안 본부장이 한국형 헤지펀드가 생기기 전부터 헤지펀드식 투자를 해왔기 때문이다. 안 본부장은 "지점장을 하다가 2004년부터 증권사 주식운용팀장을 맡았다. 주식 운용을 해보니까 위험천만했다. 잘 되는 장에선 한없이 돈을 벌지만 안 되는 장에선 속수무책이었다. 2006년부터 슬슬 롱숏 전략을 써보기 시작했다. 대단한 건 아니었고 기초적인 헤지펀드 전략이었는데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내고 안정성을 추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 본부장처럼 증권가에 헤지펀드 투자 방식을 활용한 토종 펀드 매니저가 한국 증시에도 꽤 있다. 2000년대 초 전성기를 누렸던 헤지펀드는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에 위축됐고, 한국형 헤지펀드는 지난해 말에서야 등장했다. 명색이 헤지펀드지만 설정액은 12개를 모두 합해도 1,500억원 안팎에 머무른다. 지난 5년 동안 증권가에서 관심이 쏠렸던 투자상품치고는 규모가 미약했다.

한국형 헤지펀드는 개인 투자자 최소 투자액이 5억원이다. 현금 5억원을 헤지펀드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초고액 자산가는 상위 1% 정도. 한국 자산가는 약 80%가 부동산에 투자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헤지펀드에 관심을 둘 투자자가 없다시피 한다. 신한BNP파리바 최명환 이사 "펀드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아무도 안 만났다. 주로 기관 관계자를 만났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가 은행 이자보다 수익이 많다는 이야기엔 귀를 기울이지만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말엔 고개를 돌리기 때문이다.

기관 투자자 가운데 우정사업본부가 헤지펀드 투자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가 분식 회계한 사실이 감사원 조사 결과 드러나 헤지펀드 시장에 악재로 작용했다. 국민연금은 헤지펀드 투자를 검토조차 하지 않고, 공무원연금은 헤지펀드에 투자할 의사가 없는 상황이다. 기관마저 투자를 꺼리는 현실 속에서 한국형 헤지펀드가 실적을 내기란 어렵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헤지펀드는 같은 업종에서 기업 두 개를 짝지어 오르고 내릴 때 손실을 막는 페어 트레이딩 전략과 지주회사와 자회사 혹은 보통주와 우선주의 괴리율을 활용하는 전략 등을 활용한다. 수십 가지 전략은 수익률 방어를 위해 사용된다. 헤지펀드가 하락장에서도 펀드가 깨지지 않도록 개발됐다는 의미다. 이경하 이사는 "이런 전략들에 헤지펀드의 순기능이 있다. 헤지펀드가 공매도 때문에 하락장에서 하락세를 가속한다고 말하는데 조금만 들여보면 정반대다. 하락장에서 수익을 방어해서 시장의 공포심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헤지펀드는 올해 목표 수익률을 10% 안팎으로 잡았다. 유럽 재정 위기가 정리되고 증시가 활황이면 헤지펀드보다 주식형 펀드 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올해 장이 나빴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헤지펀드 매니저도 있다. 헤지펀드가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하락장에서 손실을 줄이고 오히려 수익을 내는 데 집중한다는 뜻이다.

한국 증시는 정보 전달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외국에선 기업이 좋은 실적을 발표하면 호재지만 한국에선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곤 한다. 기업 실적에 대한 정보가 시장에 유입돼 이미 주가에 반영된다. 게다가 투자와 투기 성격이 혼재한 탓에 작은 재료에도 주가가 출렁인다. 자본시장연구원 김종민 박사는 "국내 공모 펀드들 가운데 주식형과 주식혼합형, 주식형과 채권혼합형 펀드의 상관 계수는 각각 0.99와 0.98이다. 사실상 양쪽에 차이가 없으니 다양한 전략으로 위험을 회피하는 헤지펀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한국형 헤지펀드가 빠르게 성장하면 2014년에는 자산 규모가 13조원에 이를 걸로 예상했다. KDB대우증권 이경하 이사는 적어도 2년 안에 헤지펀드가 안착할 걸로 전망했고, 동양자산운용 안창남 본부장도 2년 정도 지나면 마켓 뉴트럴 같은 고위험 전략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걸로 예측했다. 학계와 프라임 브로커, 헤지펀드 매니저 모두 헤지펀드의 성장을 낙관하고 있단 의미다.

한국형 헤지펀드는 제도적 규제가 있음에도 시장은 비옥하다. 한국 기업이 독보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자본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기에 헤지펀드 성장 잠재력도 크다. 동양자산운용 안창남 본부장은 "국내 기업이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면 외국인들이 싹 쓸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차익 거래로 돈을 벌지만 우리는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동이 심하고 쏠림이 많다는 사실은 헤지펀드 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김종민 박사는 한국형 헤지펀드가 외국에서 활동하면 앞으로 한국 증시 방파제 노릇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가 생겨 외국 헤지펀드가 한국 주식을 투매하더라도 한국형 헤지펀드가 거꾸로 외국 주식을 투매하고 한국 주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발생하자 70조원대 한국 주식을 팔았고, 원화 환율은 급등하고 코스피는 폭락할 수밖에 없었다. 김 박사는 한국형 헤지펀드를 키워야 한국 자산 시장 체질이 강해진다고 강조했다.

헤지펀드가 성숙한 외국에선 부티크 형태로 운영되는 펀드가 많다. 그러나 한국은 거대 자산운용사가 독주하는 구조다. 부티크 헤지펀드처럼 벤처 펀드가 등장해야 자산 시장 생태계가 건전해지고, 헤지펀드 스타가 등장해야 새로운 투자기법이 발전하고 외국 시장에 진출하는 선순환이 생긴다.

미국 월가에서 탐욕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헤지펀드가 스웨덴에서 투자 인구가 전체 인구의 15%에 이른다. 스웨덴에선 계를 붓듯 헤지펀드에 투자한다는 뜻이다. 걸음마를 시작한 한국형 헤지펀드가 안전한 투자 상품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갈 길이 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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