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는 두 자리 수의 전기료 인상을 강하게 요구하던 한국전력(이하 한전)에 "인상률을 5% 미만으로 낮추라"고 권고했다. 문제는 현정부 들어 원가에 미달하는 전기료를 유지함으로 인해 4년 동안 적자행진을 거듭해온 한전의 불만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정권교체를 앞두고 최후의 물가잡기에 나선 정부와 몰릴 대로 몰린 한전의 줄다리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전기료 인상폭 입장차 커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지경부는 한전이 제출한 10.7%의 전기료 인상안을 반려하며 "인상률을 5% 미만으로 낮추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번에 지경부가 반려한 인상안은 지난 9일 한전 이사회에서 의결, 다음날 제출됐다. 해당 인상안에서 한전은 전기료 인상 요인이 16.8%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 이 중 10.7%는 전기료 인상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6.1%는 연료비 연동제의 기준 시점을 변경해 미수금 형태로 보전받겠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지경부는 17일 전기위원회를 긴급 소집, 한전 인상안의 타당성을 심의한 뒤 이를 부결시켰다.

한전의 전기료 인상안 제출은 올 들어 벌써 두 번째였다. 한전은 지난 4월 말 13.1%의 전기료 인상안을 제출했지만 "인상폭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바 있다.

당초 지경부는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여름철 이전에 전기료 인상폭을 결정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2차 인상안까지 반려되면서 최종 전기료 인상안은 최소한 이달 말까지는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19일 이사회가 열리기는 했지만 정부의 인상안 반려 이전에 안건이 결정된 터라 이번 이사회에서는 전기료 인상 건이 포함되지 않았다.

"현실적 수준 인상 필요"

지경부가 한전의 두 번째 인상안까지 반려하면서 한전 내부에서는 행정소송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모양새도 나쁘거니와 공기업으로서는 유례없는 일이니만큼 행정소송이 한전 내부의 주류 의견은 아니다"면서도 "지경부가 제시한 5% 인상안은 사실상 (한전의) 목을 죄는 것과 다름없어 최후의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전했다.

최소 두자릿수 이상의 전기료 인상안을 요구하는 한전의 강한 주장에는 지난해 받은 최악의 성적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지난해 43조5,32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39조5,066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2010년과 비교해 10.2% 성장한 수치다. 그러나 2010년 2조2599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6,850억원으로 적자전환했고 -692억원이었던 당기순손실 또한 -3조2,930억원으로 규모가 크게 늘었다. 올해 1분기에도 -1,054억원의 영업손실과 -5,12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한전은 하반기까지 적자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재무건전성 지표 하락도 피할 수 없었다. 유동자산의 증가폭(13조1,564억원→14조1,259억원)이 유동부채의 증가폭(14조722억원→17조7,412억원)에 미치지 못했던 탓에 유동비율이 대폭 하락(93.5%→79.6%)했다. 총자산(129조5,178억원→136조4,679억원)에서 자기자본(57조2,765억원→53조 8,040억원)이 차지하는 자기자본비율은 44.2%에서 39.4%로 감소한 반면, 부채총액(72조2,413억원→82조6,639억원)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부채비율은 126.1%에서 153.6%로 크게 늘었다.

증권업계 전망치에 따르면 한전의 잉여현금흐름 또한 지난해 5,806억원에서 올해 -6조7,711억원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현금부족 사태에 휘말릴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고 해석될 수 있다.

한전은 지난해 8월과 12월 각각 4.9%, 4.5%의 전기료 인상을 단행했다. 그러나 석탄, 석유, LNG 등의 가격인상으로 연료비의 증가폭이 전기료 인상폭보다 컸던 탓에 결국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한전이 지경부가 권고한 5%의 인상안에 대해 손사래를 치는 이유다.

지난해 한전의 소액주주들이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을 대상으로 한 소송을 전개한 것도 한전에는 압박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한전 소액주주들은 "김 사장이 지난 3년간 연료비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전기료를 인상,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이에 자극받은 김중겸 한전 사장은 "올해에는 원칙대로 올리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사전조율을 거쳐 인상안을 신청했다면 이제는 현실적인 수준의 요구를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경영합리화부터"

지경부는 1차 인상안 반려에도 또다시 두자릿수의 인상안을 제출한 한전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지경부 측은 "지난 4월 1차 인상안을 돌려보내며 재검토를 요청했던 의도를 (한전이)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며 "연료비 연동제의 변경도 합리적 사유에 근거하지 않은 일시적 기준 변경으로 부적절하다"고 단정했다.

또한 지경부는 "전기료 인상을 요구하기에 앞서 경영합리화부터 추진하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한 지경부 관계자는 "한전이 적자를 기록한 배경에는 연료비 상승이나 낮은 전기료의 문제도 분명히 있었지만 공기업 특유의 방만한 경영도 무시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지난 4년간 당기순손실 행진을 벌이고 있는 한전의 1인당 평균 보수액은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2008년 6,645만원에서 지난해에는 7,133만원으로 늘어났다. 지식경제부 산하 공공기관 60곳 중 1억원 이상의 연봉자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부담이 큰 정부가 결국 한자릿수 인상안으로 못을 박지 않겠냐"며 "공기업인 한전으로서는 정권교체 이후를 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 내다봤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