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두산그룹 박용현회장서울대병원장 역임'하얀거탑' 주인공(?)그룹경영 맡으며"문화·사회 공헌 강화""후견인 역할 적임자"문화계서도 큰 기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눈높이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글로벌 두산에 걸맞은 문화 및 사회공헌 활동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2009년 3월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의 말이다. 지주회사로 전환한 두산그룹의 회장으로서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자리에 오르며 처음으로 내놓은 발언이 '문화 및 사회공헌 활동 강화'라는 점은 그간 박 회장이 품고 있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 문화예술 분야 성장에 누구보다 앞장서 온 박 회장이 한국메세나협의회의 새로운 조타수 역할을 맡게 되면서 재계 및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한국메세나협의회 새 회장으로 선임

한국메세나협의회는 지난달 21일 정기총회를 열고 제8대 회장에 박용현 회장을 선임했다. 임기는 2015년 2월까지 3년이다. 6, 7대 회장을 지낸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은 명예회장을 맡게 됐다.

박용현 두산 회장이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고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두산 제공
박 회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문화예술 수준이 경제력에 걸맞게 높아져야 한다"며 "한국 메세나 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메세나 활동의 저변을 넓히는 방안을 찾고 저소득층 문화지원 사업, 기업과 예술의 만남 등 기존 사업들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1994년 설립된 한국메세나협의회는 문화예술 지원을 통한 사회공헌에 뜻을 같이하는 기업들을 회원사로 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연강재단의 이사장도 역임 중인 박 회장은 문화ㆍ학술 지원을 포함한 사회공헌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어 한국메세나협의회의 회장으로 최적의 인물이라는 얘기를 들어왔다

국내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두산아트센터가 지난해 11월 한국메세나협의회가 주관하는 '2011 메세나 대상'에서 협의회 회장 상인 '창의상'을 수상한 것이 이번 박 회장의 회장 선임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사로서 최고의 길을 걸어

두산그룹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그룹 전체를 대표하고 있는 박용현 회장이지만 많은 이들은 여전히 의사였던 박 회장을 더욱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경남메세나협의회가 창립 4년만에 60개 결연팀과 180개회원사를 가진 국내 유일의 성공한 지역메세나로 자리잡았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열린 기업과 예술의 만남 결연식 행사. 경남메세나협의회 제공
1943년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4남으로 출생한 박 회장은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 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 외과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는 서울대학교 병원 기획조정실장, 진료부원장, 두 차례의 병원장 등 10년여간 주요보직을 맡으며 병원 경영에 참여해왔다.

박 회장은 대한외과학회 이사장과 대한병원협회 부회장을 맡으며 서울대학교 병원 밖에서도 많은 인정을 받았다. 인기 메디컬 드라마 '하얀거탑'의 주인공 장준혁의 실존 모델로 여겨질 만큼 의사로서는 최고의 길을 걸었다.

박 회장은 서울대학교 병원장 시절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서울대병원 조직문화를 바꿔 환자중심의 병원으로 개혁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병원의 문턱을 환자의 눈높이에 맞게 낮췄으며 조직원의 의식 변화와 서비스 질을 이끌었다는 평을 듣는다.

또한 박 회장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던 서울대학교 병원에 기업경영 마인드를 접목, 수익성을 개선했다. 공익성 강화를 위한 재원 확보 차원에서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에 건강증진센터와 분당 병원을 건립했고 조직 통폐합과 보직 임기제를 과감히 도입, '철밥통'이라는 병원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데도 앞장섰다. 굳어있던 병원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은 셈이다.

서울대학교 병원의 변화를 이끌던 박 회장은 정년을 3년 남긴 상황에서 돌연 퇴직을 결심했다. 은퇴 이유에 대해 박 회장은 "오랫동안 서울대학교 병원에 몸담으면서 외과 교수로나 병원 행정가로서 역할을 다했다"며 "더 이상 기여할 것이 없고 후학들에게 길을 터줘야겠다"고 밝혔다.

경영인으로도 호평가

의사였을 때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였을까. 박용현 회장이 2009년 3월 두산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첫 회장으로 임명됐을 때 주변에서는 "경영인으로 지낸 시간이 너무 짧아 실무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 않겠느냐"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두산건설에서 1,1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다가 26개 계열사, 3만5,000여 명의 그룹 직원들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를 감당할 역량이 되겠느냐는 지적이다.

이러한 주변의 우려에 두산 측은 "박 회장은 조부인 고 박승직 두산 창업주와 선친인 박두병 전 두산그룹 회장으로부터 경영을 배운 타고난 경영인"이라며 "서울대학교 병원장, 두산 연강재단 이사장, 두산건설 회장, 전경련 부회장을 거치면서 충분한 경험 및 경영 마인드도 축적했다"고 일축했다.

실제로 박 회장이 방향키를 잡은 이후 두산그룹은 투명한 경영 및 지배구조 체제를 이뤄냈다는 평을 듣는다. 박 회장은 회사경영의 주요 결정을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박용만 (주)두산 회장 등이 함께 속한 이사회를 통해 결정, 실패의 가능성을 낮춰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함께 협력사를 비롯한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체제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박 회장이다.

지난해 두산그룹은 박 회장이 수장에 오른 이후 최악의 성적을 냈다. (주)두산을 비롯하여 두산건설, 두산엔진,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등 5개 주력 상장사의 실적이 전년대비 큰 폭으로 떨어졌다. 매출은 10% 늘어났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2010년과 비교해 각각 29%, 66% 폭락했다. 유럽발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올해 박 회장이 내세운 경영 화두는 '준비하라' 이다. 박 회장은 지난 1월 신년사를 통해 "준비하는 기업만이 경쟁기업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며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하면서 지속 가능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데 한층 더 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매출 및 영업이익 목표치는 각각 29조1,000억원, 2조2,000억원으로 세웠다.

국내 문화예술의 후견인

최고의 의사이자 성공한 경영인으로 불리는 박용현 회장에게는 하나의 수식어가 더 따라붙는다. '국내 문화예술부문의 강력한 후견인'이 그것이다. 연강재단의 현 이사장이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많은 프로젝트를 기획한 박 회장에게 꼭 맞는 수식어다.

사실 박 회장이 연강재단을 맡게 된 계기는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박 회장은 2005년 박용오-박용성 전 회장들의 '형제간 다툼' 과정에서 분식 회계, 위장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져 두산그룹 전체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을 참다못한 나머지 연강재단 일에 뛰어들었다. 연강재단은 (주)두산, 두산건설, 두산중공업 등의 주요 주주다.

다소 불순한 의도였지만 결국 연강재단을 맡은 박 회장은 이후 문화예술 분야 지원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연강재단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교육과 문화'라는 연강 박두병 초대회장의 유지에 따라 1978년 설립됐다. 박 회장은 연강재단 이사장으로서 연강학술상을 제정하고, 저소득층 자녀의 방과 후 지원 등 학술과 장학 사업을 강화했다.

연강재단 이사장으로서 박 회장이 세운 가장 큰 업적은 두산아트센터를 탈바꿈시킨 것이다. 박 회장은 두산아트센터(구 연강홀)에 250억원을 투입, 국내 두 번째의 뮤지컬 전용극장을 만들었다. 두산아트센터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 회장은 학술ㆍ장학ㆍ복지 분야에 한정돼있던 두산의 사회공헌 활동을 문화 분야로까지 확장시켰다. 대관 위주의 운영이 아닌 기획공연 위주의 아트센터로 거듭난 두산아트센터는 2007년 재개관 이후 실험적이고 신선한 공연들을 잇달아 올리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두산아트센터가 운영하는 '아트인큐베이팅'은 젊은 예술가들이 가장 선망하는 공연 창작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단순히 대관에만 그치지 않고 쇼케이스와 독회, 워크숍 등의 형태로 제작을 도와 만들어지는 수준 높은 창작극은 공연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박 회장은 2009년 뉴욕 첼시지구에 비영리 전시공간 '두산갤러리 뉴욕'을 개관했다.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역량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었다. 갤러리 오픈과 함께 '두산레지던시 뉴욕'도 시작했다. '두산레지던시 뉴욕'은 작가들에게 아파트와 스튜디오를 무상으로 제공해 작품활동을 지원하고 현지 유명 미술관 큐레이터나 비평가, 갤러리 등과의 교류를 돕는 프로그램이다. 이로써 한국의 젊은 미술가들은 뉴욕에서도 마음 편히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기업들의 예술지원 사업이 대부분 국내에 머물러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박 회장의 '두산갤러리 뉴욕'과 '두산레지던시 뉴욕' 설립은 우리나라 미술계에 큰 자극을 줬다. 젊은 예술가들을 키워냄으로써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의 캐치프레이즈를 문화예술계로 확장한 것은 물론이다.

박 회장은 2008년 9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에 선임, 예술강사 4,500여 명을 배출해 전국 초ㆍ중ㆍ고등학교에 무용, 국악, 연극, 영화 등을 가르치는 예술교육을 지원했다. 당시 박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한국 메세나 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메세나 활동의 저변을 넓히는 방안을 찾고 저소득층 문화지원 사업, 기업과 예술의 만남 등 기존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학병원장까지 두 차례 역임한 능력 있는 의사이자 재계 10위권 그룹의 총수인 박용현 회장이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으로서 기업과 문화예술의 만남을 어떻게 이룰지 재계와 문화예술계 모두가 집중하고 있다.

한국메세나협의회는…
1994년 첫 설립… 210개 회원사 가입

메세나란 기업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하는 활동을 총칭하는 용어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문화예술인을 지원했던 재상 마에케나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현재 전세계 26개국에 30개의 메세나 관련기구가 설립ㆍ활동 중이며 이들은 '문화를 통한 아름다운 사회공헌'을 지향하며 기업과 문화예술 부문의 이상적인 파트너십을 지원하고 있다.

1994년 설립된 한국메세나협의회는 문화예술 지원을 통한 사회공헌에 뜻을 같이하는 기업 210여 개사를 회원사로 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한국 경제와 문화예술의 균형발전을 위해 기업과 예술의 만남, 예술지원 매칭펀드, 문화공헌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2005년 12월 기업과 문화예술이 함께 발전하는 전략적 파트너십 지원프로그램으로 시작된 이후 한국메세나협의회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기업과 예술의 만남'은 지난해 대기업-예술단체 23쌍, 중소ㆍ중견기업-예술단체 60쌍 등 총 83쌍의 결연커플을 만들었다.

<박용현 회장은…>

1943. 9 출생

1962 경기고등학교

1968 서울대학교 의학 학사

1970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과학 석사

1974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과학 박사

1978.10∼2006.2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외과학교실 교수

1979.6∼1981.5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브리감앤위먼스병원 외과 전임의

1996.11∼1998.11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1998.6∼2004.5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장

1999.2∼2004.6 대한병원협회 부회장

2005.11∼ 연강재단 이사장

2006.11∼2007.11 제59대 대한외과학회 회장

2007∼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2007. 2 두산건설 회장

2008.10∼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2009 두산그룹 이사회 의장

2009.3∼ 두산그룹 대표이사 회장

2009.12 2010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회 위원

2010. 2∼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

2012.2.21∼한국메세나협의회 제8대 회장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