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편대의 등장에 많은 이들이 적잖이 놀랐다. 박 의원은 'DJ(김대중)의 복심(腹心)'이지만 이 의원과 문 의원은 친노(친 노무현)의 성골이다. 이 의원과 문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실세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노무현의 남자'인 이 의원과 문 의원이 손을 잡은 것은 이상할 게 전혀 없었지만 박 의원은 경우가 달랐다. 참여정부 들어 박 의원은 국민의 정부 때 이뤄졌던 대북송금사업이 새삼 불거지는 바람에 옥고를 치렀다.
구원(舊怨)을 털고 굳게 손을 잡은 삼각편대는 거칠 것 없는 기세로 달려왔다. 박 의원은 5월에 원내대표가 됐고, 이 의원은 6월에 당대표로 선출됐다. 문 의원은 현재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준 세 사람 모두 뜻을 이룬 셈이다.
하지만 대선이 석 달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이-박-문 밀월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런 식이라면 정권 교체는 물 건너간 것 아니냐?"며 '이-박-문 밀월관계'를 강하게 성토했다. "정당한 단합일 뿐"이라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이-박-문 담합 책임론'은 점차 거세지고 있다.
文, "같은 비판 안 받겠다"
친노 진영의 문재인 후보는 지난 4일 창원에서 열린 경남지역 대선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면 '이-박 담합'과 같은 비판을 다시는 받지 않도록 하겠다"며 "결코 계파를 만들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줄기차게 단합이라고 주장하던 문 후보조차 담합이라는 비판을 인정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거나 그 다음 단계에 올라설 경우 '이-박 연대'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
실제 문 후보의 주변에는 박 원내대표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 7월 저축은행 사건으로 박 원내대표가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됐을 때도 일부는 '차제에 따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문 후보에게는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대표가 버거운 존재일 수 있다. 오늘날 '대선후보 문재인'을 있게 해준 사람이 이 대표이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하다.
문 후보의 약점 중 하나로 정치력 부재를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 4ㆍ11 총선 공천 과정에서 "문 후보가 이 대표의 메신저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도 문 후보에게는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민주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박-문 연대는 어차피 대선을 염두에 둔 물리적인 결합인 만큼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냐. 여러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李 朴, 사퇴론 거세진다면?
대선 불공정 경선 논란의 중심에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가 있다. 같은 연대의 멤버인 문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모바일 투표 등 경선 룰을 만들었다고 비노(비 노무현) 진영은 일제히 비판하고 있다.
경남 경선이 열린 지난 4일 '이-박-문 연대'에 대한 비노 진영의 반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연단에 서자 일부 청중은 "박지원 물러나라" "2선 후퇴해라" "이-박 담합 책임져라"등 격앙된 목소리를 쏟아냈다.
경선 행사장에 나올 때마다 온갖 비난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 대표는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 준비를 이유로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임채정 당 중앙선거관리위원장도 극심한 야유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일에는 황주홍 의원이 "당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 당대표와 원내대표는 응분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대선후보를 뒷받침하고 디딤돌이 돼야 할 지도부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이-박-문 연대'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해찬-박지원 2선 후퇴'로 강공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됐던 황 의원 등 비당권파 측은 일단 숨 고르기를 통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오는 16일 경선(결선투표 없을 경우)이 끝나고 나면 어떤 형태로든 '이-박 사퇴론' 불씨는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특히 7월 저축은행 사건에 이어 8월 양경숙 사건에까지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박 원내대표로서는 이 대표보다 부담이 더 커 보인다. "도대체 언제까지 한 사람 때문에 당이 욕을 먹어야 하냐"는 불평도 나온다.
현재 당내 혁신을 부르짖는 쪽에서 제기되는 지도부 책임론 방안으로는 ▦이해찬 대표의 백의종군 ▦박지원 원내대표의 사퇴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 등이다.
경우에 따라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가 동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한 사람만 총대를 멜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 간에 미묘한 간극이 생길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4ㆍ11 총선에 이어 이대로 가면 대선경선도 망치는 것 아니겠냐"면서 "경선이 끝나고 나면 어떤 형태로든 책임론이 거세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