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평동에 위치한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본점. 주간한국 자료사진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발칵 뒤집혔다. 소기업 영업담당 부장이 과도한 실적 압박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SC은행의 표정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노조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도입을 강행한 성과급제가 실적 압박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어서다. 특히 리차드 힐 행장의 본사 정책 현지화 실패가 직원 자살을 불렀다는 주장도 함께 나오고 있어 SC은행으로서는 더욱 곤혹스럽다.

경기 용인서부경찰서에 따르면 SC은행 서울 모지점 소기업 영업담당 부장 조모씨(49)가 지난 18일 새벽 2시쯤 용인시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경찰은 자살 사유가 실적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조씨가 남긴 A4용지 3장 분량의 자필 유서에는 실적 압박에 따른 괴로움을 토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유족들도 조씨가 평소 과도한 실적 압박에 시달려 "출근하기 두렵다"는 말을 최근 자주 했다고 증언했다.

SC은행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 SC은행 관계자는 "아직 회사 측에서 유서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현재 경찰과 병원의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리차드 힐 SC은행장. 주간한국 자료사진
5등급은 급여 동결

은행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SC은행의 '성과연봉제'를 지목하고 있다. 성과연봉제란 직원 개인을 1~5등급으로 분류해 급여를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들은 지점장과 본부장급을 제외하고는 근속 연수에 따라 급여가 늘어나는 호봉제를 택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사측이 들고 나온 성과연봉제는 3등급 이상 직원에게만 노사 합의한 인금인상률이 적용되도록 하고 있다. 4등급일 경우 임금인상률의 절반만 적용하고, 5등급은 전년도 급여를 동결한다. 특히 2년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은 직원들은 후선으로 발령을 받고, 그래도 영업성과가 개선되지 않으면 임금이 삭감된다.

당시 노조는 성과연동제의 도입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지점장을 대상으로 한 후선역제도를 전 직원으로 확대하겠다는 의도로, 결국 일정기준에 미달한 직원들은 퇴출시키겠다는 방침을 회사가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노조의 반발에 SC은행은 한걸음 물러섰다. 후선역제도를 포기한 것이다. 대신 SC은행은 올해 초 6개월마다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하고 등급을 정하는 '성과향상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성과제 도입 이후 직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SC은행 내부관계자는 "회사가 어려운 영업 환경에도 과다한 목표를 지시하는 데다 매일 실적을 보고 받는다. 또 성과가 미미할 경우 해당 직원을 호출해 회의를 하는 등 과도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며 "이번 자살 사건은 성과급제의 문제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라고 지적했다.

노조 "공식적 문제 제기"

노조는 결국 올 게 왔다는 반응이다. 노조는 성과급제 도입과 관련, 과도한 실적 압박에 시달릴 것을 우려해왔다. 도입 여부를 놓고 사측과 극렬하게 대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조는 지난 7월부터 2,600여명(회사 추산) 직원들과 함께 두 달간 강원도 속초에서 파업을 벌이는 등 크게 반발한 바 있다.

현재 노조는 이번 자살사건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조씨뿐 아니라 많은 직원들이 극심한 실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행장 경영능력 도마에

SC은행은 성과제와 직원의 자살이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SC은행 관계자는 "해당 직원이 평소 실적이 좋아 권고나 조치의 대상이 아니었다"라며 "스트레스 관리를 못해서 벌어진,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SC은행의 이런 해명은 오히려 성과제에 대한 비판을 부추겼다. 실적이 우수한 직원에 대해서도 압박을 가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조씨는 무리하게 설정된 대출 실적을 모두 채웠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상을 강요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야말로 '마른 수건'을 쥐어 짠 셈이다.

물론 어느 은행이든 실적에 대한 압박은 있다. 그러나 SC은행의 경우 정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는 게 내부관계자의 전언이다. 이처럼 유독 실적 압박이 심한 이유에 대해 일각에선 리차드 힐 행장의 경영능력과 연관 짓기도 한다.

시중 은행들은 통상 행장이 직접 정책을 결정한다. 그러나 SC은행의 경우 본사에서 정책이 하달된다. 당연히 현지 사정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조율하는 게 행장의 역할이다.

그러나 "리차드 힐 행장이 이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한 탓에 조직이 서서히 곪아 들어가다 급기야 자살 사건까지 이어졌다"는 게 복수의 SC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SC은행 한 내부관계자는 "힐 행장은 그 동안 현지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런던 본사가 지시하는 대로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직원들 사이에선 행장이 본사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회자될 정도"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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