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에게 매독(梅毒)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서인도제도 풍토병이었던 매독은 콜럼버스 탐험대를 따라 1493년 유럽에 전파됐다.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나폴리 왕 계승을 놓고 이탈리아를 침략하자 영국ㆍ스위스ㆍ헝가리ㆍ폴란드 용병까지 참전했다. 학살과 강간을 일삼았던 프랑스 병사들은 매독에 걸렸고, 전쟁이 끝나자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 매독이 퍼졌다.

신대륙 개척자 콜럼버스를 필두로 철학자 니체와 작가 괴테, 화가 고갱까지 15세기 말부터 400년 동안 유럽에서만 1,000만명 이상이 매독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에선 매독을 이탈리아 질병이라고 불렀고, 이탈리아와 독일에선 프랑스 질병이라고 손가락질했다. 매독이 혼외정사에 대한 신의 저주로 여겨지자 처녀성과 동정은 추앙을 받았고 섹스는 모험으로 여겨졌다.

매독에 걸리면 복통과 불면증, 심장마비에 시달리게 된다. 매독균이 뇌와 척수를 파고들면 정신질환까지 일으킨다. 니체가 스위스 바젤에서 정신착란과 전신마비에 시달릴 때 의사는 니체가 매독에 걸렸다고 기록했다. 작곡가 베토벤과 시인 보들레르도 정신착란에 시달렸다. 스스로 귀를 잘랐던 화가 고흐도 매독에 걸려 정신병원에서 지내다가 권총으로 자살했다.

매독 치료제 살바르산은 1909년 6월 26일 발명됐다. 살바르산은 세상을 구하는 비소란 뜻. 독일 과학자 파울 에를리히(1854~1915년)는 606번에 걸친 실험 끝에 비소화합물 살바르산 606호를 만들었다. 에를리히는 매독에 걸린 토끼에 살바르산을 주입했고, 매독균은 다음날 토끼 몸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동양과 서양에서 독살하는 데 사용했던 비소가 생명을 살리는 약으로 변신했다.

에를리히는 특정 염료가 특정 조직에만 착색하는 현상을 보고 특정 세균에만 효과를 내는 화학물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바르산 개발은 쉽지 않았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에를리히는 포기하지 않고 연구한 끝에 마법의 탄환이라고 불린 살바르산을 개발했다. 600번이 넘는 실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기에 세계 최초 화학약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