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거친 남자를 뜻하는 '마초'나 '터프가이'가 여성들이 선호했던 남성의 표본이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부드러운 남자, 예쁜 남자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남자도 관리를 해야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남성들 사이에서도 외모가 곧 자산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런 추세에 맞춰 남성화장품 산업도 매년 15% 이상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지난 2008년 5,700억원, 2009년 6,500억원, 2010년 8,000억원에 이어 지난해 9,000억원 규모를 형성했고 올해 1조원 돌파가 가시권에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스킨과 에센스 등 기초화장품은 물론 비비크림과 같은 색조화장품까지 인기품목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화장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얘기가 이젠 옛말이 된 것.

이런 세태는 홍대나 명동 등 젊은 층이 많이 모여드는 거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진한 화장은 아니지만 여성들처럼 파운데이션을 바른 남자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아이라인을 그리거나 색조화장을 한 남자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홍대 거리에서 만난 대학생 김명일(21ㆍ가명)씨는 1년 전부터 화장을 해오고 있다. 명일씨는 "외출할 때는 스킨, 로션은 물론이고 메이크업 베이스에 남성용 비비크림도 필수"라며 "특별한 날에는 아이라인이나 립글로즈, 가벼운 색조 등으로 힘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의 하루는 스킨과 로션이 피부관리의 전부인 일반 남성들보다 빠르다. 세안부터 메이크업을 하는 데 꼬박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외출 후엔 클렌징까지 잊지 않는다. 잠들기 전엔 화장이 잘 먹는 촉촉한 피부를 만들기 위한 팩도 필수라고 한다.

명일씨는 자신이 사용하는 화장품이 수십 종에 달한다고 했다. 스킨, 로션, 에센스, 수분크림, 비비크림, 선크림, 베이스파우더, 아이라이너, 색조화장품, 립글로즈 등을 종류별로 보유, 화장대에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당연히 화장품에 들이는 돈도 적지 않다. 화장품을 사는 데 사용되는 비용은 매달 10만~30만원 정도. 명일씨는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화장품 값을 충당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화장남' 한정해(23‧가명)씨는 화장에 대한 남다른 지식과 노하우의 소유자였다. 그는 읽기도 어려운 화장품 성분명과 피부에 미치는 영향 등을 줄줄 꿰고 있었다. 심지어 필자의 피부에 맞는 화장품과 관리법까지 상세히 지도해줄 정도였다.

그는 화장에 대한 지식 대부분을 온라인 카페에서 얻는다고 했다. 현재 남성 화장과 관련된 카페가 다수 존재한다. 규모가 큰 카페의 경우 그 회원이 수만 명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최근 남성들의 '그루밍'에 대한 관심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아이라인, 색조 등 짙은 화장을 한 채 거리로 나선 이종범(23‧가명)씨는 화장하는 남자들 사이에도 엄연히 불문율이 있다고 했다. 마스카라가 바로 그것이다.

종범씨는 "모든 화장만이 허락되지만 마스카라만은 예외"라며 "남성에게 잘 어울리지 않기도 하지만 게이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게 이유"라고 말했다.

이들 남성들은 화장을 하는 이유에 대해 "여자와 똑같은 심리"라고 입을 모았다. 남녀를 떠나 아름다워지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라며 화장이 스스로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여주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메이크업의 경우 자신감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경쟁력에도 이득을 준다고 주장했다. 종범씨는 "요즘 세상에 외모는 대단한 경쟁력"이라며 "조금만 신경 쓰면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럼에도 많은 남성들이 여성만 화장한다는 구태의연한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들도 그네만의 고충이 있다. 세간의 따가운 눈총이 바로 그것이다. 명일씨는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이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이따금 나이 드신 분들에게 '사내놈이 무슨 화장이냐'는 질책을 받을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최근엔 화장하는 남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관대해 졌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명일씨는 "최근 남성 아이돌은 하나 같이 짙은 스모키 화장을 하고 나온다"며 "그 영향을 받아 남성의 화장이 대중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화장하는 남성에 대한 인식 변화는 설문조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최근 20~30대 성인 미혼남녀 1080명을 대상으로 '화장하는 남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54%)이 '남자도 비비크림 정도의 기초화장은 해야 한다'고 답했다. 외모가 경쟁력인 사회에서 남성도 예외일 순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남성들의 지나친 화장과 외모 꾸미기에 반감을 표하는 이들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추이를 들여다보면 '화장하는 남자는 비호감'이라는 인식이 사라지고 남자들이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에 분칠을 하는 풍경이 자연스러울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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