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금영수증 '사각지대' 부동산·웨딩 등 서비스업 '가맹의무 없다' 거부연수입 2400만원 이하 강제가입 대상 제외이사업체 등 생활민감업종 가맹의무기준 강화해야

직장인 서모(34)씨는 최근 강동구의 한 아파트 전세계약을 마치고 깜짝 놀랐다. 부동산중개업자에게 50만원이 넘는 돈을 복비(중개수수료)로 지급했음에도 불구하고 현금영수증 지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현금영수증에 대한 소득공제율이 높아진다는 소식을 들은 서씨는 발급을 강력히 요청했으나 중개업자는 "가맹 의무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서씨는 "정부가 현금영수증 소득공제율을 높였다고 하는데 정작 큰돈 들어가는 일에는 현금영수증 발급이 안 된다니 답답한 일"이라고 말했다.

국세청 공식통계만 보자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오인할 수 있다. 현금영수증 가맹률이 지난 2011년 말 현재 98.7%에 달한다. 업종별로 봐도 소매업 98.6%, 음식숙박업 98.6%, 병의원 99.8%, 학원 99.6%, 전문직 96.4%, 서비스 97.3%, 기타 95.7% 등으로 가맹률이 양호하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구멍이 적지 않다. 정작 이사ㆍ결혼 등 건당 큰 목돈 수준의 현금결제가 관행처럼 이뤄지는 서비스업종에서는 현금영수증 발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탓이다.

이 같은 사각지대는 느슨한 현금영수증 가맹점 가입의무 기준 때문에 발생한다. 현행 소득세법은 직전 연도 수입금액이 2,400만원 이하인 사업자들에게는 현금영수증 가맹점 가입을 강제하지 않고 있다. 이러다 보니 부동산중개업의 경우 소비자가 한꺼번에 큰돈을 쓰면서도 현금영수증 발급을 받을 수 없는 대표적인 업종이 돼버렸다. 소규모 부동산중개업자의 경우 수백만원의 복비를 받아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할 의무가 없다는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경기침체로 부동산중개업자 등 자영업자들의 매출은 점점 감소하고 있어 현금영수증 의무가맹 적용대상도 자연스레 느슨해지게 될 우려가 있다.

이삿짐센터, 웨딩 촬영 등 다른 서비스업종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근 결혼 후 집을 장만해 이사한 강모(32)씨는 "수십만원짜리 웨딩 촬영을 하고도 현금영수증을 받지 못했고 새 집에 이사하면서 사다리차를 부르는 데만 15만원이 넘는 돈을 썼는데 현금영수증은커녕 일반 영수증도 없다고 하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국세청도 이 같은 제도의 허점을 인식해 '현금거래 확인신청 신고제'를 운영하며 현금영수증 발급을 못 받은 소비자들에게 직접 신고를 할 기회를 주고 있지만 제도 홍보가 잘 돼 있지 않아 이용하는 소비자도 많지 않다.

따라서 의무가맹 소득기준을 보다 엄격히 적용해 '2,400만원'보다 낮추거나 아예 부동산ㆍ결혼ㆍ이사서비스와 같은 생활민감업종은 소득에 관계없이 가맹의무를 지울 필요도 제기된다. 변호사ㆍ공인회계사ㆍ세무사 등 전문직 사업서비스업자와 의료업ㆍ약사업자의 경우 수입금액에 상관없이 현금영수증 가맹점으로 가입해야 하는데 그 범위를 부동산중개업 등으로 넓히자는 것이다.

현금영수증 발급 의무가 있는 사업자가 발급을 거부할 경우 국세청에 신고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세청이 2007년부터 신고 포상금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적은 미미한 형편이다. 이처럼 단속이 잘 이뤄지지 않자 2,4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낸 사업자 중에서도 업계 관행 등을 핑계로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해 현금영수증 포상금 예산으로 6억6,500만원을 편성하고도 실제로는 4억9,200만원만 포상금으로 지급했다. 신고가 예상보다 못 미쳐 1억7,300만원이라는 불용액이 생긴 것이다. 특히 현금영수증 의무미발행 포상금의 경우 지난해 예산액 5억3,900만원 중 1억6,700만원만 지급해 집행률이 31% 수준에 그쳤다.

신고가 이처럼 부진한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보인다. 대표적 현금영수증 사각지대인 부동산중개업의 경우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생활과 지속적으로 연관된 서비스라는 이유로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최근 주택매매계약을 체결한 장모(43)씨는 "현금영수증을 발급 받지 못하는 것은 분하지만 전세 문제 등 중개업자와 협의할 일이 많이 남은 상황인데 얼굴을 붉히면서 국세청에 신고까지 하기는 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업자가 일정 금액을 깎아주며 현금영수증 발급을 피하는 사례도 많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한 관계자는 "거래 자체가 소비자와 사업자 간의 암묵적 계약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기획재정부가 현금영수증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최근 세법개정 방향을 발표했다. 가맹점 사각지대 문제는 방치한 채 공제율만 높이면 자칫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금영수증 가맹점 가입의무 기준을 2,400만원에서 더 내리거나 무조건 가입해야 하는 업종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영세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피할 수 없다"며 "시행령 등을 통해 제도 보완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