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태 의원은 자신의 대선 출마 선언에 대해 "조경태의 무한도전이 시작됐다"며 "인지도가 낮은 게 핸디캡이지만 한편으로는 잠재력이 크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또"진정한 국민통합과 동서화합을 통해 국민들에게 감동의 정치를 선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윤관식기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못다 이룬 꿈 40대 청년인 내가 반드시 이루겠다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리더십 필요… 친노 패권·계파주의 극복해야

부동산·교육·보육 개혁 이루겠다

조경태(44) 의원은 민주통합당 내 '1호'다. 조 의원은 지난달 11일 "40대 중반의 청년인 조경태가 부동산, 교육, 보육 3대 혁명을 이루겠다"며 당차게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조 의원의 출마 선언은 당내에서 도화선 역할을 했다. 손학규 문재인 상임고문, 박준영 전남지사 등이 조 의원의 뒤를 이어 출마를 선언했고, 다른 주자들도 조만간 출마를 공식화할 예정이다.

조 의원의 지역구는 민주통합당의 '사지(死地)'인 부산 사하구다. 조 의원은 만 28세이던 1996년에 이곳에서 제15대 총선에 출마해 낙선했고, 4년 뒤인 2000년에도 고배를 들었다.

조 의원은 그러나 2004년 17대 총선부터 지난 4ㆍ11 총선까지 3차례 연속 승리하며 '작은 기적'을 이뤘다. 조 의원은 지난 4월 11일에 치러진 19대 총선에서는 무려 58.2%의 지지율을 얻어 54.7%에 그친 문재인 상임고문을 앞섰다.

조 의원은 "2차례 낙선 이후 주위에서는 '차라리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도 있었지만 원칙을 지키기 위해 민주당을 떠나지 않았다. 어려울 때도 비겁하게 피하지 않았던 게 승리의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 선언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조 의원을 지난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1시간가량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조 의원은 "조경태의 무한도전은 이제부터"라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못 다 이룬 꿈을 40대 청년 조경태가 반드시 이루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내에서 가장 먼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언제부터 이런 구상을 했나.

"3년 전쯤부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출마 결심을 굳힌 이유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한국 정치가 국민은 무시한 채 정치 재벌, 정치꾼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었다. '내가 한 번 바로잡아봐야겠다'는 신념을 갖고 출마를 선언했다."

-조 의원의 대선 출마 선언에 대해 현실적으로 차기보다 5년 뒤인 차차기를 염두에 둔 포석 아니냐는 해석이 있다.

"아마도 처음 (대선 경선에) 나오다 보니 그런 말씀들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느 정치인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대로 된 정치 개혁, 나아가 대한민국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구시대적 사고나 리더십으로는 안 된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부산은 민주당의 불모지다. 이런 곳에서 3선에 성공했는데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내 경쟁력은 국민을 믿고 따라가는 데 있다.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비겁하게 떠나지 않았다. 늘 지역민들과 함께 했다. 때로는 친구가 됐고, 때로는 아들이 됐다. 그런 모습이 지역민들에게 신뢰를 준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이슈를 선점했다는 것도 주민들에게 어필됐다고 자부한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로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남은 기간 인지도를 높일 방안은 있나.

"제게 관심을 보여주시는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어게인(Again) 2002'를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도 2002년 처음 출마를 선언했을 때는 지지율이 0.2%였다고 한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진심이 통했고 결국 본선에서도 승리했다. 공정한 게임이 치러진다면 나의 진심, 능력이 국민들에게 통할 것으로 본다. 인지도가 낮다는 것은 분명히 핸디캡이지만 한편으로는 잠재력이 크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 출신으로 '노무현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럼에도 친노 진영, 특히 노 전 대통령의 복심(腹心)이라는 문재인 고문을 향해서는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5가지 이유' 등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소위 친노라는 분들 중에 다소 억울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친노 인사들이 노 전 대통령처럼 순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 노 대통령을 도왔을 때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은 정말 순수했다. 그렇지만 요즘 친노 중 순수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과거 노 전 대통령은 계파정치를 극도로 혐오했는데 지금 '그들만의 친노'는 '우리가 최고야' '우리가 해야 돼'라는 식의 패권주의, 계파주의에 빠져 있다. 그런 식이라면 미래가 없다. (문재인 5대 불가론 기자회견 이후 시끄러운데) 당내 1차 예선에서 그 정도 공세도 못 막는다면 본선에서는 어떻게 이길 것인가?"

-야권 주자들의 지지율은 대세론으로 무장한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며, 상황이 이런데도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나.

"지지율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은 국민들이 현재 거론되는 후보들은 (박 전 위원장의) 대항세력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처럼 상황이 흘러간다면 정권 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번 민주당 경선이 2002년처럼 역동적이고 감동적이어야만 본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패권주의, 계파간 이해관계를 반드시 탈피해야 한다. 경선을 훌륭하게 치러야 본선에서도 이길 수 있다."

-대선이 반 년도 안 남았다. 이번 대선의 키워드는 뭐라고 생각하나.

"출마를 선언한 뒤로 지방을 다니고 있다. 서울도 힘들지만 지방은 더 힘들다.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가 국민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조경태 의원이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의 적임자'라며 격려해준다. 지금은 여야, 동서, 진보와 보수 등 모든 국론이 분열돼 있다. 나는 통합과 민생이 대선의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민주당 주자들은 하나같이 호남을 거론하며 구애하고 있다. 올해 대선에서 '호남 포용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호남이네 영남이네 수도권이네, 이렇게 논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지역주의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지역감정의 피해자일 수 있다. 1971년 대통령 선거 이전에는 지역감정이 없었다. 나는 한국 정치를 1971년 이전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본다. 어느 지역을 포용하고, 안 하고는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 것 같다."

-현재까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여야 주자 중 조 의원이 가장 젊다. 때문에 사람들이 조 의원의 핵심 공약이나 정책에 관해서 궁금해한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부동산 혁명이다. 참여정부에서 뼈저리게 실패했고, 많이 부족했던 부분이 주택정책이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둘째, 교육 개혁이다.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고 했지만 요즘에는 잘사는 집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간다. 기회균등의 시대를 열겠다. 셋째, 보육정책이다. 아이를 안전하게 맡길 만한 국공립 보육원을 획기적으로 늘려가겠다. 여성의 인권 신장과 가정의 행복을 이루겠다."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못 이룬 게 40대 기수론이다. 조 의원의 필승카드는 무엇인가.

"어떤 인터넷 공간에서는 나를 미국의 링컨과 케네디를 더한 이미지로 언급했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베트남의 호치민 같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했던 40대 기수론을 완성하고 싶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도 완성하지 못했던 지역주의 타파도 꼭 이루고 싶다. 조경태의 필승카드는 국민을 믿고 따르는 진정성이다."

-경선 룰에 대해서도 주자들 간에 시각차이가 있는 것 같다. 룰과 관련해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나.

"2002년 경선 때는 7명의 주자가 출마했고, 2007년에는 컷 오프 제도를 뒀기 때문에 5명만이 경선을 치렀다. 결과적으로 2007년 경선은 흥행에 실패했다. 국민들에게 감동을 드릴 수 있어야 본선에서도 이길 수 있다. 계파 간 이해관계를 버려야 승리할 수 있다. 2007년에 우리 당에서 낸 후보는 본선에서 500만 표 차이로 참패했다. 당이 만족하는 후보가 아닌, 국민이 만족할 수 있는 후보를 낼 수 있는 공정한 경선이 치러져야 한다."

-MB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때문에 새삼 대통령의 자질에 대해 말들이 많다. 조 의원이 생각하는 대통령의 자질은.

"21세기는 새로운 시대인 만큼 새로운 지도자상이 필요하다. 과거 우리나라는 대통령이라고 하면 군림하는 존재였다. 말로는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가르치려고 했다. 나는 국민들 속에서 헌신적인, 실천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나는 부산에서 3선에 성공하면서 충분히 검증됐다고 자부한다. 얼마나 지역민들을 잘 섬겼으면 3선을 할 수 있었겠나. 그런 점들을 국민들이 잘 봐줬으면 좋겠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조 의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인 듯하다. 하나는 신선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모하다는 것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경태의 무한도전이 시작됐다.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정치인 중 하나인 조경태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나는 국민들에게 헌신하고 희생할 각오가 돼 있다. 28세 때 처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아직까지도 그때의 열정이 남아 있다. 진정한 동서화합, 국민통합을 통해 국민들에게 '정치란 이런 거구나'라는 감동을 선사하겠다."

'민주당 불모지' 부산에서만 3선 '제2의 노무현'
폭압적 노점상 단속 보고 정치 결심
청문회로 스타 발돋움한 원칙주의자
2011년 국정감사 우수의원상 수상


최경호기자


조경태는 신화의 주인공이다. 적어도 야권에서는 그렇다.

조경태는 민주통합당의 불모지나 다를 바 없는 부산에서만 3선에 성공하며 부산의 간판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고, 나아가 대선 후보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자갈치시장 지게꾼의 아들로 태어나 대선 후보까지 발돋움한 조경태는 '제2의 노무현'으로 불린다. 거듭된 낙선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민주당 간판을 고집했고 청문회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한 것까지, 조경태는 영락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빼 닮았다.

조경태는 지독스러울 정도로 원칙을 고집한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자 당 안팎에서는 대통령 탈당론이 거세졌다. 안동선 전 의원 등은 노 전 대통령의 사퇴를 종용하기도 했다. 조경태는 그러나 "나가려면 안 의원이 나가라"며 목청을 높였다.

조경태는 1995년 우연한 기회에 구포장터에서 노점상 단속반들의 폭압적인 철거 과정을 목도했다. 70대 어르신들과 힘없는 아주머니들의 울부짖음에 조경태의 가슴은 분노로 가득 찼다. 이 사건은 토목공학도였던 조경태를 정치로 이끈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그래, 힘 없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자.'

15, 16대 총선에서 잇달아 낙선했지만 조경태는 굴하지 않고 17대 때도 부산 사하구에서 출마했다. 그리고 마침내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저거 부산 사람 맞냐? 혹시 전라도 사람 아니냐"는 비아냥이 "그래 이제 네 진심을 알겠다"는 격려로 바뀐 것이다.

조경태는 이른바 '지역구 관리'의 달인이다. 조경태는 지역구의 행사 참석 요청에 어지간하면 얼굴을 비친다. 그날 못 가면 다음날이라도 꼭 찾아간다. 국회에만 입성하면 지역구에는 발길을 끊고 달랑 꽃만 보내는 '화환 정치'는 남의 얘기다.

조경태는 의정활동도 뛰어나다. 2010년 입법 및 정책 개발 우수의원으로 선정됐고, 2011년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 선정 우수의원상을 수상했다. 조경태는 "나는 지역민들의 아들이자 친구이고 동생이자 형이다. 그런 다짐이 3선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