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계 할아버지' 칠성사이다 1950년 탄생 어린이 소풍 필수품 자리매김
새우깡 판매량 70억개 돌파 매출 1조5000억 규모
업계 "오랜기간 품질 검증 소비자 신뢰 불황에도 든든"
과자·빙과류 주재료 가격↑ 제품 출고가 인상 잇단 예고 장바구니 물가 들썩


서울시 강북구 인수동에 사는 이모(40)씨는 지난 주말 초등학생 딸과 함께 집 근처 대형할인점에 들렀다. 이번 주에 먹을 반찬거리를 쇼핑카트에 차곡차곡 담던 이씨는 딸의 애원으로 과자코너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평소 건강을 생각하느라 군것질거리를 즐겨 찾지 않던 이씨는 수많은 과자들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기가 먹고 싶은 과자를 한움큼 손에 쥔 딸의 "엄마는 안 골라?"라는 질문에 과자코너를 훑어보던 이씨의 눈에 낯익은 제품들이 담겼다. 새로 출시된 수많은 과자들 속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새우깡, 맛동산, 짱구 등이었다. 이씨는 어릴적 즐겨 먹던 새우깡의 맛을 떠올리며 한 봉지를 집어들었다.

새우깡을 쇼핑카트에 담다가 우연히 가격표를 확인한 이씨는 또 한 번 놀랐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500원이었던 새우깡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딸이 먹을 과자 몇 봉지에 새우깡까지 담고 나니 과자값만 만원에 육박했다. 원래 사려 했던 반찬거리의 가격을 곰곰이 계산하던 이씨는 결국 집었던 새우깡을 판매대에 다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입맛을 길들여왔던 '장수 군것질거리'들이 인기다. 일 년에도 수백 종의 과자, 음료수, 빙과가 탄생하고 또 사라지고 있지만 사람들의 '추억'을 담고 있는 장수 군것질거리들은 생명력있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최근 과자ㆍ빙과류 업체들이 장수 군것질거리의 가격을 대폭 인상하며 "소비자들의 추억을 담보삼아 배를 불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최고령은 67세 연양갱

현재 판매되고 있는 군것질거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것은 해태제과의 연양갱이다. 극장에서 팔던 팥 양갱을 해태제과에서 공산품으로 재탄생시킨 연양갱은 광복 직후인 1945년에 태어났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훌쩍 넘어 고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음료의 할아버지는 1950년에 태어난 칠성사이다다. 칠성사이다는 전쟁 이후 어린이들의 소풍 필수품으로 자리 잡으며 오래도록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61년에는 크라운 산도가 태어났다. 샌드(sand)의 일본식 발음으로 한때 개명을 하기도 했던 크라운 산도는 고유의 브랜드 가치를 위해 다시 산도라는 원래 이름을 되찾은 바 있다.

1970년대는 새우깡, 죠리퐁, 짱구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장수 과자들이 대거 출시된 '과자의 황금기'였다. 1970년대의 포문을 연 것은 부라보콘이었다. 부드러운 크림맛을 강조한 부라보콘은 아이스박스에 싣고 다니며 파는 아이스께끼에 익숙해져 있던 당시 어린이들에게 맛의 충격을 선사했다.

이듬해 '국민과자'라 불리는 새우깡이 출시됐다. 새우깡은 지난해까지 41년 동안 무려 70억봉지가 넘게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새우깡과 같은 해에 야쿠르트도 첫선을 보였다. 야쿠르트는 특유의 방문판매원인 야쿠르트 아줌마로 더 유명하다. 1971년 47명으로 시작했던 야쿠르트 아줌마는 올해 4만3,500여명으로 늘어났다.

우리나라 최장수 껌은 쥬시 후레쉬, 후레쉬 민트, 스피아 민트의 롯데껌 삼총사다. 1972년에 태어난 이 제품들은 코팅껌 형태로 출시된 후발주자 자일리톨 껌이 나오기 전까지 껌시장을 오랫동안 지배했다. 같은 해에 크라운제과에서는 죠리퐁을, 농심에서는 꿀꽈배기와 감자깡을 선보였다. 꿀꽈배기는 출시 당시 꽈배기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1979년 이름에 '꿀'자를 붙여 현재의 이름을 찾았다.

1974년에 태어난 오리온 초코파이는 올해로 38세가 됐다. 오리온의 과자개발팀장이 미국 조지아주 출장길에 우연히 들른 카페테리아에서 초콜릿 코팅과자를 맛보던 중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초코파이는 고단백 고칼로리를 가진 영양식으로 출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 빙그레에서 출시한 바나나맛우유도 특유의 바나나 향이 우유와 어우러져 어린이들의 인기를 한몸에 모았다. 같은해 출시한 아이스크림 투게더와 바나나맛우유의 성공으로 회사 경영진들이 '빙그레' 웃었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 해태제과의 에이스와 누가바 또한 1974년에 태어난 대표 장수 군것질거리다.

1975년에도 장수 과자들이 대거 출시됐다. 해태제과의 맛동산과 사브레, 오리온의 웨하스, 롯데제과의 가나초콜릿 등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듬해에는 해태제과의 바밤바와 아카시아 껌, 오리온의 오징어땅콩, 농심의 인디안밥 등이 태어나 장수 군것질거리의 계보를 이었다.

신상 제치고 인기 만점

오랫동안 소비자들의 입맛을 잡아왔던 장수 군것질거리들은 매출에 있어서도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제과ㆍ빙과업체별로 매출액 상위 5종을 뽑을 경우, 4종 이상을 장수 군것질거리가 차지할 정도다.

장수 군것질거리 중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것은 역시 국민과자 새우깡이다. 새우깡은 출시 이후 1위를 거의 놓치지 않으며 '구관이 명관이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농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새우깡은 누적판매량 70억개를 기록했다. 액수로는 1조5,000억원 어치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를 끌며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으로 자리 잡은 초코파이의 성적도 만만치 않다. 초코파이는 지난해 말 국내 기준으로 160억개가 팔려나갔다. 지난해 해외 생산 15억개를 기록한 것을 감안한다면 올해 국내외 합산 200억개 판매고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칠성음료의 칠성사이다도 지난해까지 170억병이 팔렸다. 연간 7억병 내외의 판매량을 감안하면 2015년 전후로 200억병 판매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야쿠르트의 야쿠르트는 지난해 말까지 400억병이 넘게 팔린 것으로 나타나며 단일 품목 판매량으로 기네스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다.

장수 군것질거리들의 인기는 경기침체가 계속되며 과자ㆍ빙과류의 매출이 급격히 줄고 있는 요즘 들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장수 브랜드 상품들은 20% 이상의 매출 신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칠성사이다의 매출은 전년대비 40% 늘었고 같은 기간 에이스도 23% 많이 팔렸다. 그밖에 베지밀, 매일우유 등도 두자릿수로 매출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불황에도 유독 장수 군것질거리들이 선방하는 것에 대해 롯데마트 측은 "어려울수록 오랜 기간 소비자들을 통해 품질이 검증된 장수 상품들이 신뢰받기 때문"이라 해석했다.

익숙함ㆍ친근함으로 접근

수많은 제품들이 나왔다 사라지는 와중에도 굳건한 인기를 고수하는 장수 군것질거리들의 인기비결은 단연 '익숙함'과 '친근함'이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구매계획을 세우고 군것질거리를 사러 가지 않는 이상 판매대에서 눈에 띄는 제품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때 익숙하고 친근한 제품들을 집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제과ㆍ빙과류 업체들도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꾸준히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장수 군것질거리들의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장수 군것질거리의 맛을 비롯해 포장디자인에도 큰 변화를 주지 않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대표적으로 농심이 새우 그림이 그려져 있는 붉은색 포장지와 "손이 가요 손이가~ 누구든지 즐겨요 농심 새우깡"이라는 내용의 CM송을 지난 20년간 고수하고 있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물론 때로는 장수 군것질거리를 바탕으로 꾸준한 리뉴얼 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는 해당 제품에 익숙하지 않은 신세대 소비자들마저 잡아끌기 위함이다. 1981년 출시되며 해태제과의 대표 과자로 자리 잡은 홈런볼의 경우 기존의 초코맛 이외에도 치즈맛, 딸기맛, 생크림맛 등 다양한 제품으로 출시됐고 편의점용으로 컵 형태의 용기로도 나와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해태제과는 또한 최장수 과자인 연양갱의 인기를 바탕으로 연양갱 호두, 연양갱 홍삼 등을 출시한 바 있다.

새우깡은 그 인기만큼이나 다양한 리뉴얼 제품이 출시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들을 겨냥해 아미노산이 풍부한 오징어 먹물을 가미, 오징어먹물 새우깡이 나왔고 업소를 겨냥한 노래방 새우깡도 출시됐다. 매운맛을 선호하는 입맛에 맞춰 나온 매운 새우깡이나 쌀이 들어간 쌀 새우깡도 선보였다. 싱글족을 겨냥해 제품 한 개 용량을 두 봉지로 나눈 '이중포장'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물가인상의 주범 되나

장수 군것질거리들은 판매량이 많은만큼 최근 과자ㆍ빙과류 업체들이 주도하는 물가인상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한다.

오리온은 이달 14일부터 초코파이 출고가를 인상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대략 15~20%의 인상률을 점쳤지만 최종 확정된 인상안은 25%로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오리온 측은 "주재료가 되는 코코아와 설탕의 가격이 인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농심은 새우깡 값을 900원에서 1,000원으로 올렸고 해태제과도 맛동산, 연양갱 등을 100원 인상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부의 물가통제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대표 군것질거리들의 가격을 인상, 장바구니 물가상승을 주도했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과자ㆍ빙과류 업체들도 할 말이 많다. 다른 물가와 비교하면 처음 출시된 이후 가격인상률이 높지 않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오리온 초코파이는 1974년 출시 당시 50원으로 100원이었던 짜장면 값의 절반 가격인 고급 과자였다. 출시 1년 만에 100원으로 두 배 오른 초코파이 가격은 1996년 150원을 거쳐 이번에 333원이 됐다. 40년 동안 6배 인상된 셈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짜장면 값이 약 30배 오른 것에 비하면 초코파이의 인상폭은 그리 크지 않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1971년 출시 당시 50원이었던 새우깡은 1,000원으로 20배 올랐다. 초코파이보다는 인상폭이 크지만 짜장면보다는 훨씬 약소한 수준이다. 그러나 다른 기호식품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장바구니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앞으로도 장수 군것질거리 가격 인상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日 제품과 똑같네?
새우깡·빼빼로 등 맛·포장·라인업 표절 의혹

세계로 뻗어 나가는 우리나라의 군것질거리지만 유독 진출하기 어려운 곳이 있다. 바로 일본이다. 국내에서 대표 군것질거리로 꼽히는 상당수 제품들이 사실상 일본 제품들을 그대로 따라 만든 표절제품인 경우가 적지 않은 탓이다.

대표적으로 국민과자인 새우깡을 꼽을 수 있다. 새우깡은 일본 가루비의 '갑파에비센'의 표절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1955년 갑파아라레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1964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갑파에비센은 우리나라의 새우깡보다 출시연도가 빠르다. 과자의 형태, 맛, 포장까지 똑 닮은 갑파에비센과 새우깡을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만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두 제품은 매운맛 새우깡이나 쌀 새우깡 등 후속 라인업까지 유사해 빈축을 샀다.

1988년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는 롯데제과의 빼빼로도 일본 글리코의 '포키'와 유사하다. 1966년 출시된 포키는 빨간 포장과 과자의 모양까지 빼빼로와 거의 같다. 22년이나 늦게 출시된 빼빼로가 포기를 표절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롯데제과가 11월 11일을 빼빼로데이로 지정해 마케팅하는 것마저 글리코사가 같은 날을 포키데이로 명명한 것과 동일하다. 이 밖에도 초코송이, 고래밥, 17차 등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상당수 군것질거리가 표절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해당 업체들은 "비슷한 문화권인 일본의 제품들을 벤치마킹한 것은 맞지만 표절은 하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여행을 다녀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며 함께 거세질 표절의혹을 완전히 떨쳐버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인디안밥' 인디언 주식 옥수수로 만든 과자
■ 제품 작명 뒷이야기

지금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는 장수 군것질거리들 중에는 재밌는 작명 과정을 거친 제품들이 많다. 국민과자인 농심 새우깡의 이름은 신춘호 농심 회장이 직접 지었다고 전해진다. 어린 딸이 아리랑을 아리깡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힌트를 얻은 신 회장은 새우와 깡을 결합해 새우깡이라는 이름을 처음 만들었다. 어린이들도 부르기 쉬운 이름인데다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 중 깡밥, 깡보리밥 등이 가지는 순박한 이미지까지 덧입혀져 국민과자로서의 새우깡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이후 농심은 감자깡, 고구마깡 등 과자에 '깡'을 붙여서 출시했고 이들은 대부분 큰 성공을 거뒀다.

맛동산의 원래 이름은 맛보다였다. 그러나 부르기도 불편하고 촌스러운 이름은 판매실적 저조로 이어졌고 이는 시판 6개월 만에 브랜드를 접어야 하는 위기까지 가져왔다. 해태제과는 즉시 맛보다의 문제점을 찾기 위해 소비자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그해 12월 '온갖 고소한 맛이 모여있다'는 뜻의 맛동산으로 이름을 바꿔 재출시했다. 바뀐 이름 덕분인지 맛동산은 장수 과자의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1976년 첫선을 보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시리얼로까지 평가받는 농심 인디안밥의 작명은 의외로 간단했다. 주성분인 옥수수가 아메리카 대륙 인디언들의 주식인 점을 착안, 인디안밥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런 작명법을 적용하면 시판 중인 쌀과자들은 '코리안밥'으로 부를 만하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