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 23일 밤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고 있다.
안철수(50)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방송 출연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프로그램 제목은 '기쁘지 아니한가'이지만 정작 기쁜 것은 안철수일 뿐 많은 사람들은 별로 기쁘지 않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여러 비판을 종합해 보면 안 원장의 방송 출연이 공정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진다. 민주통합당의 손학규 상임고문, 김두관 전 경남지사 등 유력 대선주자들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을 희망했지만 거절당했던 사실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범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안 원장은 지난 23일 SBS 오락프로그램인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했다(녹화는 18일). SBS는 "예능(오락)프로그램에까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여권 1명(박근혜), 야권 1명(문재인), 무소속 1명(안철수)을 출연시킨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전시(戰時)'가 아닌 '평시'라면 SBS의 주장에 이의를 달기는 어렵다. 누구를 출연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방송사의 고유권한이다. 또 오락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반드시 연예인만 출연하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시기다. 안 원장은 단순히 전국 여러 대학의 교수 중 한 명이 아니다. 범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이다. 더구나 대선까지는 채 5개월도 남지 않았다. SBS의 '논리적인' 항변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대선주자 캠프 관계자는 "KBS나 MBC가 아닌 SBS이기에 이해한다"고 짧게 답했다. 또 다른 캠프의 관계자는 "이른바 유력주자들만 모시자는 것 아니냐"면서도 "거기야 상업방송이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정치인 출연은 더 이상 없다더니

지난 1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끝으로 SBS는 "더 이상 정치인의 출연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논란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SBS의 '공언(公言)'은 결국 '공언(空言)'에 그치고 말았다. SBS는 "이건 어디까지나 예능(오락)프로그램일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한 대선주자 캠프 관계자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라면 소위 메이저 대선주자 세 사람"이라며 "전국 방송에서 대놓고 메이저 주자들에게 줄을 대겠다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전 위원장, 문재인 고문, 안철수 원장은 방송 출연 후 지지율이 올라갔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정책이나 공약 등 이른바 콘텐츠는 뒷전에 둔 채 이미지에만 치중한 만큼 반드시 긍정적 효과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지지율 상승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 막상 본 게임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선은 여러 후보 중 1명만이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이기에 반드시 공정성이 담보돼야 하는데 SBS의 행태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고 전제한 뒤 "안 원장 역시 단순히 오락프로그램에 한 번 출연하고, 책 한 권 출간했다고 해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검증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며 "오히려 안 원장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고개를 가로저은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여전히 모호한 스탠스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대로 안 원장은 지난 23일 밤 방송된 힐링캠프에서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교묘하게 피해 나갔다.

특히 대선 출마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안 원장은 "저를 지지하는 분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제 생각이 그분들의 기대 수준에 맞을지, 제가 정말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 세 가지를 꼭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또다시 안 원장 특유의 '알쏭달쏭 화법'을 구사한 것이다.

지난해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안 원장의 행보는 여느 정치인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지난 총선 때는 자신과 가까운 몇몇 후보들을 지목해서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출판 기념회도 열어 '인기'를 과시했다. 그럼에도 안 원장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마치 실물정치와는 거리를 두는 듯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안 원장의 SBS 오락프로그램 출연과 여전히 모호한 태도에 대해 한 신문은 지난 25일자 사설을 통해 "만일 그렇다면 (안 원장이) 프로에서 보여준 태도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비겁하게까지 보인다. 이러다 또 다른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도 출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라고 안 원장을 강하게 성토했다.

실제로 안 원장은 지난 2009년 MBC의 오락프로그램인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 단숨에 큰 인기를 얻었다. 안 원장의 이번 '힐링캠프' 출연을 두고 "3년 전과 같은 효과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 대선주자 캠프 관계자는 "안철수 원장의 SBS 출연은 시청률 제고에 목을 맨 방송사와 지지율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안 원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 아니겠냐"고 반문한 뒤 "알맹이는 뒤로 한 채 오로지 이미지만 부각시키는 것은 유권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행위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캠프 관계자는 "안 원장은 스스로에 대해 (보수도 진보도 아닌) 상식주의자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말장난에 불과하다"면서 "안 원장이 정말 상식주의자라면 지금쯤은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현재 안 원장의 행보는 비상식의 극치"라고 질타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