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最古)의 기업.'

올해로 116년 전통을 지닌 두산을 일컫는 말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경영에 참여한 세대도 많다. 여타 그룹의 총수들이 대부분 2세인데 비해 두산가는 3세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와 함께 두산의 4세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그룹의 3세들과 비슷한 연배이거나 오히려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게 됐다. 왕성한 경영활동을 벌이고 있는 두산의 4세 중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한 인물은 이번에 (주)두산의 회장을 맡게 된 박정원 회장이다.

1994년 재입사후 탄탄대로

박정원 회장은 1981년 대일고등학교와 1985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1987년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MBA를 마쳤다. 1990년 두산산업 뉴욕지사에 사원으로 입사한 박 회장은 이후 도쿄지사를 거친 후 일본 기린맥주에 둥지를 틀었다. 박 회장의 기린맥주 입사에는 1930년대 소화기린맥주의 주주로 참여, 두산의 모기업인 동양맥주의 기틀을 마련한 고 박승직 창업주와의 인연과 "남의 밥을 먹어봐야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다"는 두산 고유의 경영철학이 함께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린맥주에서 2년간 근무하며 경영 관련 경험을 쌓은 박 회장은 1994년 OB맥주 이사대우로 두산에 재입사해 1999년 (주)두산 관리본부 총괄 전무, (주)두산 상사BG(현 두산 글로넷BU) 부사장을 거쳐 2001년 (주)두산 상사BG 사장까지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2005년 두산건설 부회장에 오르고 2007년 (주)두산 부회장까지 겸직하며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준 박 회장은 2009년 두산가 4세로는 최초로 회장으로 승진, 지난 5월에는 마침내 지주회사인 (주)두산의 회장에 올랐다.

과묵하지만 스피드 즐겨

박정원 회장은 재벌가 자제답지 않게 소탈하고 과묵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다. 두산가의 엄격한 가풍에서 맏형으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필요한 말만 무게 있게 하는 스타일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과묵한 성품과는 달리 스피드와 관련된 취미를 지닌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야구광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것도 투수의 강속구와 타자의 빠른 안타가 보여주는 스피드 때문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의 야구사랑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다. 박 회장의 부친인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은 그룹 회장에 오른 이듬해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의 창단을 주도하며 야구단 경영에 힘써왔고 모친 고 이응숙 여사 또한 잠실경기장은 물론 전지훈련까지도 찾아갈 정도로 야구사랑에 열심이었다.

박 회장 또한 두산베어스의 매 경기에 대한 보고를 따로 들을 정도로 야구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특히 서울지역 라이벌인 LG트윈스와의 잠실 경기는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는 후문이다. 야구단 경영에는 큰 줄기에만 관여하되 운영의 세부 사항은 구단 프런트에 전적으로 일임하고 있다.

두산가 장남 명분도 앞서

박정원 회장은 두산가 4세 중 그룹을 앞으로 이끌어 갈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4세 중 가장 먼저 회장직에 오른 점이나 차기 총수의 등용문인 (주)두산의 회장을 맡게 된 점, (주)두산의 지분율 등을 봤을 때 박 회장은 차기 그룹 총수 후보 중 가장 앞자리에 위치해 있다.

두산은 오너일가가 지주회사인 (주)두산에 대한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 그룹 전체를 장악하는 지배구조를 취하고 있다. 오너일가가 (주)두산을, (주)두산은 두산중공업(41.24%), 두산중공업은 두산인프라코어(44.80%)ㆍ두산건설(72.74%)ㆍ두산엔진(42.66%) 등을 지배하는 식이다.

박 회장은 (주)두산의 지분을 5.35% 확보하고 있다. 4세들은 물론이거니와 현재 그룹의 총수를 맡고있는 박용만 회장(3.47%)보다도 지분율이 높다. 지난해 10월 부친인 박용곤 명예회장으로부터 지분 상당 부분을 증여받은 결과다. 그룹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지분량은 아니지만 그만큼 그룹 내에서의 입지가 탄탄하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유의미하다.

박 회장은 두산가의 맏아들로서 명분에서도 가장 앞서 있다. 두산은 고 박승직 창업주와 고 박두병 초대회장, 박용곤 명예회장을 거치며 장자가 차기 대권을 이어받는 장자상속 전통을 지켜왔다. 4세 중 맏이로서 가족모임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지난 3월 박용만 두산 회장이 총수 자리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재계에서는 3세 중 마지막 순번인 박용만 회장과 4세 중 첫번째로 꼽히는 박정원 회장의 물밑경쟁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박정원 회장으로서는 삼촌과의 경쟁구도로 몰아가는 그룹 내외의 시선이 불편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박용만 회장이 두산의 회장에 오르면서 박정원 회장은 이러한 논란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됐다.

남은 것은 차기 대권을 기다리며 (주)두산을 정상화시키는 것뿐이다. 물론 두산가의 형제경영이 사촌경영으로 바뀌면서 현 체제가 흔들릴 위험도 있으나 적어도 박정원 회장까지는 안정적으로 승계가 이뤄지지 않겠냐는 것이 재계의 시선이다.

향후 성적표 관심 쏠려

문제는 박정원 회장이 맡게 될 (주)두산과 두산건설의 향후 성적표다. 박 회장은 지난해 두산건설에서 좋은 실적을 내지 못하며 경영능력을 의심받은 바 있다. 두산건설을 맡고 있을 당시 박 회장은 레미콘, 레저, 건설기계 등 비주력 사업을 분리ㆍ독립시키고 비수익사업은 정리함으로써 회사를 건설전문기업으로 키웠다. 그러나 계속되는 부동산 경기침체와 글로벌 금융위기로 두산건설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지난해 두산건설은 전년대비 소폭 오른 2조6,34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나 2,69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이에 대해 두산건설 측은 국내 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른 대손충당금 증가와 지급이자 등 영업외비용 상승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박 회장이 두산건설을 맡았던 2005년 당시의 매출액은 1조7,123억원 영업이익은 1,168억원이었다. 박정원 회장이 (주)두산을 맡게 됐지만 여전히 두산건설의 대표이사 회장을 겸하고 있는 이상 두산건설의 실적은 박 회장에게 큰 부담으로 남을 예정이다.

업황악화로 고생하던 두산건설 때에 비하면 지주회사인 (주)두산의 회장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그룹 총수인 박용만 회장을 잘 보필하며 차기 총수로서의 수업에 집중하면 되는 까닭이다. 박 회장이 두산가 4세 시대를 열고 차기 총수까지 무사히 달려갈 수 있을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