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수천억원대 손실을 입힌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16일 서울서부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거공판 출석을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비자금 횡령 정관계로비 등 기소사유도 다채
김 회장, 회사와 주주에 수천억 손실 끼친 혐의로 징역 4년 벌금 51억원
한나라 로비사건 조사 당시 "적극 협조"공언 뒤 해외도피 하기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그룹차원 철통방어 불구 2007년 비자금 폭로로 4조원대 차명주식 드러나 경영 일선 퇴진 불명예
이재현 CJ그룹 회장 차명자금 세간에 알려져 1700억원 세금 납부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된 것을 두고 재벌가 총수들과 검찰 간의 질긴 악연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실제 국내서 내로라할 대기업 총수들은 거의 빠짐없이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그야말로 검찰 문지방이 닳도록 오갔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렇다면 어느 기업 어느 오너가, 어떤 혐의로,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주간한국>이 되짚어봤다.

김승연ㆍ최태원 검찰 질긴 악연

회사와 주주들에게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끼친 혐의 등으로 징역 4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 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 회장은 재벌가 가운데서도 유독 검찰 신세를 많이 진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까지 모두 다섯 번째다. 스스로도 "팔자가 세서 그렇다"는 자조 섞인 말을 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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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이 처음 검찰청에 출석한 건 1993년. 김 회장은 당시 그룹 계열사인 태평양건설의 사우디아라비아 공사대금 650만달러 가운데 470만달러를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 구속 기소됐다.

횡령한 자금은 미국 내 호화주택을 구입하는 데 투입됐는데, 해당 주택이 영화배우 실버스타 스탤론이 살던 집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던 김 회장은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두 달 만에 풀려났다.

그로부터 불과 2년 뒤인 1995년에도 김 회장은 검찰의 표적이 됐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다. 김 회장은 당시 불기소 되기는 했지만, 까다로운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또 2003년에는 대선자금 수사 당시 김 회장이 서청원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 10억원을 건넨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김 회장은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이런 약속을 뒤엎고 출국금지조치 하루 전 부인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7개월 만에 귀국한 김 회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벌금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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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는 대한생명 인수와 관련해 대검에 불려 나왔다. 검찰은 한화그룹이 대한생명 인수를 위해 외국계 금융기관과 이면계약을 맺은 정황을 포착, 김 회장에게 이와 관련한 내용을 집중 추궁했다.

그러나 당시 김 회장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일관했다. 결국 검찰은 김연배 한화증권 부회장을 구속시키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검찰과 질긴 악연을 맺고 있다. 최 회장이 현재 회사자금횡령 혐의를 포함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최 회장이 처음 검찰청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4세의 나이로 SK그룹의 전신인 선경의 이사대우로 재직하던 최 회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11개 은행에 20만달러를 분산예치(외화 밀반출)한 혐의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부인 소영씨와 함께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이 돈이 최 회장의 월급과 미국에 사는 친인척으로부터 받은 결혼 축의금이라는 최 회장 부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증거불충분'으로 일단락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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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년여 뒤인 1995년 최 회장 부부는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던 대검 중수부에 다시 소환되는 비운을 맞았다. 당시 분산 예치했던 20만달러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은 스위스 당국의 협조를 얻어 비밀계좌 찾기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또 당시 최 회장은 검찰의 수사 초점이 노 전 대통령에게 집중돼 사법처리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 회장의 세 번째 검찰 출두는 곧바로 구속으로 이어졌다. 최 회장이 2003년 1조5,000억원대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된 바로 다음 날이다.

최 회장은 그해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보석으로 풀려났고, 2008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다. 이어 8ㆍ15 특별사면을 받으면서 경영권과 신병문제를 말끔히 해소하는 행운을 얻었다.

세 차례나 검찰 조사 이후 최 회장은 경영에 매진했다. 그러나 이번엔 거액의 선물투자가 발목을 잡았다. 그룹 계열사의 자금으로 5,000억원대 선물투자를 벌이다 3,000억원을 날린 것이다. 최 회장은 손실을 계열사 자금으로 메워 넣는 과정에서 수사당국에 꼬리가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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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삼성가도 예외 없어

검찰에 불려나가는 수모를 당한 것은 국내 1위 기업의 총수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예외는 아니다. 이 회장의 검찰 첫 소환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 100억원을 준 혐의를 잡고 이 회장을 소환했다.

이 사건으로 이건희 회장은 같은 해 12월 불구속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2년 뒤인 97년 개천절 특별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됐다.

삼성은 이 때부터 검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시는 나를 검찰에 출석하게 하지 말라"는 이 회장의 강한 질책에 따른 것이라는 후문이다.

이후 삼성은 초호화 변호인단과 치밀한 방어전략을 수립해 이건희 회장을 필사적으로 보호했다. 이로 인해 이건희 회장은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나 2005년 8월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 때도 검찰 소환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7년 김용철 전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의 양심선언에서 촉발된 비자금 사건으로 이 회장은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당시 삼성 특검 수사를 통해 4조원이 넘는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차명주식이 드러났다. 이 회장이 자녀들의 경영권 불법승계 과정에 개입한 사실도 밝혀졌다. 결국 이 회장은 눈물을 머금고 경영 퇴진 선언을 해야 했다.

이 회장의 조카이자 범삼성가의 일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 역시 '비자금' 관련 검찰 수사로 곤욕을 치렀다.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은 2008년 '살인 청부'라는 범죄와 연루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2006년 7월부터 2007년 1월까지 당시 이재현 회장의 개인자금을 관리하던 재무팀장 이모씨는 매달 2, 3%의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170억원을 조직폭력배 출신의 사채업자 박모씨에게 투자했다.

그러나 박씨가 빌린 돈 일부를 돌려주지 않자 이씨는 조직폭력배를 시켜 박씨를 살해하려 하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혐의를 받았다.

시선은 이 사건보다 이재현 회장의 자금 출처에 쏠렸다. 이에 대해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차명자금에 대해 "선대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개인적인 재산"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재산관리인 이씨가 CJ그룹의 재무팀 부장으로 일하면서 이재현 회장의 개인자금을 관리했다는 것이 경찰 수사결과 드러나면서 세간의 질타를 받았다.

이 일로 이재현 회장은 1,700억원에 이르는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 그러나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은 검찰 및 경찰 인사에 따른 수사팀 교체로 사실상 흐지부지된 모양새다.

다른 총수들 대부분도 마찬가지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도 검찰과 오랜 악연으로 이어져 있다. 정 회장이 검찰에 처음 불려간 건 1978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1978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으로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다.

당시 현대그룹 산하 한국도시개발(현 현대산업개발)은 압구정동 한강변에 35∼60평 아파트 952가구를 신축했는데, 차관급 1명, 전직장관 5명, 국회의원 6명 등 공직자 190명과 언론인 34명에게 특혜분양 한 게 문제가 됐다.

당시 정 창업주는 입을 굳게 닫았다. 그리고 결국 당시 한국도시개발공사 사장이었던 정 회장이 서울지검 특수부에 구속됐다. 아버지 대신 아들이 처벌받는 전례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후 20년이 넘도록 잠잠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대검 중수부가 사상 초유의 대선자금을 수사하던 2004년 현대차가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한나라당과 노무현 후보 캠프에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시 수사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정 회장은 김동진 그룹 총괄부회장이 책임을 지면서 사법처리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 회장은 2006년 1,200억원대의 회삿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고, 계열사에 4,000억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정 회장은 2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각계의 구속 반대 탄원과 건강상의 문제 때문이었다. 이후 정 회장은 2008년 서울고법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선고를 받은 데 이어 특별 사면됐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회장직을 두고 벌어진 '형제의 난' 과정에서 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 혐의가 폭로되면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도 2001년 항공기 도입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50억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모친인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 역시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법원 양형기준 강화… 재계 벌벌
김승연 실형 선고에 최태원 재판 영향 예의주시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징역 4년과 벌금 51억원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회사와 주주들에게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끼친 혐의(특정경제법죄가중처벌법상 횡령ㆍ배임) 때문이다. 이는 지난 2월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 200억원이 넘는 배임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은 이후 두 번째다.

법원이 양형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배임ㆍ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다른 기업 총수들은 바짝 긴장한 모양새다. 특히 정치권이 재벌 총수의 횡령ㆍ배임 등에 대해 실형을 내리는 쪽으로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에 따라 공식처럼 여겨지던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판결은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가장 큰 충격에 빠진 곳은 SK그룹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김 회장의 판결 이후 SK그룹은 이 결과가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미칠까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호석유화학도 전전긍긍하고 있는 분위기다. 박찬구 회장이 지난해 12월 서울남부지검에 의해 112억6,000만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수백억원대의 손실을 입힌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기 때문이다.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 역시 긴장되긴 마찬가지다. 회사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수천억원대의 피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