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민주계와 호남 물갈이에 잠룡 손학규도 깊은 상처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왼쪽)와 강철규 공직선거후보자추천심사위원장이 지난달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지난해 12월에 출범한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은 구 민주당과 친노 그룹을 중심으로 하면서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까지 참여한 명실상부한 거대 야당이다.

그런 민주통합당이 지난 1월 15일 당대표 경선 이후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모바일 투표로 대변되는 국민참여경선에서 한명숙 대표최고위원과 문성근 최고위원이 1, 2위를 차지함으로써 사실상 친노(친 노무현) 그룹이 당의 전면에 서게 됐다.

한 대표는 취임 직후 "공천권은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며 당대표 경선 때 도입됐던 모바일 중심의 국민경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모바일 선거가 오히려 더 불법ㆍ조직ㆍ동원 선거를 부추긴다는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 실제로 광주에서는 한 캠프 관계자가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사를 받던 중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모바일 선거가 구 민주계와 호남 죽이기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 무원칙 공천을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4월 총선에서 원내 과반의석은커녕 1당도 힘들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노이사의 전횡

이미경
'노이사'의 전횡은 예견된 일이라는 게 중론이다. 당권뿐 아니라 총선기획단, 공천심사위원회 등 총선을 앞두고 거의 모든 요직을 '노이사'가 장악했기 때문이다. '노이사'는 친노 그룹, 이화여대 출신, 486을 의미한다.

(62) 의원(4선)을 단장으로 한 제19대 총선기획단에는 사무총장, 이용섭 정책위의장, 우상호 전략홍보본부장 등이 승선했다. 이 단장과 최영희(62) 공천심사위원(비례대표 의원)은 한명숙(68) 대표의 이화여대 직계 후배다.

강철규 위원장을 비롯한 8명의 공천심사위원회도 사실상 친노 인사들로 채워졌다.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위원장은 참여정부 때 국무총리였던 한 전 대표와 손발을 맞췄었다.

또 노영민 박기춘 백원우 우윤근 전병헌 조정식 최영희 의원 등 당내 공천심사위원들도 한 대표와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이다. 그 '덕분'에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최 의원을 제외한 6명은 지난달 24일 일찌감치 단수공천이 확정됐다.

우상호 이인영 전 의원 등 486 주자들도 무난하게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임 전 의원은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유죄(집행유예)를 선고 받았고, 전 의원은 현대자동차그룹에서 1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비슷한 형편에 처한 다른 전ㆍ현직 의원들과 형평성 논란이 이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임종석
이에 대해 신경민 대변인은 "공천심사는 4가지 지표에 따라 측정한 뒤 일정한 차이가 난 분들은 내부 기준에 의해 평가했다"며 "경쟁력에서 현격히 차이가 있는 분들을 단수후보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DJ와는 단절?

친노, 이화여대, 486 등 '노이사'의 약진과는 대조적으로 구 민주계는 죽을 쑤고 있다. 이는 단순히 호남 물갈이를 넘어 수도권 등 민주통합당 강세지역 전반에 드러나고 있는 현상이다.

평화민주당 시절인 1989년부터 당에 몸담고 있는 지용호 전 민주당 동대문 갑 지역위원장은 예선전도 치르기 전에 탈락했다. 당은 이 지역 경선 후보로 권재철 서양호씨를 확정했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 때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구 민주계로 분류되는 안규백 의원(비례대표)은 김부겸 의원이 떠난 군포 출마를 선언하고 밭갈이에 전념했다. 하지만 당은 이곳에 이학영 전 YMCA 사무총장을 전략공천했다.

이화영
'동교동계 막내'로 불리는 의원(비례대표)은 지난달 24일 2차 공천 결과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공천심사에서) 압도적 1위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단수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원칙도 기준도 지켜지지 않은 것"이라고 성토했다. 당은 마포 을을 3인 경선 지역( 정청래 정명수)으로 묶었다.

호남에서는 군산(강봉균ㆍ3선), 광주 서 갑(조영택ㆍ초선), 서 을(김영진ㆍ5선), 나주(최인기ㆍ재선), 전주 완산 을(장세환 의원ㆍ불출마), 전남 순천(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 등 6, 7곳이 전략공천지역으로 지정되는 방안이 검토됐다. 이 지역 현역들은 대부분 구 민주계다.

민주통합당 한 관계자는 "이런 식이라면 결국 DJ(김대중)와는 단절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우려했던 대로 도로 열린우리당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호남 물갈이로 약화?

호남 물갈이가 한편으로는 전 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손 전 대표는 문재인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지사와 함께 민주통합당 잠룡 삼총사 중 한 명이다. 손 전 대표는 지금은 지지율 답보 상태에 있지만 여전히 잠재력을 갖고 있는 대권 예비주자다.

손학규
부산 경남(PK)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문 상임고문이나 김 지사와 달리 경기 시흥 출신인 손 전 대표는 지역색이 옅다. 그게 큰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확실한' 표가 없다는 점에서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

손 전 대표가 지난해 12월 야권 통합과정에서 당시 원내대표와 갈등을 빚었음에도 두 사람이 다시 손을 잡을 거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호남 물갈이는 손 전 대표에게도 큰 타격이 될 수도 있다.

구 민주계의 좌장 역할을 맡고 있는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작심한 듯 거침없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박 최고위원은 "이번 공천 결과에 대해 호남, 민주계 학살, 친노 부활, 특정 학교 인맥의 탄생 같은 평가가 나오는데 이는 총선과 정권교체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며 "오해가 없도록 남은 공천에서는 철저한 검토와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지원
김유정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