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그룹의 지배구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모든 주주는 자신이 보유한 지분만큼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주식회사의 본래 의미가 무색하게 10대그룹 총수들은 1%도 채 못 되는 지분으로 그룹의 전체 계열사를 사실상 지배하며 최대한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 총수들 자신의 지분율은 점차 떨어지고 있지만 인수ㆍ합병과 기업분할 등의 방법으로 내부지분율을 높여가며 그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주간한국>에서는 10대그룹 총수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지 차례로 짚어본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 회장은 10대그룹 총수 중 조양호 한진 회장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총수지분율을 자랑한다. 정 회장은 현대차의 지분 2.08%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2.12%보다 0.04% 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정 회장의 2~6촌 이내 혈족과 1~4촌 이내 인척을 포함한 친족들의 지분율은 1.60%로 역시 지난해(1.63%)보다 0.03% 포인트 줄어들었다.

정몽구 회장 지분율 높아

정 회장과 친족을 합한 총수일가의 지분이 0.07% 포인트 하락할 동안 계열사의 지분은 소폭 상승했다. 지난해 44.43%였던 현대차 계열사 지분율은 올해 1.36%포인트 상승한 45.79%를 기록했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 하락폭보다 계열사의 지분율 상승폭이 컸던 까닭에 전체 내부지분율 또한 49.19%에서 50.43%로 늘어났다. 정 회장의 지분이 줄어들었지만 그룹에 대한 지배력은 오히려 늘어났다고 해석될 수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 계열사 중 현대제철(12.5%), 현대글로비스(11.5%), 현대하이스코(10.0%), 현대엠코(10.0%), 현대오토에버(10.0%), 해비치호텔리조트(8.0%), 현대모비스(7.0%), 현대자동차(5.2%)를 지니고 있다. 그룹 주력 계열사의 주식을 상당부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정 회장의 현대차 지배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주식은 현대모비스의 7.0% 지분이다.

단순한 순환출자 구조

현대차는 10대그룹 중 가장 전형적이고 단순한 환상형 순환출자구조(이하 순환출자구조)를 지니고 있다. 순환출자구조란 대기업 집단이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동원하는 변칙적인 출자방법의 하나로, 3개 이상의 계열사가 연쇄적으로 상호 출자해 자본금을 늘려나가는 방식이다. 순환출자를 할 경우 이용할 수 있는 자본금이 실제 자본금보다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순환출자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계열사가 위기를 맞을 경우 그 파급력이 큰 단점이 있다.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순환출자구조를 지니고 있는 삼성과 달리 현대차는 단 두 개의 순환출자고리만을 지니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7.0%의 지분을 갖고 있는 현대모비스가 현대자동차의 지분 20.8%를 보유하고 있고 현대자동차는 기아자동차의 지분을 33.9% 갖고 있으며 기아자동차는 다시 현대모비스의 지분 16.9%를 지니고 있다.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라는 4단계의 간단한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기아자동차가 지분 21.3%를 갖고 있는 현대제철(현대모비스 지분 5.7% 보유)을 껴서 5단계의 고리를 형성할 수도 있다.

현대차는 10대 그룹 중에서도 특히 출자 비중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정 회장이 지니고 있는 현대차의 지분은 5.2%에 불과하지만 현대모비스가 보유한 20.8%까지 합하면 그 지배력은 26%로 대폭 상승한다. 마찬가지로 정 회장은 기아자동차의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음에도 현대자동차가 보유하고 있는 33.9% 지분만큼의 지배력을 지니게 되는 셈이다.

갈 길 먼 경영권 승계

순환출자구조는 총수의 그룹 지배력 강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경영권 승계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순환출자고리를 형성하는 계열사 중 하나의 지분만 확보하면 다른 계열사들에 대한 영향력도 강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안정적인 후계구도를 완성했다는 평을 듣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을 꼽을 수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사실상의 차기 총수로 꼽힌다. 후계구도를 흔들거나 계열분리를 요구할 만한 형제들이 없는 데다 일찍부터 뛰어든 경영일선에서 거둔 좋은 실적으로 그룹 내외에서 좋은 평을 듣고 있기도 하다. 능력 좋은 차기 총수 후보 1순위 정 부회장에게 단 하나 걸리는 점은 그룹의 지분 문제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그룹 주력 계열사들의 정 부회장지분은 미미하다.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의 지분은 아예 없고, 기아자동차의 지분 1.7% 확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 부회장이 1%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들은 서림개발(100.0%), 현대위스코(57.9%), 이노션(40.0%), 현대글로비스(31.9%). 현대엠코(25.1%), 현대오토에버(20.1%), 기아자동차(1.7%) 정도다. 이 중 현대글로비스, 기아자동차를 제외하면 대부분 비상장 계열사로 경영권 확보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 부회장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받기 위해서는 순환출자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현대모비스의 지분 확보가 절실하다. 그러나 정 부회장이 지니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은 전혀 없고 그나마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가 0.7%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경영권 승계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렇다고 약 6조원에 달한다는 현대모비스 지배 지분을 확보할만한 자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재계에서는 정 부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확보를 위해 ▲현대글로비스가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인수해 영향력을 높이는 것과 ▲현대건설과 현대엠코가 합병한 후 매각 지분으로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매입하는 것 ▲일감 몰아주기로 현대글로비스, 이노션, 현대엠코 등의 기업가치를 높인 후 잔여 지분을 이용하는 것 ▲정 회장의 지분을 증여받아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에 나서는 것 등의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의 시선을 감안한다면 어느 것 하나 만만한 방법이 없는 터라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순환출자구조 자체를 문제삼는 정치권이다. 특히 민주통합당의 경우 아예 순환출자 금지를 당론으로 채택, 직접적인 압박에 나선 모양새다. 만약 현재의 순환출자구조를 현대모비스를 정점으로 하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면 정 부회장의 그룹 장악은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이러한 까닭에 일각에서는 올해 출범한 현대오트론을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급격히 키워 향후 지주회사로 삼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먼 얘기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