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경기지사가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참여하기로 했다. 김 지사는 경선후보 등록 마지막 날인 12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선 경선 참여를 공식 선언했다.

지난 4월 22일 여권 잠룡중 처음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한 김 지사는 그간 정몽준 전 대표, 이재오 의원과 함께 이른바 '비박'(非朴ㆍ비박근혜) 3인방으로 불리며 완전국민경선제로의 경선 룰 변경 없이는 경선에 불참하겠다는 배수진을 쳐 왔다. 그러나 정 전 대표와 이 의원이 지난 9일 경선 불참을 선언한 것과 달리 김 지사는 식언(食言)의 부담을 무릅쓰고 대선 경선에 합류했다.

김 지사는 "경선 출마가 내가 해야 할 옳은 길"이라며 구당ㆍ구국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라고 했지만, 정 전 대표와 이 의원이 '명분'을 앞세운 데 반해 김 지사는 '실리'를 택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선 경선에 참여함으로써 차기 또는 차차기 주자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12월 대선의 과실도 딸 수 있다는 것이다.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할 경우 김 지사는 '역할론' '희생론'을 평가받아 '몸값'이 올라갈 수 있고, 설령 패하더라도 "할 만큼 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수반되면 향후 당 안팎에서 위상이 높아질 수 있다.

김 지사의 합류로 새누리당 경선은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김 지사, 김태호 의원,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의 '5파전' 구도로 치러지게 됐지만, 사실상 박 전 위원장이 대선 후보로 결정된듯한 분위기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12일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이런 상황에서 김 지사의 막판 경선 출마는 적잖은 함의를 지닌다. 우선 새누리당은 김 지사의 경선 참여로 최악의 흥행 실패는 피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대선 후보 중 그나마 김 지사의 캐릭터가 박 전 위원장과 맞설만해 경선에 관심을 촉발할 수 있고, 박 전 위원장의 독주 이미지도 상당 부분 감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지사가 장고 끝에 경선에 참여한 데는 그 나름의 계산과 박 전 위원장 측의 대선 전략이 맞닿은 측면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 지사는 결과가 뻔한 경선보다 대선 후 자신의 거취를 고려했고, 박 전 위원장 측은 대선 과정에서 김 지사에게 특별한 역할을 기대했다는 전언이다.

김 지사의 임기는 2014년 6월로,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임기를 마치고 차기 당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 시기와 묘하게 맞물려 있다. 김 지사는 지사직을 마무리하면서 명예롭게 당에 복귀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김 지사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박 전 위원장 측으로서는 김 지사가 경선 과정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남다른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른바 박 전 위원장의 '흑기사' 역할로, 박 전 위원장 대신 곤란한 일을 맡아 해결해주는 것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 과정에서 박 전 위원장이 직접 비판하고 나서기 힘든 역할을 김 지사가 떠맡는 형태다.

박 전 위원장 측은 대선이 본격화하면서 자신들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위원장 대선 캠프의 한 중진 의원은 "야권은 박 전 위원장을 직접 공격하거나 MB정부 심판론과 연계한 '이명박근혜'라는 말을 부각시키는 네거티브 전략으로 나오고 있다"며 "박 전 위원장 개인에겐 그다지 흠이 없는 만큼 '이명박근혜'를 중점적으로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어 "야권의 '이명박근혜' 공격을 막거나 최소화하기 위해선 박 전 위원장과 MB정부와의 차별화가 필요하다"면서 "그렇다고 차별화를 인위적으로 하거나 박 전 위원장이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대선 주자인 김태호 의원,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 등은 MB정부를 공격하기엔 이 대통령과의 인연 등 생래적으로 한계를 지녔기에 김 지사가 그 역할을 맡기에 적임자라는 말도 덧붙였다.

박 전 위원장 측은 대선에서 MB정부의 비리가 자칫 '박근혜 대세론'에 악영향을 줄까 우려하고 있다. 때문에 MB정부의 비리에 대해선 가혹할 만큼 추궁해 '여권공동책임론'의 유탄을 피하고 차별화도 꾀하겠다는 입장이다.

'박근혜당'으로 리모델링한 새누리당이 지난달 말 민주통합당과의 19대 국회 개원(開院) 협상에서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해선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관련 의혹에 대해선 특별검사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한 것도 같은(차별화)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박 전 위원장이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데 대해 크게 실망한 것은 19대 총선 과정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불체포특권 포기'를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유감의 측면이 있지만, MB정부와 확실한 거리를 둘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데 대한 불만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김 지사 측은 '흑기사 역할론'에 대해 금시초문, 불쾌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선 경선 참여를 전후한 김 지사의 행보를 잘 알고 있는 지인들은 '흑기사' 역할에 나설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김 지사 측과 박 전 위원장 측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지사는 '비박' 3인방에 머무르면서도 경선 참여에 고민하고, 그 명분을 찾았다고 한다. 심지어 박 전 위원장이 손을 내밀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합류할 조짐도 보였다고 한다.

김 지사의 경선 참여에 대해선 '페이스메이커' '들러리'라는 평가 절하와 함께 김태호 의원과의 2위 싸움이 볼만하다는 얘기도 회자된다.

하지만 김 지사가 본선을 위해 '흑기사' 역할을 자처할 경우 경선은 물론, 대선판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김 지사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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