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헌금 전달의혹을 받고 있는 조기문 전 새누리당 부산시당 홍보위원장(가운데)이 지난 8일 새벽 조사를 받고 부산지검을 나서다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부산=연합뉴스
다시 '검찰의 계절'이다.

제18대 대선을 4개월여 앞두고 검찰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검찰의 칼끝이 때로는 여당을, 또 때로는 야당을 겨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여당을 겨눈 듯하면서 야당을 향하기도 한다. 검찰의 '검무(劍舞)'에 정치권도 덩달아 춤을 출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최근 한 달 새만 보더라도 검찰은 정국을 쥐락펴락했다.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이 저축은행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불려나갔다. 그 결과 이 전 의원은 구속됐고, 정 의원은 체포동의안의 국회 부결로 간신히 영어(囹圄)의 신세는 면했다.

또 지난달 31일에는 한 달 동안 완강하게 버티던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저축은행비리합동수사단(단장 최운식 부장검사)에 자진 출석해서 10시간 넘게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달력이 8월로 바뀌자마자 검찰의 칼끝은 다시 여권으로 향하고 있다. 그것도 '미래권력 0순위'라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측근 중 한 명인 현기환 전 의원과 현영희 의원을 겨누고 있다. 이 사건이 터지면서 자연스레 박 원내대표는 화제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한 야당 관계자는 "검찰의 칼끝이 정말 여당을 겨냥한 것인지, 아니면 저축은행 사건 때처럼 여당을 징검다리 삼아 야당을 노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대선까지 앞으로 4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검찰의 움직임은 변화무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지원→4대강 왜?

지난달 초 박지원 원내대표가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를 때만 해도 정치권, 특히 야권에서는 "남의 일이 아니다"는 말이 공공연했다. 박 원내대표의 소환을 신호탄으로 야권 정치인들이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될 거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박 원내대표는 솔로몬 저축은행 등에서 8,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반전된 것은 박 원내대표가 검찰에 전격 출석한 지난달 31일부터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 수사가 야권 정치인들로 확대되지 않고, 4대강 비리 쪽으로 선회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정치적 지형이나 대선 구도 등 여러 여건을 감안했을 때 야권 쪽 수사 확대가 되레 역풍을 맞을 수 있을 거라는 분석이 뒷받침됐다.

그런 가운데 임내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2일 검찰의 4대강 공사 관련 비자금 수사에 대해 "검찰이 4대강 사업 낙동강 칠곡보 공사에서 비용을 부풀려서 비자금이 형성된 사실을 확인하고도 수사를 축소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임 의원은 이어 "검찰이 박지원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8,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만으로 체포영장을 청구하면서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는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 조성 자료를 확보하고도 아무런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 검찰 선배로서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검찰로 바로 서달라"고 목청을 높였다.

임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대구고검장과 광주고검장을 역임했으며, 현역 국회의원 300명 중 검찰 출신으로는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이다. 임 의원의 검찰 정보력은 자타가 공인한다.

공천헌금, 제2의 저축銀?

8월 정국은 새누리당의 공천헌금 거래 의혹 파문으로 벌집을 들쑤셔놓은 듯하다. 야당에서는 "공천심사위원이었던 현기환 전 의원이 현영희 비례대표 의원에게 공천헌금 3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것은 결국 총선을 지휘했던 박근혜 전 위원장의 책임"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박근혜 책임론'이 대두되자 새누리당은 지난 6일 의혹 당사자인 현 의원과 현 전 의원을 제명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황우여 대표는 "금품이 오간 게 사실이라면 당대표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박근혜 책임론' 확산 차단에 주력했다.

야당은 "그게 어떻게 황 대표의 책임이냐"고 공세 수위를 높여가면서도 칼끝이 야권으로 틀어질 경우도 대비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검찰은 선진통일당의 공천헌금 거래 여부에 대해서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상황 변화에 따라 민주통합당 쪽으로 화살이 향하지 말란 법도 없다.

한 야권 관계자는 "저축은행 사건은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정두언 의원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듯했으나 결국 검찰의 칼끝은 야당 사령탑 박지원 원내대표로 향했다"며 "검찰의 강한 압박이 이어지는 동안 야권이 위축됐던 게 사실 아니냐. 제2의 저축은행 사건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檢風'이 역대 대선 승패에 영향 미쳤다


2002년 이회창 아들 병역면제 드러나 盧 간발차 승리
2007년 BBK사건 무혐의 MB 역대 최다표차 당선

최경호기자

최근 몇 차례 대선에서 검풍(檢風ㆍ검찰의 바람)이 불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실제로 대선에서 검찰의 '역할'은 막대했고, 승패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정치권에서 "다시 검찰의 계절"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헌정 사상 첫 여야 간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졌던 1997년 대선 직전에는 이른바 'DJ 비자금 사건'이 불거졌다. 그해 10월 강삼재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김대중 후보가 6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수사 불가"라는 '정치적' 판단을 내렸고, 김대중 후보는 3전 4기에 성공했다.

2002년 대선 때는 '병풍(兵風)'이 정국을 강타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두 아들이 불분명한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이 이 후보 측근의 계좌를 추적하는 등 수사에 착수했다. 노무현 후보는 대세론으로 무장한 이 후보를 간발의 차로 누르고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

'검풍'이 가장 강했던 대선은 2007년으로 기억된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BBK 사건이 대선판도 뒤흔들 기세였으나 검찰은 모두 무혐의로 결론지었다. 야당은 크게 반발했지만 검찰의 면죄부를 손에 쥔 이명박 후보는 역대 최다 표차(530만 표)라는 기록과 함께 대승을 낚았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