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1913~1954년)가 남긴 이 말은 아직도 사진기자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진다. “진실이야말로 가장 좋은 사진이자 선전”이라고 외쳤던 카파의 자세는 카파주의(Capaism)로 불리며 기자 정신을 상징하는 문구가 됐다.

카파는 19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엔드레 프리드만. 유대인이란 이유로 쫓겨난 프리드만은 1931년 독일 베를린에서 보도 사진을 배웠고, 나치 정권이 들어선 1933년 프랑스 파리로 망명했다. 이때 이름을 로버트 카파로 바꿨는데, 카파는 상어란 뜻의 헝가리어다.

카파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면서 민병대원 페데리코 보렐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진을 당시 미국 최고의 잡지였던 라이프에 실었다. ‘병사의 죽음’ 또는 ‘쓰러지는 병사’란 제목으로 알려진 이 사진은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는 신호탄이 됐다. 카파는 스페인 내전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애인 게르다 포호릴레는 전차에 깔려 죽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종군기자의 대명사가 된 카파는 중ㆍ일 전쟁(1938년)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도 취재했으며 특히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담은 사진은 불후의 걸작으로 꼽힌다. 연합군과 함께 노르망디에 상륙한 카파는 빗발치는 독일군 포탄 속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카파는 1954년 라이프지의 요청으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벌어진 베트남으로 가 프랑스군 행군을 취재하다 5월 24일 북베트남 타이빈에서 지뢰를 밟아 사망했다. 당시나이 41세. 그 순간에도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물론 그에게도 흠은 있었다. 카파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쓰러지는 병사’는 수십년간 조작 논란에 시달려왔다. 스페인 파이스 바스코대 호세 마누엘 수스페레기 교수는 “사진이 촬영된 장소는 전투가 벌어진 곳이 아니다”며 사진이 연출됐다고 주장했다. 역사학자와 취재진이 사진 속 배경을 검토한 결과, 전투가 벌어졌던 세로 무리아노에서 55㎞ 떨어진 에스페호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왜곡된 뉴스와 사진이 한 순간 세상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