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솟는 물가에 꽉 닫힌 지갑백화점·마트 할인공세불구 2월 실적 기대에 못미쳐고유가에 자동차도 부진… 연비 좋은 디젤차 선호… 생필품 외엔 수요 확 줄어

서울시내의 한 백화점 매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 1~2월 백화점 매출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자동차 판매도 부진하자 고유가가 소비를 더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식품과 생활용품 등 생필품 품목에서만 매출이 발생하고 있어요."(대형마트의 한 관계자) "불황을 타지 않던 명품마저 매출 하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백화점의 한 관계자) 유가상승에 따른 고물가 여파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춤하던 내수경기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업계의 올 1~2월 신장률은 예년 수준에 훨씬 못 미쳤고 자동차 업계의 신차 판매도 신통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실생활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 구입 이외에는 지갑을 열지 않는 '불황형' 소비 패턴이 자리잡은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 1월 -3.7% 신장률을 기록했던 백화점 업계가 2월에 명품ㆍ아웃도어ㆍ모피 등의 대대적인 할인공세를 펼쳤음에도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백화점은 2월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기존점 기준)가량 신장하는 데 그쳤으며 롯데백화점 역시 비슷한 신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올 2월은 지난해보다 영업일수가 이틀 더 많았고 브랜드별 시즌 오프 행사 등 대대적인 판촉전을 펼친 점을 감안하면 초라한 성적이라는 평가다. 대형마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마트는 1~2월 1.4%(기존점 기준) 매출이 증가하는 데 그쳐 지난해 1~2월 전년 대비 신장률 6.7%에 크게 못 미쳤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도 1~2월 각각 2.1%, 4.3% 판매가 늘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 신장률(롯데 7.3%, 홈플러스 10.5%)과 비교하면 매출이 꺾인 상태다. 유통업계에서는 대형마트와 백화점 실적이 예년에 비해 크게 부진한 것을 두고 소비경기 불황에 따라 소비자들이 불요불급한 수요에는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전과 패션 등 당장 사지 않아도 되는 상품에 대한 지출은 줄이고 꼭 필요한 식품이나 생활용품 등에만 수요가 몰리는 소비 패턴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시급하지 않은 제품의 구입을 미루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가전 내수 시장도 냉기가 돌고 있다. 최근 들어 프리미엄 제품보다는 보급형 저가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 가전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원래 3~4월은 혼수ㆍ이사철이 맞물린 가전 성수기인데 올해는 전년도 대비 수요가 많이 떨어진 것 같다"며 "가전 업체들도 고유가 시대에 맞춰 절전형 가전을 많이 내놓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불황을 모르던 백화점 명품 매출이 줄어든 것도 꼭 필수 구매품 이외에는 지갑을 열지 않는 소비 패턴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지난해 1~2월 명품 신장률은 약 37% 정도였지만 올 1~2월에는 9~10%로 집계됐다. 한해 전보다 명품 매출 신장률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목돈이 들어가는 자동차 구입을 꺼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1~2월 국산 차 누계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 감소했다. 2월만 놓고 보면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6% 늘기는 했지만 올 2월이 지난해 2월보다 영업일수가 4일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판매가 줄었다는 분석이다.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경기둔화에 고유가까지 겹쳐 이달도 차 판매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유가로 소비자의 차 선택기준을 '연비'에 맞추는 현상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우선 가솔린보다는 연비가 좋은 디젤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디젤 모델이 나오는 엑센트와 i30의 2월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각각 96.6%, 504.2% 폭증했다. 이에 비해 가솔린 모델만 나오는 아반떼ㆍ쏘나타ㆍ그랜저의 1~2월 누계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20.8%, 1.8%, 11.2%씩 줄어들었다. 기름값 부담으로 경차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었다. 기아자동차의 2월 판매를 보면 1,000cc급 경차인 '모닝'과 '레이'가 각각 7,549대, 5,639대 팔렸다. 기아차의 2월 승용차 판매량 2만5,107대 중 이들 차량 판매 대수가 1만3,188대를 차지할 정도로 고객이 경차로 쏠린 것이다.

기아차의 한 국내 영업 담당자는 "고유가 때문에 소형뿐 아니라 준중형차 수요까지 경차로 대거 넘어왔다"며 "절반 이상의 고객이 경차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맹준호기자 nex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