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불만 끄고 바로 갚아야지!' 처음엔 다들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살인적인 이자율을 버틸 수가 없다. 사채업자는 200만원을 빌려주고 하루 이자가 6,000원에 불과하다고 유혹한다.

은행 문턱을 밟을 수 없는 서민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채에 손을 대고 원금보다 커진 이자에 발목이 잡힌다. 최근 경찰이 불법 사금융 특별 단속을 펼친 결과 사채 때문에 성폭행을 당하는 등 안타까운 사연이 드러났다.

이자 못 내면 성폭행

"몸이라도 팔아서 (빚을) 갚아라!" 악덕 사채업자 고모(54)씨는 빚을 갚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모(32)씨를 협박했다. 어린 딸을 홀로 키우던 이씨는 사채 200만원에 발목을 잡혔다. 사채업자가 "딸이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고 묻자 빚에 쪼들린 이씨는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었다. 성폭행은 임신과 낙태로도 이어졌다.

빌려간 돈을 갚지 않는다며 초등학생 딸이 있는 30대 이혼 여성을 성폭행한 불법 사채업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여성 혼자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 여사장과 여성 종업원에게 접근해 사채를 빌려주고 돈을 갚지 못하면 성폭행하는 등 불법으로 채권을 추심한 악덕 사채업자 고씨를 검거했다고 지난 30일 발표했다.

고씨는 서울 광진구와 중랑구 일대에서 활개친 무등록 불법 대부업자로 연이율 500%가 넘는 고금리를 챙겨 악명이 높았다.

카페 여종업원으로 일하던 이씨는 지난해 4월 고씨에게서 돈을 빌렸다. 고씨는 100일간 열흘에 한 번씩 원금과 이자로 26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200만원을 빌려줬다.

이씨가 받은 돈은 수수료 6만원과 선이자 26만원을 떼고 168만원에 불과했다. 연리로 따지면 272.2%였다. 그러나 하루 이자가 6,000원에 불과하다는 유혹을 떨칠 수 없었다. 약속한 대로 100일 동안 260만원을 갚았더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술집 영업이 신통치 않자 이씨는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했다.

돈을 제때 받지 못한 고씨는 서서히 마각을 드러냈다. 고씨는 이씨를 불러 "몸이라도 팔아서 갚아라"고 협박했다. 지난해 4월에는 이씨 집을 찾아가 딸을 들먹이며 "딸이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 학원은 다니느냐" 고 물었다.

돈에 쪼들리던 이씨는 딸이 해코지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 고씨는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이씨를 유인해 승용차에 태운 뒤 성폭행했고, 4월에 이어 8월에도 성폭행을 당한 이씨는 뜻하지 않게 임신하게 됐고 10월에는 낙태 수술을 받았다.

이씨는 일반음식점 허가를 받은 카페에서 불법 유흥주점 영업에 나섰다. 이런 사실 때문에 단속을 당할까 두려워 성폭행 사실을 신고하지 못했었다. 고씨는 일수금을 갚지 못하는 여성을 찾아가 옷을 벗고 욕설을 퍼붓는 등 행패를 부렸고, 연체 이자를 원금에 더해 다시 대출해주는 일명 '엎어 치기'로 원금보다 다섯 배 이상 갈취해 악명을 떨쳤다.

30배 이상 불어난 사채

가정주부 이모(38)씨는 200만원짜리 사채 때문에 가정이 파탄 날 지경에 이르렀다. 악덕 사채업자 함모(50)씨는 200만원짜리 사채를 1년도 되기 전에 6,000만원대로 불렸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29일 불법 대부업자 함모(50)씨에게서 200만원을 빌렸다. 선이자 20만원을 떼고 180만원을 받았지만 약속한 한 달 안에 원금을 갚지 못했다.

이때부터 이씨의 불행이 시작했다. 함씨는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찾아가겠다. 저녁에 남편하고 같이 보자"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이씨는 함씨가 소개해준 대부업자에게 돈을 빌려 빚을 갚았다.

이씨는 빚으로 빚을 막았고 사채 대출은 28회나 거듭됐다. 이 과정에서 원금 200만원은 6,000만원 이상으로 커졌다. 빚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가정 불화도 심각해졌다.

이씨는 남편과 이혼 소송을 벌이고 있고, 집에서 쫓겨난 터라 갈 곳조차 없었다. 이씨는 경찰의 도움으로 여성 쉼터 시설에서 지내다 최근 의류 원단회사에 취업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를 꺼리는 여성들의 피해가 많아 불법 채권추심 피해 여성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여성 쉼터는 성매매 여성과 가정폭력 피해자에게만 열려 있기 때문에 경찰은 불법채권추심 피해 여성도 여성 쉼터에 입소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치자고 국무총리실에 제안했다.

심장 질환에 시달렸던 50대 남성 김모씨는 치료비가 필요해 대부업자에게서 200만원을 빌렸다 큰 낭패를 봤다. 이씨는 빌린 돈으로 심장수술을 받았지만 병원에 입원한 기간에 연리 570%에 해당하는 돈을 대부업자 이모(55)씨에게 뜯겼다. 이씨는 총 31명에게 1억 3,000만원을 빌려주고 연리 200~570%를 받아 대부업법을 위반했다.

불법 사금융 특별 단속에 적발된 불법 사채업자 하모(55)씨는 2010년 10월 30일 실내공사업자 나모(55)씨에게 300만원을 빌려줬다. 나씨가 빚을 갚지 못하자 폭행이 시작했다. 하씨는 지난해 4월 11일 나씨를 폭행하며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하씨는 1,000만원을 변제하겠다는 요지로 차용증을 쓰게 하더니 변제기일이 지나자 승용차를 할부로 구입해 대신 변제를 받기도 했다.

한편 경찰은 불법 사금융을 경제적 약자를 착취하는 대표적인 서민경제 침해사범으로 규정하고 금융감독원,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조해 지속적으로 단속할 계획이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