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백 사건'으로 전·현직 경찰관 줄소환"강남서 상납액 상당 업주에게 끊임없이 요구"업계 종사자 생생 증언 리스트는 따로 관리 안해

룸살롱 황제 사건으로 경찰 간부 등 전ㆍ현직 경찰관 수십 명이 줄줄이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룸살롱 업계에 제 2, 제 3의 황제들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진위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현재 룸살롱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인물이 증언한 것이어서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강남에서 룸살롱을 운영하다 지난해 말 경기도 모처로 업소를 옮긴 김모씨는 "강남에서 업소를 운영할 당시 뇌물로 상납되는 돈이 상당했다"고 털어 놨다. 김씨에 따르면 매월 상납되는 돈이 2,000만원에 달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불경기의 여파로 수입은 점점 줄어드는데 상납해야 하는 돈은 그대로 유지되다보니 더 이상 업소를 운영할 수 없었다"며 "일반인들은 최근 붙잡힌 룸살롱 황제 이경백씨에 손가락질 할지 몰라도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복잡한 심경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소 관계자들은 경찰관이나 국세청 구청 직원 등에 뇌물을 제공하는 행위를 이른바 '관작업'이라고 부른다. 관작업은 업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거의 필수다. 관작업을 하지 않으면 단속기관의 단속을 피하기도 어렵고 괘씸죄로 집중단속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내용 현실로

사정이 이렇다보니 업소에서는 관작업을 하는 이들을 따로 두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로비 전문가를 두고 업소를 운영하는 곳이 적지 않다는 게 김씨의 증언이다. 김씨의 설명을 들어보면 '룸살롱 황제' 사건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도 아니고 이씨 같은 인물이 하나 둘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룸살롱의 사장들이 로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사장 명함을 내미는 이들은 사장이 아닌 경우가 많다. 대부분 '진짜 업주'로부터 고용된 바지사장이다. 바지사장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위기관리 능력이 어느 정도 검증된 이들이다. 유흥주점은 그 특성상 운영이 순탄치 않다. 멋모르고 업소를 운영하려 했다가 큰 코 다치는 일이 많은 이유다.

김씨는 "룸살롱은 운영하려면 다방면에서 수완이 뛰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익 중 상당부분을 이리저리 뜯기게 돼 있다"며 "예를 들어 주류업체와의 뒷거래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경찰관이나 구청 공무원 등과도 친분이 있어야 한다. 또 여종업원 조달 등 업소의 뒷일을 봐주는 건달들과도 연결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조건들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업소를 운영해 아무리 돈을 벌어봤자 이익금은 고사하고 빚만 지게 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진짜 업주들은 업소를 여러 개 운영하는 경우가 많고 업소 외에 다른 사업도 하고 있는 이들도 있어 이런 부분을 일일이 챙길 수도 없고 처리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업소 사장으로 고용되는 이들은 여러 부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김씨를 통해 강남 등지에서 17년째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박모씨를 만날 수 있었다. 박씨는 강남에 두 개의 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었다. 물론 업소의 자본을 댄 '진짜 주인'은 따로 있지만 박씨가 없이는 업소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는 실제 사장보다 더 많은 수입을 보장받는다고 한다.

박씨에 따르면 업소를 개업할 때 여러 사람이 자본을 대고 업소 경험이 많은 이가 사장으로 영입된다.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아

박씨는 업계에서 말하자면 '전문가'로 통하는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자신의 신장과 업소영업 비밀에 대해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입을 열었다.

박씨는 "최근 룸살롱 황제라 불리는 이씨가 경찰에 붙잡혀 세간의 화제로 떠올랐는데 이는 어찌보면 어불성설"이라며 "이씨가 여러 경찰관과 공무원들에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지만 이는 이씨의 문제가 아니라 요구하는 이들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달라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찾아다니면서 자기 돈을 주겠나"라고 반문하면서 "요즘은 뇌물 잘못 주다가는 큰일 나기 때문에 뇌물도 받을 의사가 확실치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업주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뇌물에 대한 요구가 끊이지 않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또 박씨는 "이씨가 룸살롱 황제라고 하지만 이씨에게 돈을 받은 이들은 다른 업주들로부터도 돈을 받았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다른 이들도 다 이씨처럼 많은 경찰과 공무원에 돈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이씨 같은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라고 강조했다.

박씨도 경찰관들에게 돈을 줬다고 털어놓았다.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정기적으로 뿌려지는 돈과 접대하는 액수를 합치면 수천만 원대라는 것이 박씨의 고백이다.

박씨는 "예를 들어 타 지역에 근무하는 한 경관의 경우 퇴근 때나 비번일 때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업소를 찾는다"며 "그러면 우리 쪽에서는 그 차 트렁크에 현찰을 넣고 차 키를 다시 그 경관에게 돌려준다"고 전했다.

박씨는 돈만 전달할 경우 심부름하는 이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돈에 손 댈 수 있어 한우세트나 과일바구니 같은 선물 속에 돈을 넣고 겉을 단단히 포장해 트렁크에 넣는다고 설명했다.

김씨와 박씨에 따르면 현재 언론에 보도되는 것과는 달리 뇌물상납리스트는 대부분의 업소에서 따로 만들어 관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는 말이 경찰 등 단속기관에 흘러 들어가면 업소가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은 물론 향후 유흥업소는 절대 운영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김씨의 경우 이번 '룸살롱 황제'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업소는 주류만 팔아서는 돈을 벌기 어렵다. 여종업원들의 2차 영업을 통해 얻는 수입이 전체 수입에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업소가 인기를 얻으려면 미모의 여종업원를 많이 두어야 하는데 이들은 2차 영업이 주수입원이다.

김씨는 "이번 사건으로 비리 경찰관이 없어져서 좋다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우리 업주들 입장에선 딜레마다"라며 "뇌물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좋지만 단속에 대한 봐주기도 같이 없어지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부정 경찰관과 뇌물상납은 업주 입장에서 필요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문제를 저지르는 업소도 문제지만 그렇게 부정한 수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당장 주류수급 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