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이해찬(오른쪽)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3일 국회본청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민주통합당에서는 거대한 삼각편대가 급조됐다. 5월 4일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박지원 의원을 이해찬 문재인 의원이 거들고 나서면서 이른바 '이-박-문 삼각편대'가 탄생했다.

삼각편대의 등장에 많은 이들이 적잖이 놀랐다. 박 의원은 'DJ(김대중)의 복심(腹心)'이지만 이 의원과 문 의원은 친노(친 노무현)의 성골이다. 이 의원과 문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실세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노무현의 남자'인 이 의원과 문 의원이 손을 잡은 것은 이상할 게 전혀 없었지만 박 의원은 경우가 달랐다. 참여정부 들어 박 의원은 국민의 정부 때 이뤄졌던 대북송금사업이 새삼 불거지는 바람에 옥고를 치렀다.

구원(舊怨)을 털고 굳게 손을 잡은 삼각편대는 거칠 것 없는 기세로 달려왔다. 박 의원은 5월에 원내대표가 됐고, 이 의원은 6월에 당대표로 선출됐다. 문 의원은 현재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준 세 사람 모두 뜻을 이룬 셈이다.

하지만 대선이 석 달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이-박-문 밀월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런 식이라면 정권 교체는 물 건너간 것 아니냐?"며 '이-박-문 밀월관계'를 강하게 성토했다. "정당한 단합일 뿐"이라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이-박-문 담합 책임론'은 점차 거세지고 있다.

文, "같은 비판 안 받겠다"

친노 진영의 문재인 후보는 지난 4일 창원에서 열린 경남지역 대선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면 '이-박 담합'과 같은 비판을 다시는 받지 않도록 하겠다"며 "결코 계파를 만들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줄기차게 단합이라고 주장하던 문 후보조차 담합이라는 비판을 인정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거나 그 다음 단계에 올라설 경우 '이-박 연대'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

실제 문 후보의 주변에는 박 원내대표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 7월 저축은행 사건으로 박 원내대표가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됐을 때도 일부는 '차제에 따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문 후보에게는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대표가 버거운 존재일 수 있다. 오늘날 '대선후보 문재인'을 있게 해준 사람이 이 대표이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하다.

문 후보의 약점 중 하나로 정치력 부재를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 4ㆍ11 총선 공천 과정에서 "문 후보가 이 대표의 메신저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도 문 후보에게는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민주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박-문 연대는 어차피 대선을 염두에 둔 물리적인 결합인 만큼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냐. 여러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李 朴, 사퇴론 거세진다면?

대선 불공정 경선 논란의 중심에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가 있다. 같은 연대의 멤버인 문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모바일 투표 등 경선 룰을 만들었다고 비노(비 노무현) 진영은 일제히 비판하고 있다.

경남 경선이 열린 지난 4일 '이-박-문 연대'에 대한 비노 진영의 반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연단에 서자 일부 청중은 "박지원 물러나라" "2선 후퇴해라" "이-박 담합 책임져라"등 격앙된 목소리를 쏟아냈다.

경선 행사장에 나올 때마다 온갖 비난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 대표는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 준비를 이유로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임채정 당 중앙선거관리위원장도 극심한 야유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일에는 황주홍 의원이 "당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 당대표와 원내대표는 응분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대선후보를 뒷받침하고 디딤돌이 돼야 할 지도부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이-박-문 연대'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해찬-박지원 2선 후퇴'로 강공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됐던 황 의원 등 비당권파 측은 일단 숨 고르기를 통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오는 16일 경선(결선투표 없을 경우)이 끝나고 나면 어떤 형태로든 '이-박 사퇴론' 불씨는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특히 7월 저축은행 사건에 이어 8월 양경숙 사건에까지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박 원내대표로서는 이 대표보다 부담이 더 커 보인다. "도대체 언제까지 한 사람 때문에 당이 욕을 먹어야 하냐"는 불평도 나온다.

현재 당내 혁신을 부르짖는 쪽에서 제기되는 지도부 책임론 방안으로는 ▦이해찬 대표의 백의종군 ▦박지원 원내대표의 사퇴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 등이다.

경우에 따라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가 동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한 사람만 총대를 멜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 간에 미묘한 간극이 생길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4ㆍ11 총선에 이어 이대로 가면 대선경선도 망치는 것 아니겠냐"면서 "경선이 끝나고 나면 어떤 형태로든 책임론이 거세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