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공천 과정에서 ‘대주주’들과 잇달아 등돌려, 총선에서 패할 경우 조기 낙마 가능성도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곤혹스럽다. 사방을 둘러봐도 원성뿐이다.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극단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월 15일 당대표 경선 전만 해도 한 대표는 옛 민주당, 친노 그룹, 시민사회단체, 노동계를 아우를 수 있는 적임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한 대표 주변은 우군들로 넘쳤다.

하지만 임기 2년의 당대표에 오른 지 두 달 여가 지난 현재, 한 대표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덕장'이라던 한 대표가 졸지에 지원군을 잃은 것은 4ㆍ11 총선 공천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은 내내 '노이사(친노, 이화여대, 486)'만을 위한 공천이라는 매서운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여기에다 통합진보당과의 야권 연대 과정에서 여론조사 조작 논란까지 일면서 '적전(敵前)' 분열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본격적인 공천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달 하순까지만 해도 원내과반의석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2004년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의 152석을 넘길 거라는 장밋빛 전망들이 쏟아졌다.

손학규
그렇지만 공천 과정에서 크고 작은 잡음이 터지면서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새누리당에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확실한 반전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원내 1당도 어려울 것"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불만 폭발 孫ㆍ鄭

당내에서는 " 의원 쪽 사람들은 초토화됐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당대표를 지낸 두 사람은 민주통합당의 '대주주'이자 차기 대권 예비주자다. 아직 지지율 반등 기미는 약하지만 잠재력만은 무시할 수 없다.

수도권을 기준으로 손 전 대표의 직계 중에는 차영 전 대변인(양천 갑), 송두영 전 상근 부대변인(덕양 을), 김병욱 전 정책특보(분당 을) 정도만이 어렵사리 본선에 올랐다.

동대문 갑에서 1차 예선을 통과했던 서양호 후보는 당에서 갑자기 안규백 의원(비례대표)을 전략공천하는 바람에 헛물을 들이켜야 했고, 김경록 전 상근 부대변인은 안양 동안 갑에서 1차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정동영
계에 비하면 그래도 계는 행복한 편이다. 계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는 안양 만안의 이종걸 의원 1명뿐이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에 대해 계나 계에서는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대선 정국에서 친노 그룹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 전횡을 일삼았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총선 체제에서 선거대책위원장 등 비중 있는 자리를 맡을 것으로 예상됐던 손 전 대표가 끝내 고사한 것도, 한 대표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거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당대표 경선에서 한 대표와 문성근 최고위원에 이어 3위를 차지했던 박영선 최고위원은 지난 21일 최고위원에서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박 최고위원은 친노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독자행보를 하고 있다.

박 최고위원은 "공천 과정에 대한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을 외면하기 힘들었다"면서 "우리 당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그것은 당내 인사일 수도, 당외 인사일 수도 있다"며 친노 세력을 겨냥했다.

이해찬
등돌린 李

전 국무총리(상임고문)는 민주통합당의 설계자 중 한 명이다. 그는 각각의 간판으로 흩어져 있던 민주진보세력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는 한 대표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당내 막후 실세이기도 하다.

그런 이 전 총리가 최근 들어 한 대표에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 전 총리의 불만 역시 공천에서 비롯됐다. 한 대표는 당권을 잡은 뒤 임종석 전 사무총장, 우상호 전략홍보본부장 등 486과 이미경 총선기획단장 등 이화여대 출신들로 '친위부대'를 구성했고, 급기야 이 전 총리는 미간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양측의 갈등이 격화되자 지난 8일 이 전 총리와 '특수관계'에 있는 문재인 상임고문이 한 대표를 만나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튿날 임 전 사무총장이 총장직과 총선 후보 사퇴를 표명한 것은 이 전 총리를 향한 한 대표의 화해 제스처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임 전 총장의 사퇴가 곧바로 양측의 화해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한 대표(전 국무총리)가 참여정부 시절 손발을 맞췄던 강철규 우석대 총장(전 공정거래위원장)을 공천심사위원장에 앉힘으로써 사실상 공천 과정을 지휘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전략가로 통하는 김한길 전 의원의 영입도 한 대표가 이 전 총리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한 방책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전 총리와 김 전 의원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전략가들이다.

한 대표의 두터운 신임 하에 일찌감치 전략공천자로 분류됐던 김 전 의원은 돌고 돌아 광진 갑에 둥지를 틀었다. 당초 이곳에는 계인 전혜숙 의원(비례대표)이 단수 공천됐으나, 금품 전달 의혹에 휘말리면서 전격 낙마했다. 전 의원은 지난 22일 "마녀사냥식 공천 박탈에 책임을 지고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결국은 총선

당내에서는 " 대표 체제로 대선을 치를 수 있겠냐"는 의문이 쏟아지고 있다. 한 대표가 후덕한 맏며느리, 통합형 당대표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관리형'이라는 한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는 얘기다.

총선도 물론이려니와 대선은 당이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선 전투인 만큼 치밀한 전략과 전술 없이 나선다면 필패(必敗)다. 따라서 한 대표 체제로 총선과 대선을 치르려면 지금보다는 여러 면에서 전투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한 대표가 비례대표 15번을 받은 것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15명의 비례대표를 배출했다.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15번이 '배수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최근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보면 20석 정도는 가능할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한 대표가 총선에 불출마함으로써 성의 있게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면서 "결국은 총선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겠냐.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친다면 한 대표를 비롯해 공천을 주도한 사람들은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