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회생 인가 받기 위해 일부러 채무 더 늘려"원금탕감에 빚 독촉 해방"신청건수 70% 수직 상승… 사전상담제 등 대책 시급

미혼 직장인 여성 김모(29)씨는 과다한 지출로 카드 빚이 쌓여가다 결국 대부업체에 손을 내밀었다. 은행에 이어 카드사까지 밀려오는 채권추심 압박과 40%에 육박하는 2금융권 이자에 시달리던 김씨는 "개인회생을 신청하면 원금 탕감 및 빚 독촉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브로커의 전화를 받고 귀가 솔깃했다.

개인회생 인가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빚 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는 브로커의 설득에 김씨는 대부업체와 캐피털 등에서 800만원가량을 추가 대출했다. 결국 부채규모를 4,000만원까지 늘리고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올해 들어 법원의 개인회생 신청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2004년 개인회생제도가 도입된 후 지난해 최고 신청건수를 나타낸 데 이어 올해 1ㆍ4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70% 가까운 수직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여파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최근에는 채무회피를 위해 고의적으로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모럴해저드 사례가 늘고 있다. 서민금융 확대를 표방하는 정책 분위기를 악용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계에 따르면 올해 1ㆍ4분기 법원의 개인회생 신청건수는 2만1,687건으로 전년 동기(1만2,994건) 대비 66.9%나 증가했다. 법원의 개인회생제도는 일정한 소득이 있는 과중 채무자들의 경제적 재기를 돕기 위해 채무의 일부와 이자를 탕감해주는 제도로 2004년 도입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신청자들이 증가하며 지난해에는 역대 최고 수준인 6만4,171건을 기록했다. 특히 올해 개인회생 신청자 수준이 전년도 수치를 크게 웃돌며 일각에서는 채무회피를 위한 모럴해저드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양석승 대부금융업협회장은 최근 "대부업체의 가장 큰 고민은 모럴해저드"라며 "대부업 이용자들이 고의적으로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개인회생 신청자 증가 추세는 개인회생만을 전문적으로 돕는 브로커와 법무사들의 조직적인 개입이 원인이 되고 있지만 이를 차단하기 위한 대책 또한 부재하다는 점에서 심각함을 더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에서 과중 채무자들이 법원에 개인회생 및 개인파산 신청을 하기 전 신복위의 상담을 거치는 '사전 상담제도' 도입을 오는 19대 국회에서 입법화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 금융계의 한 전문가는 "개인들의 모럴해저드는 금융계의 연쇄부실을 불러오기 때문에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채무회피 부추기는 중개업체
브로커·법무사까지 조직적 가세
10명 중 1명은 회생제도 악용


법원의 개인회생 및 개인파산 신청 규모는 경기 상황과 비례곡선을 그린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개인회생 신청자 증가 추이는 금융계에서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법원이 개인파산 신청요건을 강화하며 그에 대한 '풍선 효과'로 개인회생 신청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인식이었다.

지난해 법원의 개인파산 신청은 6만9,755건으로 전년(8만4,764건) 대비 17.7% 감소한 반면 개인회생 신청은 6만4,171건으로 같은 기간 26.8%가 늘었지만 심각성을 지적하는 사람은 적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올해 1ㆍ4분기 개인회생 신청이 2만건을 웃돌며 전년 동기 대비 70%에 가까운 급상승 추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규모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개인회생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모습이 역력하다.

조직적인 채무 회피 '먹이사슬'

금융권에서는 최근 개인회생 신청자 급증 사태의 배후에 대부 중개업체들의 탈법 행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일부 영세 대부 중개업체들이 대부업체와 거래하는 고객 명단을 전문 브로커들에게 팔아 넘기고 있는 것으로 관련 업계에서는 파악하고 있다.

이렇게 확보한 명단을 바탕으로 브로커들과 이와 연계된 법무사 사무실에서 대부업 이용 고객에게 전화나 문자메시지(SMS)로 접근, "손쉽게 채무를 탕감 받을 수 있다"며 영업에 나서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도 최근의 이런 세태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현재 실태를 파악하고 있으며 불법 행위가 있다면 대대적인 검사와 단속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껑충 뛴 연체율, 2금융권 비명

과중채무자들의 개인회생 신청 증가로 대부업체 등 2금융권은 연체율이 급상승하며 울상을 짓고 있다. 4월 현재 대부금융업계의 평균 연체율은 12.6~12.7% 수준이다. 전년 동기 9.7~10.3%와 비교하면 1년 사이에 최고 3%나 급증한 셈이다. 특히 전문 브로커들은 과중채무자들을 부추겨 개인회생 신청 전 대부업체 등 2금융권의 대출 규모를 늘리도록 종용하고 있다.

한 대부업체 관계자는 "평소 정상적으로 이자를 잘 납입하던 고객이 3개월 사이 다수의 대부업체에서 추가 대출을 받더니 갑자기 개인회생을 신청했다"며 "최근 대부고객 10명 중 1명은 유사한 사례를 보이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개인회생제도 수술 시급

채무회피를 위한 모럴해저드가 2금융권 부실로 이어지면서 금융계에서는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우선 개인회생제도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법원이 지난해부터 개인파산제도의 악용을 막기 위해 도박이나 과소비로 인한 채무는 면책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개인회생 신청 자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

개인회생 개시와 관련, 채권자들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법원 개인회생제도의 경우 회생 개시 이후 3개월 이내에 채권자집회 과정이 있지만 실효성이 없는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신용정보회사에서는 대부업체 고객들의 거래 패턴을 분석해 '개인회생 신청 확률'을 수치화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모럴해저드 사례를 사전에 걸러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종휘 신용회복위원장은 "전체 채무불이행자 중 60%는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을 신청할 정도로 제도가 남용되고 있다"며 "사전상담제도를 도입한다면 이들 중 상당수는 신복위의 워크아웃을 통해 채무조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유미기자 yiu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