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국가대표 이인종(30)이 천신만고 끝에 런던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으나 소속팀 삼성에스원과 결별할 것으로 보인다.

이인종이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 여자 67㎏ 이상급에서 우승했던 지난 12일. 이인종의 부모는 삼성에스원에서 퇴사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인종이 1~3차 평가전(선발전)에서 출전 포기를 종용받는 등 불이익을 받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삼성에스원 소속으로 이인종과 함께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경쟁했던 안새봄(22)과 박혜미(26)도 동반 퇴사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스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길래 올림픽 금메달 유망주를 비롯해 간판스타 3명이 퇴사를 고민할까?

삼성에스원 지도자와 선수들 사이에 불화가 심하다는 사실은 태권도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태권도인은 13일 “이인종이 오일남 감독과 임성욱 코치 체제에서 올림픽을 준비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며 “이인종을 평소 따랐던 안새봄과 박혜미도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폭언 등 양측간에 불화가 끊이지 않았고 국가대표를 뽑는 과정에서 불협화음도 컸다고 설명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헤비급 금메달의 주인공 허준녕(25)도 부상과 치료 과정에서 오 감독과 불화를 빚은 끝에 최근 사직서를 제출했다.

승부 조작 있었나?

삼성에스원 감독과 코치가 이인종에게 국가대표 선발에 출전하지 말라고 종용했다는 의혹은 최근 태권도계에서 가장 큰 화제였다. 여자 67㎏ 이상급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 남은 세 명은 모두 삼성에스원 소속. 누가 이기든 삼성에스원은 올림픽 금메달 후보를 보유하게 될 상황이었다.

오 감독은 1차 평가전 대진표가 나오자 이인종에게 “넌 뛸 필요가 없네”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코치는 경기에 나서려고 호구를 착용하던 이인종에게 ‘너, 뭐하니? 어차피 1승도 못할 텐데 왜 뛰냐’고 말했다. 삼성에스원은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이인종은 경기를 포기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당시 태권도계에선 “설마 다른 팀 선수도 아니고 소속팀 선수에게 그런 말을 했겠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이인종의 모교 한국체육대 동문들은 발끈했다. 한국체대 관계자는 “올림픽 출전은 태권도 선수에게 꿈이다”며 “어차피 삼성에스원 선수 가운데 국가대표가 나오는데 특정 선수에게 불이익을 줘서야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딸 문제를 뒤늦게 알게 된 이인종의 아버지 이재훈씨는 삼성에스원 김기홍 단장을 찾아가 불이익을 주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안새봄은 1차 평가전 승자, 이인종은 2차 평가전 승자. 박혜미 탈락이 확정된 가운데 3차 평가전은 3월 30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당시 안새봄은 허벅지를 다친 상태라서 이인종이 국가대표가 될 가능성이 컸다. 이때 오 감독은 “새봄이가 널(이인종) 멘토라고 하는데 너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으니 3차 평가전을 연기해야겠다. 네가 동의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까닭에 한국체대 동문과 이인종 가족은 “경기에 뛰지도 말라고 하더니 이젠 경기 일정까지 마음대로 바꾸냐”며 발끈했다.

소속만 삼성에스원?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한판 대결을 펼쳤던 지난 12일 오전 태릉선수촌. 이인종과 안새봄 등은 각각 모교인 서울체고와 강화여고 지도자에게서 작전 지시를 받았다. 각종 구설에 올랐던 삼성에스원 코칭스태프는 멀리서 경기를 지켜보기만 했다. 이인종과 안새봄은 삼성에스원 소속이었지만 각자 모교 지도자와 후배들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에 나섰다.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에 대한태권도협회 관계자는 “삼성에스원이 태권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며 혀를 찼다. 관중들도 “삼성에스원 경기인데 왜 다른 팀 코치가 나오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3차 평가전이 끝나자 승자도 패자도 모두 울었다. 국가대표가 된 이인종은 울면서 안새봄을 껴안았고, 평소 이인종을 따랐던 안새봄도 눈물을 왈칵 쏟으며 “언니, 축하해”라고 말했다. 잠시 후 나타난 박혜미도 이들을 껴안았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선수 부모들은 “어차피 우리 딸들이 국가대표가 되는데 왜 저렇게 선수 가슴을 찢어놓는지 모르겠다”며 얼굴을 붉혔다. 67㎏ 이하급에서 황경선과 함께 국가대표 후보로 손꼽혔던 박혜미 가족도 코칭스태프와 체급 선정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 대학 태권도학과 교수는 “삼성그룹 수뇌부가 삼성스포츠단 소속 국가대표에게 애정을 쏟는 것으로 아는데 삼성에스원이 왜 저렇게 엉뚱한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삼성에스원의 선택은?

이인종은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뒤 “2000년부터 올림픽에 도전했다. 그때는 막내였는데 지금은 최연장자가 됐다. 후배들 앞에서 솔선수범하고 열심히 노력해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다. 출전 포기 종용에 대해 묻자 이인종은 잠시 고민하더니“나를 비롯해 새봄이와 혜미도 마음고생이 심했다”며 “당분간 이 문제에 대해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인종 부친 이재훈씨는 “그동안 삼성에스원에서 훈련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친정을 떠나고 싶지 않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 감독과 코치 체제 아래 많은 문제가 드러났는데 회사가 이를 외면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오일남 감독 밑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최근 삼성에스원은 선수들과 면담해 각종 문제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고 한다. 이인종 등이 퇴사 의지를 고수할 지 여부는 삼성에스원에 달린 셈이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