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상생, 뒤로는 중소 잡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두 얼굴’

롯데슈퍼
79개중 22개사나 SSM점포 편법 확장… 골목상권 '고사 위기'
극장 매점도 직접 운영… 빵·커피·패션 등 영역 불문
'사회 존경 기업' 역설하고도 "SSM 철수 못해" 이중행보
동반성장 로드맵 공개에 "정부 입맛 맞추기 쇼" 비난

중소상인들의 생계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상생은 뒷전, 무차별적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대기업들 때문이다.

어르고, 달래고, 윽박질러봐도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탄탄한 자본력과 유통망 앞에 중소상인들은 속수무책이다.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골목골목에서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중소상인들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대기업은 대체 어딜까. <주간한국>은 중소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나쁜 대기업'들을 차례로 짚어본다.

롯데그룹이 국내 대기업 가운데 '생계형 서비스업'에 가장 많이 진출했다는 오명을 쓰게 됐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유통서비스 적합업종 추진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총 79개 계열사 중 22개사가 생계형 서비스 업종에 진출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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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서비스업이란 도ㆍ소매업, 숙박·음식점업, 수리 및 기타 개인서비스업과 같이 진입 장벽이 낮아 영세기업이나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영위하는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종을 말한다.

롯데그룹이 이런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은 롯데백화점은 물론 롯데마트, , 등 주력 계열사 대부분이 유통 도ㆍ소매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호텔업 등은 생계형 서비스업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최근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기업형슈퍼마켓(SSM)'이다.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쇼핑이 운영하는 의 골목상권 위협은 심각한 수준이다.

롯데그룹은 SSM 업계에서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초 기준으로 의 점포 수는 직영점 275개와 가맹점 40개를 합쳐 모두 315개에 달한다.

롯데의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1월 CS마트를 집어삼키면서 점포 수를 크게 늘렸다. CS유통이 운영하는 점포는 직영점 굿모닝마트 35개와 임의가맹점 하모니마트 176개를 더해 모두 211개다. 롯데쇼핑은 CS마트 인수를 통해 모두 520여개에 달하는 점포를 보유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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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롯데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248개)와 GS슈퍼마켓(209개), 이마트 에브리데이ㆍ메트로(77개) 등 2~4위 업체들을 큰 차로 따돌렸다.

롯데의 공격적인 SSM사업 확장은 골목상권에 직접적인 피해를 안겨주고 있다. 대형마트와 달리 비교적 좁은 매장에 접근성이 뛰어난 SSM은 엄청난 속도로 주변 상권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이미 수도권의 웬만한 동네에선 SSM이 영세 슈퍼마켓들을 밀어낸 지 오래다.

롯데쇼핑은 올해도 80여개의 신규 SSM 점포를 개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신규 개설한 73개보다 높은 수치다. 골목상권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중소상인들의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규제 교묘하게 피해나가

롯데쇼핑은 또 ''라는 프렌차이즈형 SSM 가맹점도 운영하고 있다. 아직까진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 30여개 직영점이 전부다. 그러나 롯데는 향후 가맹점주를 모집해 점포를 확장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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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관련 업계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을 억제하는 유통법과 상생법에 발목이 잡혀 SSM 점포 확장이 여의치 않자 롯데 측이 고안해 낸 '꼼수'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개점 시 소용되는 비용의 51% 이상을 본사가 부담할 경우에만 사업조정신청 대상으로 적용을 받는다(상생법)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가맹점주의 투자 비율을 높이면 상생법의 규제 그물망을 교묘하게 피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는 골목상권 침해의 주범으로 지적 받고 있는 편의점을 통해서도 골목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계열사인 코리아세븐이 운영하는 을 통해서다. 의 점포수는 지난 2011년 말 기준으로 5,500여개에 달한다. 전체 편의점 2만650여개의 26%에 달하는 규모다. 또 지난 2010년 인수한 역시 골목 구석구석에 둥지를 틀고 있다.

당연히 일반 편의점 사업자들은 생계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실제 편의점의 연 매출은 2006년 4조9,600억원에서 2010년 8조3,900억원으로 4년 새 70%나 급증했다.

반면 기존의 골목 상권을 지켜왔던 일반 슈퍼마켓은 연평균 2,700곳이 문을 닫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계열사의 가맹사업 확대가 자영업자 몰락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반증이다.

롯데의 식품 제조 계열사인 롯데후레쉬델리카도 중소기업의 숨통을 죄고 있다. 삼각김밥을 비롯해 김밥, 햄버거, 샌드위치, 도시락 등 신선식품을 계열사 편의점에 독점 공급해 중소 신선식품 업체들을 궁지로 몰고 있는 것. 실제 2010년 롯데후레쉬델리카가 올린 584억원의 매출 중 무려 98%에 해당하는 569억원이 모두 계열사 간 거래였다.

신동빈 회장
중소식품업체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납품할 곳을 찾지 못해서다. 사정은 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과 의 점포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일반 편의점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소기업들은 줄어드는 일반 편의점을 상대로 파이를 나눠먹어야 하는 형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롯데는 '극장 매점'조차도 직접 운영하며 중소상인들의 사업 기회를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네마통상은 롯데시네마 수도권 점에서 8개 팝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시네마푸드는 지방 롯데시네마 7곳에서 팝콘 매장을 열고 있다.

심지어 롯데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장악의 이슈로 떠올랐던 제빵사업까지 벌이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씨가 운영하던 '포숑'이 제빵사업에서 철수하면서 그룹 전체가 손을 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계열사 롯데브랑제리의 '빵집'인 '보네스뻬'는 여전히 전국에 140여개 매장을 갖고 있다. 반면에 철수한 포숑은 매장이 7개에 불과했다.

이 밖에도 롯데는 외식사업, 커피사업, 패션사업, 관광사업, 각종 서비스 사업 등에 빠짐 없이 진출해 있다. 막강한 자본력과 유통망 앞에 소상공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롯데의 경영방식은 많은 비판을 받았고, 또 받고 있다. 당장 중소기업계가 롯데측 유동망 확장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과 정부의 모진 질책도 최근 들어 숱하게 있었다. 경제전문가들도 서민영역의 공격적 침범 구조가 장기화되면 나라 전체 경제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골목상권 진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 가열되자 결국 수많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영역으로 분류된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보여주기식 '상생'

그러나 유독 롯데만은 요지부동인 모습이다. 오히려 비판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채 사업영역을 더 넓히고 강화했다. 이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스타일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신 회장은 그 동안 상생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재벌기업의 골목상권 죽이기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됐을 때도 "SSM에서 철수할 계획이 없다"고 공공연히 밝힐 정도였다.

신 회장은 또 상생과 관련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실제 롯데는 그 동안 다양한 상생활동을 언론에 홍보해 왔다. 그때마다 신 회장은 현장에 얼굴을 비치고 상생을 약속했다. 지난해 사장단 회의에선 "사회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성장해나갈 것"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 회장의 경영 방침은 상생에 역행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롯데의 상생 활동은 보여주기식에, 신 회장의 약속은 빈말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신 회장이 상생을 화두로 내세운 정부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쇼'를 했다는 날 선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중적인 행태는 최근 롯데측이 펴낸 '동반성장 보고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롯데가 국내기업 최초로 발간했다고 밝힌 이 책에는 지난해 롯데그룹이 추진해온 동반성장 5대 과제와 그에 따른 각 계열사 실적까지 빠짐없이 실려 있다. 또 계열사별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이행 현황은 물론 3년 후 로드맵까지 공개했다.

재계에서는 상생의 '나쁜 예'로 회자돼 온 롯데가 다른 기업들을 제치고 국내 최초로 홍보용 책까지 내가며 '선전'하는 모습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롯데는 정부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앞으론 상생을 외치며 뒤로는 각종 편법 등을 동원해 중소상인들의 피를 빨아왔다"며 "롯데는 중소상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상생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