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룹의 지배구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모든 주주는 자신이 보유한 지분만큼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주식회사의 본래 의미가 무색하게 10대 그룹 총수들은 1%도 채 못 되는 지분으로 그룹의 전체 계열사를 사실상 지배하며 최대한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

총수들 자신의 지분율은 점차 떨어지고 있지만 인수ㆍ합병과 기업분할 등의 방법으로 내부지분율을 높여가며 그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주간한국>에서는 10대 그룹 총수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지 차례로 짚어본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한화의 지분 1.15%를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의 총수지분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1.16%)과 비교해 0.01%포인트 낮아졌다. 같은 기간 김 회장의 2~6촌 이내 혈족과 1~4촌 이내 인척을 포함한 친족들의 지분율은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김 회장의 친족 지분율은 10대 그룹 중 세 번째로 적은 0.81%다. 그러나 1, 2위인 현대중공업(0.13%), SK(0.56%)의 후계자들이 아직 뚜렷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차장)의 지분율이 낮은 수준임에는 분명하다.

순환출자고리 가장 많아

김 회장과 친족들 지분율을 더한 총수일가 지분율이 0.01%포인트 줄어들 동안 한화의 계열사 지분율도 0.23%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54.20%였던 계열사 지분율은 올해 53.97%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같은 기간 기타 동일인 관련자들의 지분이 세배 이상 늘어난(0.80%→2.55%) 까닭에 전체 내부지분율은 56.97%에서 58.48%로 1.51% 늘어났다.

김 회장은 한화 계열사 중 (주)한화(22.5%), 한화 이글스(10.0%), 한화기술금융(1.9%), 한화역사(0.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의 아들인 김 차장은 (주)한화(4.4%), 한화에스엔씨(50%)의 지분을 지니고 있다. 계열사 중 환상형 순환출자구조(이하 순환출자구조)의 핵심이자 사실상 지주회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주)한화가 김 회장 부자의 그룹 지배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들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알아보기 수월하게 만들겠다는 취지로 지난달 공개한 '대기업집단별 소유 지분도'(이하 지분도) 만을 살펴보면 한화는 삼성, 롯데 등에 비해 덜 복잡한 지배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화는 총 31개의 순환출자고리를 보유, 계열사 간 상호 출자로는 10대 그룹 중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순환출자구조에는 한화의 54개 국내 계열사 중 12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한화 계열사 중 순환출자구조의 핵심이 되는 계열사는 김승연 회장 부자가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주)한화와 한화케미칼이다. 31개의 순환출자고리 중 22개가 (주)한화와 연관돼 있고 한화케미칼 또한 24개((주)한화와 연관된 고리를 제외하면 9개)의 순환출자 고리와 관계를 맺고 있다.

한화의 순환출자구조는 거의 대부분이 '(주)한화→기타 계열사(1~5단계) →한화손해보험→(주)한화'의 형태를 지닌다. 예를 들면 (주)한화가 한화케미칼의 지분을 37.6% 보유하고 있고 한화케미칼은 한화엘엔씨의 지분 100%를 갖고 있다. 또한 한화엘엔씨는 한화손해보험의 지분 4.4%를 지니고 있고 한화손해보험은 다시 (주)한화의 지분 0.2%를 보유함으로써 하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주)한화와 연관되지 않는 순환출자고리들은 '한화케미칼→기타 계열사(1~3단계) →한화손해보험→한화케미칼'의 형태다. 이 또한 한화손해보험이 마지막 출자단계에 위치한다. 한화케미칼이 한화갤러리아의 지분 100%를 지니고 있고 한화갤러리아는 한화손해보험의 지분 0.4%를, 한화손해보험은 한화케미칼의 지분 0.1%를 지님으로써 형성되는 고리다.

총수에게 결정권이 몰려있는 국내 대기업의 특성상 총수가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사익을 추구할 경우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지난 2월 있었던 (주)한화의 상장폐지 위기는 대표적인 예다.

40억원이면 순환출자 해소

(주)한화는 김승연 회장 등 경영진의 배임ㆍ횡령 혐의가 발생했다고 2월 3일 장 마감 후 공시했고 이에 상장폐지까지 이어질 뻔했지만 한국거래소의 입장 번복으로 거래가 재개됐다.

거래 재개에도 추락한 시장 신뢰도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한화는 긴급이사회를 열고 투명경영 제고방안을 논의, 관련 규정을 개정한 바 있다. 당시 일부 주주들은 총수지분율이 1%대에 불과함에도 상호출자로 내부지분율이 60%에 달함으로써 오너 리스크의 빌미를 주게 되는 것을 지적, 순환출자 해소를 요구하기도 했다.

10대 그룹 중 순환출자고리가 가장 많은 한화이지만 순환출자 해소를 결심할 경우 치러야 할 비용은 여타 기업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다. 지난달 23일 '재벌닷컴'이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바탕으로 각 그룹의 순환출자 해소 비용을 분석,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화의 경우 단순히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데는 40억원 정도밖에 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31개 순환출자고리의 마지막 단계가 전부 한화손해보험인 까닭에 한화손해보험이 지닌 (주)한화, 한화케미칼 지분만 해소하면 되기 때문이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