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비참한 말로' 그 뒤엔…MB에 하대하는 관계 언론기관 쥐락펴락 한때 국정원장 자리 탐내수사 대선자금 확대땐 정권 흔들 '시한폭탄'

'정권의 2인자' '방통대군' 최시중(75) 전 방통통신위원회 위원장의 좌우명은 '천망불루'다. 한때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최 전 위원장이었지만 그래도 하늘 무서운 줄은 알았던 모양이다.

'천망불루'는 <노자>에 나오는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의 준말로 '하늘의 그물은 넓어서 성긴 것 같지만 결코 죄인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나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당장에는 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죗값을 치르게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MB의 멘토'인 최 전 위원장이 '하늘의 그물'에 갇혔다. 현정권 출범 이후 각종 비리의 몸통으로 지목되던 최 전 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알선수재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최 전 위원장은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해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와 브로커 이동율씨에게 청탁을 받고 이들을 통해 수억 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박병삼 영장전담판사는 "금품 공여자의 일관된 진술 등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수사 진행 경과에 비춰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설명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인 이날 오후 11시10분께 서울구치소로 가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를 나온 최 전 위원장은 "뭔가 많이 잘못된 것 같다. 나에게 큰 시련이 왔다고 생각하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자중자애하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일이 진행된다는 것인지 최 전 위원장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많이 잘못된 것 같다"는 최 전 위원장의 말처럼, '대통령의 멘토'라던 그가 구치소로 향하는 뒷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많은 이들은 안타까움과 동시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MB의 버팀목이자 그림자

최시중 전 위원장은 'MB의 버팀목'이자 '그림자'다. MB와 동향(경북 포항) 출신인 최 전 위원장은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교분을 쌓았다.

이 전 부의장을 징검다리 삼아 최 전 위원장은 MB와도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정치권에서는 "최 전 위원장은 사석에서 대통령에게 하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최 전 위원장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정치부장, 논설위원 등을 거친 뒤 1994년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의 회장에 올랐다. 정치 관련 여론조사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최 전 위원장은 2007년 대선 정국 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상임고문을 맡았고 MB가 당선된 뒤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이 됐다.

최 전 위원장이 본격적으로 '날개'를 단 것은 MB 정권 출범 첫해였던 2008년부터. 그는 초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오르며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었다. 야당과 언론노조 등의 강력한 반대에도 무릅쓰고 최 전 위원장은 보수 신문사들에 종합편성채널 특혜를 선물했다.

방송통신위원장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최 전 위원장은 지난해 초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장 교체를 검토할 때는 '이직'을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국정원장 자리보다 방송통신위원장이 훨씬 더 중요하다며 최 전 위원장의 잔류를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 전 위원장이 MB 언론 정책 수행의 적임자라는 의미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구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합쳐진 초거대 조직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모든 인가, 허가 등과 관련한 권한을 양손에 움켜쥐고 방송과 통신 업계를 쥐락펴락해 왔다.

2008년 3월 수장에 오른 뒤 부동산 투기, 증여세 탈루 등 끊임없이 도덕성 논란에 시달리던 최 전 위원장은 측근들의 비리가 불거지면서 사퇴 압력이 거세지자 지난 1월 27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MB의 발목 잡은 멘토

왼쪽부터 이상득, 박희태, 이재오, 김덕룡
최 전 위원장이 구설에 오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현정권이 지난해 후반기부터 급격히 정권말기 권력누수현상(레임덕)을 보이면서 최 전 위원장의 이름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주 거론됐다. 정치권에서는 "결국 최시중이 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며 "최시중 게이트가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말이 많았다.

최 전 위원장의 양아들이라던 정용욱(49) 보좌관은 지난해 말 한국방송예술진흥원 김학인 이사장의 청탁과 함께 수억 원을 챙긴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당초 정 보좌관은 지난 1월 말 검찰에 출석할 것으로 전해졌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정 보좌관은 석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개인비리 의혹과 함께 최 전 위원장의 '머슴'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 보좌관은 지난해 말부터 태국 말레이시아 등지를 전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 보좌관의 비리 연루는 결과적으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을 자부하던 이 대통령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히는 단초가 됐다. 정 보좌관은 김학인 이사장의 EBS 선임 로비뿐 아니라 지난해 통신사들의 이동통신용 주파수 쟁탈전 때는 SK에서 3억 원을, 2010년 CJ오쇼핑의 온미디어 인수 때는 5억 원을 챙긴 의혹도 받고 있다.

실체적 진실은 정 보좌관이 한국에 들어와서 검찰 수사를 '제대로' 받아봐야 드러나겠지만, 상식적으로 '깃털'에 불과한 정 보좌관을 보고 대기업들이 수억 원을 건넸을 것으로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최 전 위원장의 측근 비리는 정 보좌관이 처음은 아니다. 최 위원장의 또 다른 복심(腹心)이라던 황철증 전 방송통신위원회 정책국장은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정보기술(IT) 업체에서 뇌물을 받았다가 지난해 불구속 기소됐다. 황 전 국장 역시 한때 막강한 힘을 발휘했으나 정 보좌관과 마찬가지로 '몸통'이 아닌 '깃털'일 뿐이었다.

오락가락 멘토, BH와 조율?

최 전 위원장은 지난달 23일 "2004년부터 지금까지 고향 후배인 이동율씨에게 금품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시인했다. 최 전 위원장은 이어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에게 받은 돈의 사용처에 대해 "(2007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 썼다"고 했다.

최 전 위원장의 '폭탄 선언'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양측의 갈등설이 증폭됐다. 최 전 위원장이 청와대(BH)가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는 데 대한 간접적인 시위라는 것이다. 파이시티 인허가 관련 알선수재로 시작된 수사가 대선자금으로 확대될 경우 파장은 최종적으로 이 대통령에게까지 미칠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최 전 위원장은 '폭탄 선언' 하루 만인 지난달 24일에는 "얼떨결에 (여론조사에 썼다고) 말했다. 정식 (대선)캠프 여론조사 비용으로 쓰지 않았다. (받은 돈은) 개인적 활동을 하며 모두 썼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검찰 수사가 대선자금까지 확대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청와대와 곤혹스럽게 된 최 전 위원장이 사전에 뭔가 조율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양측이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자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는 것이다.

檢, 이대로 멘토 수사 마무리?

검찰이 최시중 전 위원장에 대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해 비판 여론이 거세다. 비록 하루 만에 번복하기는 했으나, 최 전 위원장의 입에서 "돈을 받아서 여론조사에 사용했다"고 진술했음에도, 검찰은 최 전 위원장에게 정치자금법이 아닌 알선수재 혐의만 적용했다. "MB의 대선자금 수사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이는 이유다.

이와 관련 김진표 원내대표 등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 5명은 지난달 27일 대검찰청을 방문해 "최 전 위원장에게 정치자금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신경민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피의자 최시중이 대선자금이라고 말하는데도 검찰은 부득불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했다"며 대선자금 수사를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2일 소환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경우 검찰의 칼이 MB의 대선자금까지 미칠 것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차관이 브로커 이동율씨를 통해 이정배 파이시티 대표로부터 지난 2006년~2008년 초 여러 차례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박 전 차관은 이 대통령 대선캠프였던 '안국포럼'에 관여하면서 선거대책위원회 네트워크팀장으로 활동했고, 이 전 대표가 건넨 돈은 선거자금 등으로 쓰였을 개연성이 크다.

특히 이동율씨는 '안국포럼'에 드나들면서 박 전 차관 및 최 전 위원장과의 친분을 자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북 포항 출신인 이씨는 최 전 위원장의 구룡포중 대륜고 후배다. 동시에 박 전 차관이 근무했던 대우건설 출신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씨와 정용욱 보좌관은 최 전 위원장이 평소 가깝게 지내던 후배 8명을 모아 1988년 결성한 '구봉회'라는 친목 모임의 주요 인물로 알려졌다. 이들은 최 전 위원장을 '회장님' 또는 '아버님'으로 부르며 극진히 모셔왔다고 한다.

최시중 게이트는 임기 말 MB정부의 레임덕을 앞당기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MB의 멘토에서 이제는 걸림돌로, MB정부에 깊은 수렁이 되고 있는 최 전 위원장의 수사에 관심이 점증하고 있다.

6인회 멤버 줄줄이 낙마 '비운의 종말'
■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 한때 막강한 권력실세 김덕룡만 다치지 않아
이명박 대통령을 떠받드는, 또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들의 모임이 있다. 이른바 6인회다. 6인회에는 이 대통령을 비롯해 '만사형통' 이상득(77) 전 국회부의장, '방통대군'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희태(74) 전 국회의장, 김덕룡(71) 전 국민통합 특보, 이재오(67) 전 특임장관(현 의원)이 포함돼 있다.

대통령은 차치하더라도 나머지 5명 중 '말년'에 그나마 심기가 편한 사람은 김덕룡 전 특보 1명뿐이다. 김 전 특보를 제외한 4명은 이런저런 구설에 올랐거나 이미 자리에서 밀려나 권력무상을 실감하고 있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나중이 초라한 6인회다.

이 전 부의장의 경우 자신의 보좌관이었던 박배수씨가 기업체의 청탁을 받고 10억 원의 금품을 챙긴 혐의로 지난해 12월 검찰에 구속되는 바람에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특히 자신과 함께 현정권에서 '쌍두마차' 역할을 하던 최 전 위원장이 전격 구속됨에 따라 이 전 부의장은 좌불안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결국 검찰의 수사가 이 전 부의장에게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왕의 남자'로 불렸던 이 전 특임장관도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 19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이끄는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쇄신 대상'으로 지목됐던 이 전 장관은 가까스로 지역구에서 살아남았지만 앞날은 불투명하다.

이 전 장관은 정몽준 전 당대표, 김문수 경지지사 등과 함께 비박(非朴) 진영의 대선 예비주자로 분류되고는 있으나, '성공'은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다.

MB 정권 들어 승승장구하던 박 전 의장도 체면을 크게 구겼다. 그는 2008년 당대표 경선 때 일부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돌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으며, 끝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의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다른 멤버들에 비하면 김 전 특보는 그나마 행복한 편이다. 김 전 특보는 총선을 통해 재기한다는 계획에는 차질이 빚어졌지만, 아직까지는 다른 멤버들처럼 검찰 수사를 받거나 크게 구설에 오른 일이 없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