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조원대 다단계 사기' 조희팔 사망 미스터리

4조원대 '다단계사업 사기'를 벌인 조희팔씨가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사망한 것을 둘러싸고 사망 조작설에 이어 정치권에 자금 유입설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사망 원인 심장박동 정지 불구 국내에선 진료기록 없어
가짜 신분증 사용 의혹 증폭… 빼돌린 돈 은닉 위해 밀항 세력이 조작 가능성 제기
현정부 고위인사 2~4명 해외 도피에 관여 정황… 경찰도 직간접적 연루 의혹

4조원대 '다단계사업 사기'를 벌인 조희팔(55)씨가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면서 이를 둘러싼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21일 조씨가 지난해 12월 19일 0시15분께 중국 청도 위해시에 위치한 해방군 제404병원 남방의과대학병원에서 급성심근경색 등에 의한 심장박동이 정지돼 사망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당시 조씨의 지인이 찍은 장례식장 동영상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 조씨가 숨졌다고 잠정 결론 내렸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해 12월 18일 중국 청도 중식당에서 지인 5명과 식사하고 인근 호텔 지하에 위치한 주점에서 오후 8시부터 2시간 가량 술을 마셨다. 조씨는 이후 호텔방에 도착하면서 가슴통증과 함께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신속한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조씨는 끝내 숨을 거뒀다.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치러진 것으로 알려진 조희팔씨 장례식 장면. 경찰청 제공
그러나 일부에서는 조씨를 비롯해 그의 밀항을 도운 세력이 빼돌린 돈을 은닉할 목적으로 '사망 자작극'을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지 소식통과 경찰은 조씨가 쓰러지자 120구급차에게 도움을 요청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전했다. 이동 중 중국인민 해방국 제404병원 의사가 조씨에게 응급처치를 했고 구급차는 오후 11시15분께 중국 청도 위해시의 해방군 제404병원 남방의과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하지만 조씨는 이미 구급차 안에서 동공이 풀리고 맥박이 정지돼 사망선고를 받은 것으로 진료기록상(응급진료기록, 사망진단서) 확인됐다.

이후 유족들이 참관한 가운데 장례식을 치르고 같은 해 12월 21일 중국 옌타이시 즈푸구(연태시 지부구) 장의장에서 화장했다. 이어 23일 유골은 국내에 들여와 국내의 모 공원묘지에 안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조씨의 사망과 관련해 인터폴 공조수사를 통해 중국에서 작성된 사망 관련 증거자료인 응급진료기록부, 사망진단서, 화장증 등의 작성경위와 진위여부를 확인했다. 현재 유골은 화장된 상태여서 유전자 감식이 불가능하다.

조희팔씨가 중국에서 사용했던 위조 여권. 경찰청 제공
또 당시 응급진료 의사와 사망진단 의사, 화장장 관련자 등을 상대로 사망 당시의 정황에 대한 진술을 확보하는 등 사실 확인 수사도 진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씨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돼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유사수신 등의 범죄행위로 얻은 은닉된 범죄수익의 추적이 쉽지 않겠지만 피해자들의 피해를 최대한 보전하기 위해 공범수사 등 은닉재산 추적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례 동영상 의심 키워

이른바 '조희팔 사건'은 전국에 10여 개 피라미드 업체를 차리고 의료기기 대여업에 참여하면 고수익을 낸다며 2004년부터 5년간 4만~5만여명의 투자자를 모아 돈을 가로챈 국내 최대 규모 다단계 사기사건이다.

조씨는 안마기 등 건강용품 판매 사업에 투자하면 연 40%대의 고수익을 올리게 해주겠다며 사람들을 모은 뒤 먼저 가입한 회원의 돈으로 새 회원에게 이자를 주는 방식으로 규모를 불려 나갔고 회원들 돈으로 또 다른 사업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액은 대략 3조5,000억~4조원으로 추정된다. 단군 이래 최대 다단계 사기사건으로 꼽히던 JU그룹 사건 피해액인 2조1,000억원을 두 배 가량 웃도는 규모다.

이 사건의 주범인 조씨는 조선족 조모(53)씨로 위조된 중국여권(거민 호구부)과 운전면허증을 사용하면서 중국 연태 래산구 동방해양에 은신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2008년 10월 지명수배 됐지만 같은 해 12월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중국으로 밀항한 뒤 종적을 감췄다. 특히 조씨가 총경급 간부 등 경찰 관계자들에게 사건 무마와 밀항을 부탁하며 돈을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 안팎에서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경찰이 조씨 사망을 발표했음에도, 조희팔 사건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은 조씨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의 사기행각에 비췄을 때 조씨가 죽음마저도 거짓으로 포장했을 수도 있다 것이다.

특히 조씨는 국내에 심장질환 관련 진료기록이 없고 시신이 중국에서 화장된 뒤 국내에 안치돼 유전자 검사를 통한 본인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점, 조씨가 중국 내에서 가짜 신분증을 사용해왔기에 사망 관련 서류 위조도 가능하다는 점 등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관에 안치된 시신 등 장례식 현장을 담은 동영상이 발견된 것도 의심을 키우고 있다. 결혼식장이 아닌 장례식장을 화면에 담는다는 것은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다.

이런 의심에 대해 가족과 지인들은 "조씨의 사망 사실이 알려지면 피해자들이 보복하거나 시신을 훼손할까 걱정돼 숨겨왔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진술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조씨가 거주했다는 중국 칭다오에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때문에 조씨 같은 거물급 인사가 움직일 경우 금세 소문이 나기 마련인데 해당 지역 한국인들 사이에서 조씨에 대한 소문이나 목격담은 전무했다.

또 조씨의 사망 사실이 조씨의 밀항을 도운 핵심 측근들이 중국에서 소환된 것과 비슷한 시기에 알려진 것도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치밀하게 준비된 각본이 아니냐는 것이다.

조씨의 정체를 거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미스터리다. 조씨는 2004년 대구 동구 신천동에서 (주)BMC란 간판을 내걸고 다단계사업을 시작, 투자자를 모아 부산과 경남 서울 인천 등지로 사업을 확장했다.

조씨는 직접 전국을 돌며 순회강연과 교육 등을 통해 회원들과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이상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조씨의 말을 듣고 막대한 돈을 투자했지만 정작 조씨가 누구이며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은 조씨에 대해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조씨는 '다단계에 투자해 피해를 당한 적이 있는데 본전을 찾기 위해 다시 다단계에 손댄 사람'이라는 설부터 '조직폭력배까진 아니지만 주먹깨나 쓰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조씨는 경북 영천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형제, 친구 등 지인들을 핵심 측근으로 고용해 사업을 확장시켰다. 조씨의 오른팔 격인 초등학교 동창생 최모 부사장은 건설업 경력이 있으며, 대구 수성구 아파트 재개발이나 김천시의 도시개발사업 등 각종 개발사업 및 부동산 투자를 전문으로 했다고 한다.

경찰 수사 결론은

일각에서는 경찰이 이번 사건을 서둘러 종결 처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조씨 사건에 경찰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의혹이 짙어서다. 실제로 조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중국으로 밀항했으며 이 과정에서 사건 무마를 부탁하며 총경급 간부 등 경찰 관계자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때문에 최근 들어 조희팔 사건 공범들에 다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얼마 전 4조원대 피해를 낸 '조희팔 다단계 사기 사건'의 핵심 공범 2명이 중국으로 도주한 지 3년여 만에 붙잡혀 국내로 송환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주범인 조씨의 행방과 은닉 재산 추적할 계획이다.

검찰에 따르면 대검찰청 국제협력단(단장 진경준)은 지난 16일 오후 중국 공안부로부터 조씨가 운영하던 다단계 업체의 운영위원장 최모(55)씨와 사업단장 강모(44)씨의 신병을 넘겨받아 한국으로 강제 송환했다.

검찰 관계자는 "16일 최씨와 강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 인천국제공항을 거쳐 국내로 송환했으며 현재 최씨 등은 사기와 횡령 혐의로 대구지검 서부지청으로 압송돼 수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경찰 수사가 시작된 지난 2008년 11월 중국으로 달아났다가 올 2월 8일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시에서 중국 공안부에 붙잡혔다. 대검은 중국 공안부와 체결한 '형사법 집행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바탕으로 지난해 6월 조씨, 최씨, 강씨 및 강씨의 동생 등 주요 피의자 4명의 검거·송환에 관한 수사 공조를 요청한 바 있다.

일부에서는 최씨 등이 국내에서 수사를 받게 됨에 따라 조씨의 은신처와 도피 자금 및 은닉 재산 규모 수사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검찰은 최씨 등이 최근까지 조씨와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이들의 진술을 통해 중요 단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구지검 서부지청과 대구지방경찰청은 조씨가 밀항하기 한 달 전쯤 사업을 정리한 돈으로 100억원의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첩보도 입수해 자금 흐름을 쫓고 있다.

검찰은 조씨가 내연녀, 직원 등 20여명의 이름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했고 이 계좌들을 통해 중국에서 도피 자금을 공급받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최씨 등을 대상으로 강씨가 사건 무마와 밀항을 부탁하며 총경급 간부 등 경찰 관계자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의혹이 사실인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 안팎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조씨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에 유입된 조씨 자금이 1조원대에 이른다는 소문까지 확산되고 있다.

또 현정부의 고위인사 중 2~4명 정도가 조씨의 해외 도피에 관여했으며, 조씨의 사업에 이들 고위인사들의 측근들이 협력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씨로부터 피해를 당한 이들에 따르면 조씨 사업에 핵심적으로 개입한 A씨의 경우 현 정권의 핵심실세 K씨와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공공연하게 자랑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조희팔 사건 피해자 모임인 '바른가정경제실천을위한시민연대'에 따르면 조씨가 밀항할 당시 경찰의 움직임이 석연치 않다. 이에 "경찰이 윗선의 별도 청탁 없이 움직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고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바실련의 김상전 대표는 경찰이 추산한 것과 차이가 큰 것에 대해 경찰이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이렇게 큰 사건을 경찰청 본청에서 직접 다루지 않고 일개 지방경찰청에서 각자 수사본부를 만든 뒤 진행한 것을 보면서 사건 초동 단계에서부터 의문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건 당시 직접 태안반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밀항을 연결해 줬던 사람들을 만나보고 밀항을 시도해봤다"며 "바다에서는 날이 지면 통행금지를 하고 인공위성으로 통제하기 때문에 밀항이 쉽지 않았다. 네 번 만에 밀항에 성공했다. 이는 조씨의 밀항이 경찰의 방조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조씨의 측근들이 모두 중국으로 도피해 수사를 중단한 바 있는 경찰은 최근 조씨의 핵심 측근이 중국에 긴급 체포되자 수사를 재개했다. 현재 경찰은 전ㆍ현직 경찰관 2명 등 조씨와 가깝게 지냈던 22명의 금융거래내역을 조사하고 있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