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계파별 성적표는

민홍철 민주통합당 당선자가 지난 12일 새벽 당선이 확정된 직후 부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갑에 출마한 민 당선자는 경남 지역 야권 단일후보 중 유일하게 금배지를 달았다. 김해=연합뉴스
민주통합당은 총선에서 참패를 당했다. 당초 기대(140석 이상)와 달리 127석에 그친 데다 야권 연합(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도 원내 과반의석(151석)에 실패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당내에서 계파별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당의 패배가 곧 개인의 패배인 것만은 아니다.

공천 과정에서부터 '독점권'을 행사해온 친노(친 노무현) 그룹은 최소 40명 정도의 당선자를 배출함으로써 당내 최대 계파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지난해 야권 통합을 주도했던 전 대표 측 인사들은 10명 정도 당선자를 내는 데 그쳤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돌풍을 이끌었던 상임고문 측 사람들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계가 최악은 면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그런가 하면 옛 민주계와 시민사회노동단체는 각각 두 자릿수 당선자를 냄으로써 만만치 않은 위상을 과시했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최근 수년 동안 '이동'이 적지 않았기에 계파를 분류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전제한 뒤 "성향을 특정하기 어려운 당선자는 기타로 분류한다 하더라도 친노 그룹의 부활이 단연 돋보였다"고 분석했다.

손학규
수도권에서 득세한 친노

친노 그룹은 수도권과 비례대표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비서관 출신들이 대거 여의도에 입성했다.

전해철 전 민정수석은 경기 안산 상록 갑에서, 유인태 전 정무수석은 서울 도봉 을에서, 박남춘 전 인사수석과 박범계 전 법무비서관은 각각 인천 남동 갑과 대전 서을에서 휘파람을 불었다. 서영교 전 춘추관장은 격전지였던 서울 중랑 갑에서, 윤후덕 전 정무비서관은 경기 파주 갑에서 깃발을 흔들었다.

민주당 대표를 지냈던 정세균 상임고문은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홍사덕 새누리당 의원을 잡고 5선에 성공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갑에 출마했던 민홍철 후보도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낸 김정권 후보를 누르고 옷깃에 금배지를 달았다.

486그룹의 대표주자인 우상호 전 의원은 서울 서대문 갑에서 연세대 총학생회장 선배 이성헌 새누리당 의원과의 4번째 격돌에서 승리했다. 선거에서는 패했지만 한명숙 대표도 개인적으로는 비례대표 15번으로 금배지를 거머쥐었다.

정동영
반면 '노무현의 입'이었던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서울 은평 을에서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에게 석패했고, 노무현 재단 사무국장인 김경수 후보는 김해 을에서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에게 무릎을 꿇었다. '낙동강 벨트' 공략에 나섰던 부산 경남 지역의 여러 후보들도 선전했으나 승리에는 '한 뼘'이 모자랐다.

절반의 성공

전 민주당 대표는 총선 직전 "민주통합당이 1당이 되고, 야권 전체가 과반의석을 차지해야 진정한 승리"라고 규정했다. 1당에도, 야권 전체의 과반의석에도 실패한 상황이기에 패배로 받아들여진다.

전체적인 결과와는 별개로 손 전 대표의 측근들은 희비가 엇갈렸다. 경기 분당 을에 나섰던 김병욱 후보, 경기 고양 덕양 을에 출마했던 송두영 후보 등은 아쉽게 패배했지만, 김동철 신학용 이찬열 이용섭 후보 등은 비교적 낙승을 거두며 원내에 진입했다.

총선 기간 동안 측근들의 당선을 위해 수도권에서 전력투구했던 손 전 대표는 앞으로는 대권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손 전 대표 측 한 관계자는 "(당내 대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단순한 연대 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며 "보다 큰 틀, 큰 그림으로 어필하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악은 면한 계

서울 강남 을에 출전했던 상임고문은 잘 싸웠지만 패배의 쓴 잔을 들었다.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하던 정 고문은 지난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정국 때 '좌 클릭'을 통해 반전을 노렸으나 큰 소득이 없자 '노무현 벤치마킹'으로 승부를 건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했다 낙선했지만 2002년 대선에서 기적 같은 역전 드라마를 썼고, 마침내 옥좌(玉座)에 앉았다. 노 전 대통령은 지지율 '2%'로 출발해서 청와대에 입성한 주인공이다.

정 고문 자신은 고배를 마셨지만 계로 분류되는 민병두 정청래 이종걸 정성호 김현미 후보 등은 축배를 들었다. 따라서 당내에서는 "공천 과정에서 초토화되다시피 한 계이지만 총선을 통해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지역구는 물론이고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도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한 계이지만 향후 극적인 생존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 고문이 당권 경쟁에 나설 수 있을 거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만만치 않은 옛 민주계

공천 과정에서 '학살'이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들었지만 옛 민주계는 꿋꿋했다. 좌장 격인 박지원 최고위원을 비롯해 심재권 추미애 안규백 배기운 김영록 이낙연 황주홍 이윤석 박기춘 설훈 김영환 후보 등이 전국 각지에서 살아남았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동교동계가 소멸한 상태에서 옛 민주계라는 말은 어불성설 아니냐"면서 "굳이 따지자면 박지원계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 이번 총선에서 광주 전남을 중심으로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향후 대선 정국에서 어떤 형태로든 옛 민주계의 역할이 작지 않을 것"이라며 "3선에 성공한 박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옛 민주계가 캐스팅보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