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준 당선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중구에서 당선됐기에 기쁨도 크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막중하다"며 "국회에 들어가면 사회 양극화 해소, 보편적 복지 실현 등 시대적 소명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윤관식기자
아주 자그마하고 단출하다. 여느 국회의원 지역구 사무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사무실 내 벽에는 족히 수십 년은 돼 보이는 흑백 사진 액자가 몇 개 걸려 있다. 국회의원 지역구 사무실 겸 (재)정일형ㆍ이태영 박사 기념 사업회 사무실이다.

민주통합당 정호준(41) 당선자는 지난 4ㆍ11 총선을 통해 서울 중구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정 당선자는 "세습이라는 비판도 없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이 당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고 솔직히 말했다.

정 당선자의 조부는 중구(예전에는 종로와 합구)에서만 8선을 지낸 고(故) 정일형 박사이고, 부친은 역시 중구에서만 5번이나 금배지를 단 정대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다. 또 정 당선자의 조모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고 이태영 박사다.

정 당선자는 삼세번 만의 도전에서 여의도 입성의 꿈을 이뤘다. 17대 때는 부친의 호적수였던 박성범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 석패했고, 18대 때는 전략공천이라는 당의 방침에 따라 잠시 뜻을 접었다.

정호준 당선자는 정치 명문가의 후예다. 왼쪽부터 초등학생인 정 당선자, 정대철 전 의원, 정일형 전 의원. 정호준 당선자 제공
정치 입문 8년 만에 선량(選良)이 된 정 당선자를 지난 9일 서울 중구 신당동 (재)정일형ㆍ이태영 박사 기념 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 당선자는 "중구는 내 고향이라 조금 안다"면서 "근처 약수시장에는 음식 잘하는 집들이 꽤 많다"며 환하게 웃었다.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됐지만 여전히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내가 태어난 곳은 중구 필동이다. 고향에서 출마해서 당선됐으니 정말 기쁘다. 헌정 사상 최초로 3대가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됐다는 것도 뜻 깊은 일인 것 같다."

-야당 입장에서 보면 2000년 16대 총선 때 정대철 전 의원 이후 12년 만에 중구를 탈환했다.

"중구는 전통적으로 야당세가 강했지만 최근 들어 주민들의 성분이 바뀌면서 정치적 성향도 좀 변한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중구에서 당선된 분들이나 출마한 분들을 보면 지역과는 거리가 있었다. 서울시장, 당 최고위원 등 중앙정치에만 전념하는 경향이 짙었다. 정호준이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중구 토박이라는 점에서 구민들에게 후한 점수를 받은 것 같다."

정일형(오른쪽) 전 의원이 부인인 이태영 박사의 서울대 법대 졸업식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호준 당선자 제공
-17대 때 낙선 후 8년간 절치부심하며 준비했다고 들었다.

"17대 때 낙선했지만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준비했다. (사)사회문회나눔협회 등 봉사단체와 장학회 등을 결성해서 소외된 지역민들을 위해 묵묵히 일했다. 주민들께서 정호준이의 진심을 알아주신 것 같다. 만 33세에 불과했던 2004년에 당선됐다면 기고만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여의도에 입성하게 됐다. 정치인으로서 갖고 있는 비전은 뭔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됐기에 기쁨도 크지만 그만큼 사명감과 책임감도 막중하다. 내가 잘못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욕을 먹을 것 같다. 할아버지는 독립과 건국을 위해 일했고, 아버지는 민주화와 정권 교체를 위해 헌신했다. 나는 보편적 복지, 사회 양극화 해소 등 시대적 소명을 다하는 데 충실할 것이다."

-정치 문화 선진화에 관심이 크다고 들었다.

"여당 의원일지라도 논리와 정책에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소신이다. 미국에서는 민주당 소속인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할 때 공화당 의원들도 기립박수를 보낸다.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몸싸움, 욕설 같은 것들을 국회에서 추방하는, 정치 문화 선진화 정착에 기여하고 싶다.

-국회의원으로서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가.

"1순위로 희망하는 상임위원회가 보건복지위원회다. 당장 중구만 해도 국립중앙의료원을 서초구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 이에 대해 반대 여론이 높다. 국립중앙의료원을 그대로 중구에 존치시키겠다는 것은 총선 공약이기도 하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했던 경험도 있기에) IT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길러보고 싶다."

-내달 9일에는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린다. 어떤 당대표가 필요하다고 보나.

"무엇보다 계파를 초월하고, 또 아우를 수 있는 대표가 필요하지 않겠나. 원론적인 이야기이겠지만 당의 정체성을 잘 지키면서 대선 경선과 본선을 잘 치를 수 있는 인물이 당대표가 돼야 한다."

-여야 막론하고 의원 개개인이 대선 정국에서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정 당선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얼마 전 초선 의원 모임 때도 밝혔듯이 대선주자 당내 경선, 대선 본선 같은 주요 정치 이벤트에서 당이 정체성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한다. 또 젊은 초선 의원답게 2030세대 등 젊은이들이 보다 많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 이제는 생활 정치다. 투표해야 변한다."

-곧 제19대 국회가 개원한다. 입성 각오는.

"팝 가수인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은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로 기쁨과 감동을 준다. 그들의 탤런트(재능)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 정호준이는 정치를 통해 구민들과 나아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드리고 싶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