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문재인(오른쪽) 대선후보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 이해찬 대표와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손용석기자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가 이해찬 대표와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이 대표는 문 후보의 후견인이자 오늘날 '대선후보 문재인'이 있게 해준 사람이다.

탈(脫) 계파를 선언한 문 후보 측은 후보로 확정되기 전부터 '용광로'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을 천명했다. 문 후보의 최대 약점 중 하나인 친노(친 노무현) 색채를 덜어내기 위한 고육책이다.

문 후보는 지난 18일 선거 기본 전략 등을 짜는 대선기획기구인 '담쟁이 기획단'(가칭)을 출범시키면서 친노 인사들을 대부분 배제했다. 기획위원에는 노영민 박영선 이학영 의원, 김부겸 전 의원 4명이 임명됐다. 4명 모두 친노와는 거리가 있다. 친노 쪽 '문'은 닫혔지만 비노(비 노무현) 쪽 '문'은 열린 것이다.

앞서 지난 14일 초선의원 21명은 기자회견을 열어 "당 지도부는 앞으로 선출될 대선후보에게 당 운영의 권한을 모두 위임하라"며 "대선후보는 당의 혁신과 비전을 분명히 보여주고 계파와 지역을 뛰어넘어 단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원들의 거센 쇄신 압박에 부딪힌 최고위원회는 대선후보 선출 전날이었던 지난 15일 회의를 열어 "18대 대선 승리를 위해 대선후보 중심으로 당의 전열을 정비하고 선거를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최고위원회 권한을 대선후보에게 위임할 것"이라며 한 발짝 물러났다.

목소리 내는 文, 불편해진 李

이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에 대한 2선 후퇴 요구는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달 25일 첫 경선이었던 제주에서부터 모바일 투표 등 불공정 논란이 거세졌고, 모든 비난은 이 대표 등 지도부로 향했다.

지역 순회경선 때 이 대표가 연단에 서면 비문(비 문재인) 주자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육두문자까지 거침없이 쏟아졌다. 또 지난 15일 경기 경선을 앞두고는 폭력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민주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경선 룰을 만들 때부터 논란은 예고됐던 일"이라며 "이 같은 결과가 예상됐음에도 다른 후보들의 요구에 귀를 닫은 채 경선을 강행한 지도부가 욕을 먹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발표된 성명에는 김기식 김기준 김용익 남윤인순 박완주 박홍근 신경민 신장용 유대운 유은혜 이상직 이언주 이원욱 임내현 전순옥 진성준 최민희 홍의락 홍익표 홍종학 황주홍 의원 등 초선 21명이 서명했다. 이들은 "지도부의 권한을 대선후보에게 넘겨라"며 사실상 이 대표의 2선 퇴진을 요구했다.

이 같은 초선의원 그룹의 주장에 문 후보 측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문 후보 측 역시 당이 대선후보 중심으로 운영되고, 모든 힘도 대선후보에게서 비롯돼야 전투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그동안 문 후보는 "이해찬의 메신저에 불과하다" "친노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던 차에 초선의원들의 쇄신 요구는 그야말로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아닐 수 없었다.

문 후보 측의 '마이 웨이' 선언에 이 대표 측은 불편하기만 하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모르긴 해도 이 대표가 선뜻 물러나기야 하겠냐"고 말했다.

이 대표의 측근인 김현 대변인은 "이미 이 대표는 당헌, 당규를 개정해 후보에게 인사권을 넘겨주겠다고 했고, 인재를 영입해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면서 "2선 후퇴론은 외히려 친노-비노로 가르는 분열의 프레임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박영선 김부겸에 이어 이인영?

문 후보는 박영선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을 기획위원에 임명했다. 3선으로 19대 전반기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의원은 당내 여성 의원 중 정보력과 투쟁력 등'상품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대중적 인지도도 높다.

박 의원은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돌풍과 함께 원내에 진입하긴 했으나 비노, 중도파에 가깝다. 경남 창녕 출신인 박 의원은 문 후보와 함께 당내에서는 부산 경남(PK)를 대표할 만한 인물이다. 또 박 의원은 사적으로 문 후보의 경희대 후배이기도 하다.

3선을 지낸 김 전 의원은 지난 4ㆍ11 총선에서 고향인 대구에 출마했으나 아깝게 고배를 들었다. 김 전 의원은 '안정적인' 경기 군포를 떠나 대구에 출마하면서 "나부터 기득권을 버리겠다"고 선언해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김 전 의원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가깝다. 김 전 의원은 손 전 대표의 서울대 정치학과 후배다. 김 전 의원은 그러나 당내 대선후보 경선 기간 중립적인 위치에서 조용히 관망했다.

김 전 의원은 민주당내에서 몇 안 되는 대구 경북(TK) 인사다. 뿐만 아니라 김 전 의원은 대선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도 교감을 나누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김 전 의원이 안 원장 측에 합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함께 문 후보 측은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의 '분신'으로 불리는 이인영 의원에게도 '문'을 연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의원은 현역의원 20명 이상이 속해 있는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의 주축 멤버다. 그러나 이 의원의 한 측근은 "이 의원이 문 후보와 안철수 원장 간의 단일화 국면이 온다면 그때 가서 역할을 맡지 않겠냐"고 귀띔했다.

민주당 소식통은 "문 후보 측이 박 의원과 김 전 의원 영입으로 한껏 고무돼 있다"면서 "문 후보와 이 대표가 갈라설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간 두 사람의 끈끈한 관계를 고려하면 대선을 앞둔 정략적 선택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