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권의 9부 능선을 넘었다."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이 지난달 있었던 정기인사를 통해 승진한 것을 지켜본 재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차장으로 입사한 지 3년 만에 승진한 김 부장의 승진속도는 다른 재벌가 자제들보다 오히려 늦은 편이다. 창업주이자 부친인 김준기 동부 회장이 올해 68세로 여전히 경영일선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 김 부장의 본격적인 대권 승계는 아직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김 회장을 능가하는 그룹 지분율, 그동안 착실히 받아왔던 경영수업 등을 미루어볼 때 김 부장의 경영권 승계 시점이 서서히 눈앞에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착실히 경영수업 중

김남호 부장은 경기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웨스트민스터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강원도 인제 제3포병여단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외국계 경영컨설팅회사인 AT커니 한국지사에서 2년간 경영 관련 경험을 쌓았다. 2005년부터 미국 워싱턴대 MBA, UC버클리 경영전문과정을 수료한 김 부장은 2009년 1월 마침내 동부그룹에 발을 내딛는다.

동부제철에 입사한 김 부장의 첫 근무지는 당진공장이 위치한 아산만관리팀이었다. 핵심 계열사인 동부제철의 생산현장 실무를 피부로 느끼면서 대형 제조업의 경영 관리 노하우를 익히게 하려는 김준기 회장의 포석으로 해석된다.

입사 3개월 만에 본사 인사팀 교육담당 차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 부장은 바로 동부제철의 도쿄지사로 파견, 일본 현지에서 영업 및 수출업무 등 실무경험을 획득한다. 김 부장은 이 기간 동안 와세다대학교에서 어학연수를 받기도 했다.

2010년 4월 본사에 복귀, 동부제철 인사팀 차장을 맡은 김 부장은 현재 기획, 인사, 영업 등 특정 업무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부서에서 업무 전반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현역으로 뛰고 있을 때 김 부장에게 전반적인 경험을 쌓게 해주려는 김 회장의 의도가 엿보인다.

동부그룹 내에서는 "(김남호 부장이) 그동안 제조 부문의 주력이었던 동부제철에서 어느 정도 실무경험을 쌓았으니 이제 곧 그룹의 다른 계열사로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금융 부문의 동부생명, 동부화재, 반도체 부문의 동부하이텍 등 그룹 대표 계열사들을 돌며 착실한 경영수업을 받은 이후 바로 경영권을 넘겨받으리라는 내용이다.

승계 필요한 지분 확보

지난달 부장으로 진급, 빠른 경영권 승계 가능성을 보인 김남호 부장이지만 여전히 평범한 중간관리자의 직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대권 승계는 아직 먼 얘기'라고 보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특별한 경쟁상대가 없는 독자인데다가 이미 승계에 필요한 지분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라 직위 자체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있던 때부터 이미 그룹의 실세였다는 것이다.

회사에 입사, 임원 승진 이후 지분 상속 과정을 밟는 여타 재벌가 자제들과 달리 김 부장은 입사 이전부터 부친인 김준기 회장보다 오히려 보유지분이 많았다. 현재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동부CNI를 살펴보면 김 부장의 지분율(18.64%)이 김 회장(13.02%)보다 높은 수준이다. 동부화재, 동부제철, 동부증권 등 상당수의 그룹 주력 계열사 지분율 또한 김 부장이 김 회장보다 높다. 보유지분으로만 따지면 이미 경영권을 승계한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현직 회장인 부친보다 김 부장의 보유지분의 많은 이유는 김 회장이 1990년대 중반부터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두고 지분증여를 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계획에 맞춰 김 부장은 2002년 10월 금융-건설 계열사들의 수장 격인 동부화재의 최대주주가 됐고, 2004년 8월에는 당시 제조 계열사의 지주회사 격이었던 동부정밀화학에서도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2007년에는 동부CNI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김 부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동부CNI는 2010년 동부정밀화학과 합병, 현재까지 사실상 전체 그룹의 지주회사로 기능하고 있다. 본격적인 '김남호 체제'로의 변화만 남았다는 재계의 전망이 가볍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김남호 부장에 대한 그룹 내의 평가는 기본적으로 호방하면서도 예의를 갖출 줄 안다는 점이다. 김 부장은 185㎝의 건장한 체격에 걸맞게 선이 굵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재벌가 자제들 중 상당수가 병역면제를 받은 것에 반해 김 부장은 강원도에서 사병으로 근무할 정도로 당찬 면도 있다.

한편 김 부장을 직접 만난 사람들은 그 성격에 대해 하나같이 겸손하고 예의 바르다는 평을 한다. 일찍부터 경영후계자로서 부친인 김준기 회장으로부터 엄격한 훈육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부장은 함께 근무하는 젊은 직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스스럼없는 대화를 즐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무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업무를 빨리 파악하고 경영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얻으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전공은 대학 때부터 경영이라는 한우물만 팠지만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폭넓은 독서를 취미로 하고 있다.

김 부장은 2005년 차경섭 차병원 이사장의 손녀인 차원영씨와 혼인했다. 누나인 김주원씨의 중매로 만난 두 사람의 결혼식은 원래 가족 단위로 조촐하게 이뤄질 예정이었다.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고 화환과 축의금도 일절 받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결혼식 2주 전 소식이 세간에 퍼지면서 수많은 축하객이 방문, 준비했던 홀 규모로는 부족해 나머지 옆 홀에 추가좌석을 마련해야만 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최악 실적 걸림돌

김남호 부장은 준비된 후계자다. 대학교, MBA, 경영전문과정 등 경영 전반에 대한 이론도 풍부하고 짧지만 다양한 실무 경험도 갖췄다. 직위는 높지 않지만 보유한 지분만으로도 경영권 승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바로 '실적'이다. 물론 아직 중간관리자에 머물고 있는 터라 실적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있지는 않지만 몸담고 있는 동부제철, 최대주주로 있는 사실상의 지주회사 동부CNI 등의 지난해 성적이 최악이라 대권 승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3조9,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동부제철은 무려 2,25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10년 순손실액 300억원에서 7배나 늘어난 셈이다. 영업이익도 2010년 1,040억에서 103억원으로 줄었고 2조원이 넘는 순차입금의 이자비용을 감당하느라 수익성이 떨어졌다. 동부CNI는 지난해 14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5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49억원의 순손실액을 기록하며 적자폭이 커졌다.

한국모바일인터넷컨소시엄(KMI)과 합작하여 나선 제4이동통신사업 신청과정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 것도 아쉬움이 남는다. 오래 전부터 통신사업에 관심을 둬온 것으로 알려진 김준기 회장은 동부CNI를 통해 KMI의 사업파트너로 나설 계획이었다. KMI가 제4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되고 통신망 구축 등 본격적인 설비 투자가 이어지면 동부CNI도 최소 5년 동안 연간 2,000~3,000억원의 안정적 매출을 기대할 수 있었다.

동부CNI의 제4이동통신사업 참여 배경에는 김 부장의 원활한 후계구도 확립도 연관되어 있다. 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이면서도 그에 걸맞는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동부CNI의 실적이 향상되면 대주주인 김 부장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KMI와 동부그룹은 또다시 제4이동통신사업권 사냥에 나선 상태다. 지난 세 차례의 실패를 거울삼아 보완해야 할 부분을 철저히 개선한 뒤 4월 중순 사업허가신청서를 당국에 제출할 계획이다. 제4이동통신사업 참여 및 주요 계열사의 실적향상이 사실상 9부 능선을 넘은 김 부장의 경영권 승계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 될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