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힘겨운 불황나기… '사활 건 현금 확보'경기 불확실성 높아지자 현대중·동양·금호산업 등 보유자산·주식 잇단 처분삼일제약·보해양조 등은 부동산 매각해 목돈 마련

유럽 위기 등으로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들 기업은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주식은 물론이고 토지나 건물 등 돈이 되는 자산은 가리지 않고 내다 팔고 있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 기업이 보유 주식을 처분해 현금화한 사례는 모두 67건에 달했다. 지난 2월과 3월 단 4~5건에 불과했던 보유 주식 매각이 4월(10건) 이후 매달 10건을 넘어서는 등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이달 들어서도 이미 7개사가 보유 주식을 팔아 현금을 확보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은 이날 장 시작 전 시간 외 대량매매를 통해 보유하고 있던 현대자동차 주식 320만3,420주를 팔았다. 이를 통해 현대중공업은 7,463억9,686만원을 확보했다. 이는 유럽 위기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선박 건조대금 확보가 어려워진 가운데 계열사인 현대오일뱅크의 기업공개(IPO)가 미뤄지자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현대차 주식 매각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풀이된다.

동양도 재무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자회사 동양리조트 주식 76만6,585주 전량을 이마트에 매각했다. 금호산업 역시 지난달 12일 보유했던 대우건설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ㆍ금호고속 등의 주식을 팔아 1조4,882억9,741만2원의 현금을 확보했으며 하이트진로도 유동성을 늘리고 부채비율을 줄이기 위해 페르노리카코리아임페리얼 주식 274만5,000주를 얼라이드도멕에 7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이 밖에 포스코가 4월에 보유 중이던 SK텔레콤ㆍKB금융지주ㆍ하나금융지주 지분을 매각해 5,800억원가량의 현금을 확보한 바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중국 시멘트사인 중국건자재연합(CNBM)에 산둥시멘트법인 지분을 750억원에 매각했으며 미얀마의 봉제공장 운영법인 등을 대우팬퍼시픽에 팔았다.

토지ㆍ건물 등을 처분해 목돈을 마련하는 곳도 늘고 있다. 올 들어 유형자산처분을 공시한 곳은 20곳으로 삼일제약과 보해양조ㆍ팜스웰바이오ㆍ행남자기ㆍ신일건업 등이 재무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보유 토지나 건물을 팔았다.

현재도 현금 확보를 위한 유휴자산 매각은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주력사업인 조선과 해운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STX그룹으로 총 2조5,000억원가량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보유자산과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을 추진하고 있다. STX는 이를 위해 STX OSV 지분 매각과 STX에너지ㆍSTX중공업 지분 매각ㆍ상장, 해외 자원개발 지분 매각, STX팬오션이 보유한 비(非)경제성 선박 매각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1조원 규모의 STX OSV 지분 매각은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 역시 건설 부문의 용지 매각을 통해 차입금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건설 부문의 을지로 부지를 매각하기 위해 매수업체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황으로 효성은 추가적인 지방 부지 매각도 검토 중이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이 보유 주식이나 토지ㆍ건물 등을 팔아 현금 보유량을 늘리는 것은 유럽 위기 등으로 국내외 경기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지면서 유동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외 변수로 국내 증시가 부진한 영향에 따라 IPO나 유상증자 등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점도 기업들이 자산 매각에 나서는 이유가 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IPO에 나서 자금을 확보한 곳은 이달 현재 13곳에 불과하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기업들이 보유 주식이나 토지ㆍ건물 등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려는 것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당분간은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수밖에 없어 기업들이 앞다퉈 현금 늘리기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팀장은 이어 "최근 '돈맥경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풀리는 자금에 비해 기업 투자 등이 많지 않아 실제로 유통되는 통화량이 많지 않다"며 "그만큼 미래 불확실성이 부각되고 있고 또 증시 내에서 자금을 융통하기도 쉽지 않아 기업들이 우선 불요불급한 자산을 팔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상장사 기업설명(IR) 관계자는 "기업들은 보통 연말 결산을 대비해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보유 주식이나 토지ㆍ건물 등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유럽 위기가 부각된 후 서둘러 보유 자산을 매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처럼 지분이나 토지를 매각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증시 하락과 경기침체 등 불확실성 때문에 수요가 많지 않아 우량 물건을 제외하고는 소화가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용기자 jy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