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규 전 은행연합회장이 지난 20일 농협금융지주 신임 회장에 내정됐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에서 최종 후보로 추천된 지 불과 하루 만이다.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진행된 셈이다.

신 회장의 낙점 소식에 금융권은 적잖이 놀라는 눈치다. 당초 이철휘 전 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의 내정이 확정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 동안 신 회장의 이름은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었다. 당연히 고개가 갸우뚱 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찌됐든 이로서 신 회장은 향후 2년간 농협금융지주를 이끌어 가게 됐다. 하지만 아직 축배를 들긴 이르다. 노조와의 관계설정이나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예상외 깜짝카드, 농협도 "의외"

지난 3월 신용과 경제부문을 분리하면서 농협금융지주가 새롭게 출범했다. 당시 업계엔 지각 변동이 예고됐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타 금융지주사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 농협금융지주를 두고 금융권에선 '덩치 큰 느림보 곰'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낙하산 논란을 피하기 위해 내부 인사였던 신충식 현 NH농협은행장에게 회장직을 맡겼지만 조직 장악에 한계가 있었다. 타 금융지주사 회장들에 비해 중량감도 떨어졌다. 조직이 어수선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결국 신 전 회장은 지난 5월7일 긴급 소집된 임시경영위원회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농협금융지주는 조직을 추스르기 위해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를 구성, 차기 회장 물색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회추위는 회장 추천을 위해 지난 18, 19일 양일간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다.

첫날 회의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이철휘 전 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 다음날인 지난 19일에도 이철휘 전 사장과 권태신 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놓고 막판 조율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신동규 전 은행연합회장이 차기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된 것. 회추위의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이름은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깜짝카드'. 농협금융지주 내부에서도 고개를 갸웃할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관가 인맥ㆍ강한 추진력이 강점

왼쪽부터 강만수, 어윤대, 이팔성, 한동우, 김정태
금융권에선 신 회장의 관가 네트워크가 이번 후보 추천에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농협금융은 시중은행보다 공공성이 강한 데다, 정부출자로 설립된 만큼 정부나 국회 등을 상대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신 회장 회장은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과 금융정보분석원 초대 원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친 경제관료 출신으로 수출입은행장과 은행연합회장을 지냈다. 또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기획관리실장 등도 역임했다. 당연히 관가 인맥이 화려할 수밖에 없다.

실제, 신 회장은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의 추천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 1분과에서 상임 자문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당시 강 회장은 경제 1분과 간사였다. 두 사람은 경남고 선후배 사이다.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는 대학 동기로 막역한 관계다.

신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 주미 대사관 재경참사관으로 지낼 때 교분을 쌓았다. 당시 이 대통령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후 한국을 떠나 미국 워싱턴의 조지 워싱턴대 객원교수로 재직했다.

신 회장은 이처럼 탄탄한 인맥을 바탕으로 대 정부 관계에서 농협금융의 입장을 강하게 대변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관가를 떠난 지 10년이 지나 낙하산 논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더불어 신 회장의 강력한 추진력도 선임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신 회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추진력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신 회장은 과거 재임시절 강한 추진력과 개혁으로 괄목할만한 변화를 이끌어 낸 바 있다. 수출입은행장과 은행연합회장 시절, 신 회장은 과감한 개혁으로 기관의 체질을 바꿨다.

신 회장은 수출입은행장으로 재임한 지난 2003~2006년 외환위기 이후 위축된 조직을 확장했다. 외국은행 국내지점들이 독점하던 무역금융 시장에 수출입은행이 뛰어들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통해 신 회장은 외국은행들이 올려놨던 무역금융 수수료는 눈에 띄게 낮추는 성과를 거뒀다.

또 신 회장이 은행연합회장으로 일하던 2008년에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됨에 따라 은행들이 증권사와 경쟁하게 되면서 개점시간을 9시30분에서 9시로 앞당겼다. 아울러 은행권 임금 동결도 밀어붙였다. 금융위기 극복에 동참한다는 차원에서였다.

인맥과 추진력 외에도 노조와의 협력을 이끌어 낼 원만한 인간관계를 겸비하고 있다는 점과 농협금융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 등도 신 회장의 추천 배경으로 꼽혔다.

풀어야 할 숙제 산더미

지난 20일 회장에 내정됨에 따라 신 회장은 향후 2년 간 농협금융지주를 이끌게 됐다. 그러나 아직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최우선 선결 과제는 노조와의 관계설정이다. 노조는 신 회장의 선임을 "관치농협의 연장선상"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노조는 현재 정부와 농협중앙회가 지난달 29일 체결한 경영개선이행약정(MOU)을 '노비문서'라며 총파업 수순을 밟고 있다.

당초 정부는 농협사업구조개편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근거로 인력구조조정 등을 이행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독립사업부제 강화 ▲경영 효율화 ▲자체자본 확충 방안 마련 및 단계적 추진 등으로 수정됐다.

그럼에도 노조는 경영 효율화라는 명분하에 인력 구조조정, 임금감축 등이 무리하게 강행돼서는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특히 이런 우려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향후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신 회장이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 경영개선이행약정서의 세부 계획안을 오는 8월29일까지 제출해야 하는데 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지원금액을 삭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농협사업구조개편에 필요한 자금 11조원 중 6조원은 차입을 통해 자체적으로 조달했다. 문제는 나머지 5조원이다. 정부는 농협이 4조원의 농협금융채권을 발행하면 5년간 8,000억원의 이자를 보전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올 초 400억원만 지원받은 상태다. 정부는 매년 1,600억원씩 분기별로 400억원을 지급하되 이행 계획이 미흡할 경우 이를 삭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산은금융지주 주식 5,000억원, 한국도로공사 주식 5,000억원 등 1조원을 현물출자하기로 했으나 아직 한 푼도 들어오지 않았다. 산은금융지주의 경우 해외에서 발행한 산업금융채권에 대해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아야 하며, 도로공사는 배당률과 상환조건 등이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수익 창출기반 마련을 마련하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농협금융은 중앙회 시절인 2001~2008년까지 8년간 부채담보부증권(CDO)과신용부도스와프(CDS) 등 외화증권에 투자해 6억1,580만달러(약 7,4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봤다.

생산성과 수익성 역시 타 시중은행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다. 지난해 3분기 농협은행의 직원 1인당 충당금 적립 전 이익 규모는 1억1,900만원으로 국민은행(2억2,000만원)의 절반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직원 1인당 예수금과 대출금 역시 각각 103억원과 95억원으로 국민은행의 125억원과 115억원을 크게 밑돈다.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과의 소통도 관건이다. 물론 중앙회가 금융지주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만큼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만 금융지주가 중앙회에 휘둘릴 경우 신경분리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는 만큼 신 회장이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더딘 의사결정 속도, 낮은 생산성, 폐쇄적인 조직문화, 파벌 등도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이처럼 농협금융지주에는 현재 골치 아픈 문제들이 수북하다. 신 회장은 과연 이런 문제를 털어내고 농협금융지주의 경쟁력을 키워낼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그 여부에 금융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6대 금융지주사회장 PK출신이 싹쓸이
신동규 전 은행연합회장이 지난 20일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함에 따라 6대 금융지주사 회장이 모두 PK(부산ㆍ경남) 출신으로 채워지게 됐다. 특정 지역 출신들이 금융지주사 회장직을 독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먼저 신 회장은 경남 거제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재무부 자본시장과장, 재경원 금융정책과장, 공보관 등을 거친 이른바 '모피아'의 일원이다. 공직을 그만둔 뒤에는 수출입은행장과 은행연합회장을 지냈다.

다른 지주사 회장들도 모두 PK 출신이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경남 합천 출신이고,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경남 하동 태생이다. 또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부산 출신이다.

지주사 회장이 PK 일색이 된 것은 결코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견해가 많다. 현 정부 초ㆍ중반엔 이명박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가진 PK 금융권 인사들이 지주사 회장에 많이 기용됐다. 'MB노믹스'를 설계하고 현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강만수 장관과 대선 승리에 공을 세운 어윤대ㆍ이팔성 회장이 대표적인 예다. 신동규 회장도 현 정부 인수위에서 자문위원을 지냈다.

이들은 선임될 때마다 금융권 안팎에서 '보은 인사'나 '낙하산 인사' 등의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농협금융지주 노조도 신 회장의 선임을 '밀실 낙하산 인사'라고 규정,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한동우 회장과 김정태 회장은 이런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각각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으며 후보군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때문이다. 물론 PK 출신이라는 점 어느 정도 이점으로 작용했으리란 게 금융권의 공통된 견해다.

일각에서는 PK 출신 회장이 일종의 '정치적 보험'이라는 견해도 있다. PK가 정치적으로 새누리당 텃밭인 동시에 주요 야권 주자들의 출신지기 때문이다. 문재인 통합민주당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지사,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모두 부산ㆍ경남 인물이다. 연말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지주사가 안게 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PK 출신 회장이 적임인 셈이다.

●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 프로필

•학력

2003 경희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1979 웨일즈대학교대학원 금융경제학 석사

1969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학사

1966 경남고등학교

•주요경력

2008 제10대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2003 한국수출입은행 은행장

2002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 실장

2001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 국장

2000 재정경제원 공보관

1994 재정경제원 금융정책과 과장

1994 재무부 자본시장과 과장

1992 재무부 증권발행과 과장

1989 재무부 비상계획담당관

1973 제14회 행정고시 합격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