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재판장 배준현)은 지난 24일 삼성전자와 애플코리아가 각각을 상대로 낸 특허권 침해 금지 청구소송에서 모두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사진은 판결에 따라 판매 금지, 폐기 처분 대상이 된 애플의 아이패드(왼쪽 아래), 아이폰4(왼쪽 위)와 삼성전자의 갤럭시탭10.1(오른쪽 아래), 갤럭시S2(오른쪽 위). 연합뉴스
태풍의 눈 속에 있는 것처럼 고요하다. 글로벌 IT업계 1, 2위를 다투는 애플과 삼성전자가 지난 1년간 벌인 특허 소송의 첫 결말을 코앞에 두고 전 세계가 숨죽이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안방인 국내 법원 판결에서는 삼성전자가 약간 앞섰지만 본게임이자 애플의 안방에서 벌어지는 미국 재판 결과에 따라 양사 및 IT업계의 미래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애플-삼성전자 특허전쟁의 첫 한국판결이 내려졌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서로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지 각각 1년 4개월, 1년 2개월 만이다. 그동안 양사는 20여 차례의 심리를 거치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번 판결의 경우 소가가 3억5,000만원(삼성전자 제기 소송), 7억원(애플 제기 소송)에 불과하고 특허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액도 크지 않았지만 삼성전자의 안방에서 이뤄지는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는 24일 오전 11시 열린 애플-삼성전자 특허침해 맞소송 1심에서 양사에 각각 2건과 1건의 특허침해를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애플은 삼성전자가 침해를 주장한 5건의 특허 중 '데이터 송신 전력 감소 기술'과 '단말기가 사용할 자원의 전송모드 알림 기술' 등을 침해, 총 4,000만원의 손해배상을 하게 됐다. 반면 삼성전자는 애플의 '바운스백' 특허를 침해, 2,500만원을 물어주게 됐다. 이 특허는 사진이나 영상 등이 마지막 콘텐츠일 경우 드래그할 때 자동으로 튕겨 나오는 효과를 주는 기능이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손해배상과 함께 자사 모델들에 대한 판매 중단 및 재고 폐기 명령도 받았다. 애플은 아이폰3GS, 아이폰4, 아이패드1, 아이패드2 등 4종을, 삼성은 갤럭시S, 갤럭시S2, 갤럭시넥서스, 갤럭시호핀 등 10종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양사가 가처분 집행정지를 신청할 경우 집행은 당분간 보류된다.

배심원 판단 항목 500개 넘어

안방인 한국에서 벌어진 재판결과가 삼성전자 측에 다소 우세하게 진행되며 시선은 다시 미국 법원으로 쏠렸다.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서 양사의 최후 변론이 마무리되며 공식 일정이 이제 배심원 평의와 판결 2개만 남았기 때문이다. 배심원단은 지난 22일과 23일에 걸쳐 평결을 위한 협의에 들어갔다.

미국 내 소송에서 애플은 삼성전자 제품 28개에 대해 자사의 특허 7종에 대한 침해를, 삼성전자는 애플 제품 5종에 특허침해 5건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 간에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면 배심원들은 각각의 특허와 고발된 제품을 기반으로 손해를 나눠 판단해야 한다. 문제는 일반인 남성 7명, 여성 2명으로 이뤄진 배심원단이 단기간 내에 파악하기엔 관련 내용이 너무 복잡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배심원단은 법원이 제시한 20쪽, 33개 항목 평결양식을 작성해야 하는데 각 항목에 해당하는 단말기가 수십 종에 달하는 까닭에 판단해야 할 전체 항목은 500개를 넘는다.

최종평결기한이 24일(현지시각)로 정해져 있지만 소송 사안이 복잡한 데다 배심원 평결에 대해 양사 모두 이의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상호특허침해 판결 가능성 커

애플-삼성전자 특허침해 소송 관련 미국 재판은 크게 둘 중 하나로 결론 날 것으로 보인다. 애플 혹은 삼성전자가 이기는 경우, 그리고 상호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판결이 나는 경우다.

이중 가능성이 큰 것은 후자다. IT업계 전문가들은 대부분 미국 법원이 애플의 통신 특허침해, 삼성전자의 디자인 특허침해를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낼 것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양사가 상대방에게 문제 삼은 특허침해가 다수인데다 향후 이권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법원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동안 루시 고 판사가 양사 CEO에게 수차례 협상 명령을 내린 것도 이런 부담감 때문으로 해석된다.

어느 쪽의 확연한 승리가 있을 경우에는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패소에 따르는 타격은 삼성전자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애플에 비해 요구하는 특허 사용료가 훨씬 적을뿐더러(애플→삼성전자 27억5,000만달러, 삼성전자→애플 4억 2,180만달러 요구) 긴 재판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각인된 '삼성전자는 애플의 모방꾼(copycat)'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갤럭시노트2, 갤럭시S3 미니 등이 출시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추락한 브랜드 이미지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반면 애플은 특허권을 지나치게 남발했다는 지적을 받게 될 뿐, 사용료 이외에 추가로 받게 되는 타격은 얼마 없다. 물론 지난해 3분기부터 삼성전자에 내주기 시작한 스마트폰 1위 자리를 되찾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지만 이는 9월 발매되는 아이폰5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문제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