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세기의 소송’에서 애플에 기선을 제압당했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최종 판결에서‘역전승’이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美 배심원 애플압승 판결에 전 세계언론 "편파적 결과"
CNN 머니 "평결 중 일부 오류 가능성" 영국·호주도 의구심 제기
자국기업 보호무역주의 우려 목소리도
최종판결서 배심원 평결 그대로 반영될까 관심집중
국내외 여론 반영 기존 판결 역전 가능성도


삼성전자와 애플이 벌인 '세기의 특허전쟁'의 첫 결과인 미국 재판에서 애플이 우세를 점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IT업계 전문가들을 비롯해 국내외 언론들은 미국 소송 배심원 평결과 앞으로 이어질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해 의구심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제 양사의 최후 입장을 들은 담당판사의 최종 판결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역전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긴 특허소송전의 첫 승자는 애플

전 세계에 걸친 삼성전자와 애플 특허소송전은 지난해 4월 시작됐다. 당시 애플은 삼성전자가 자사의 디자인, 인터페이스 등을 표절했다며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고소했다. 이에 삼성전자 또한 애플이 자사의 통신특허를 침해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애플을 고소했다. 애플의 공격이 이뤄진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벌어진 삼성전자의 반격이었다.

이후 삼성전자와 애플은 양사가 속한 미국, 한국을 비롯해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로 소송전을 확장시켜나갔다. 이후 양사는 1년 반 동안 여러 나라에서 격하게 부딪쳤고 결국 삼성전자는 가장 큰 전장이었던 미국 소송에서 애플에 첫 패배를 경험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소송을 담당했던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의 배심원단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각) 열린 1심에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대부분이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평결했다. 더불어 배심원단은 삼성전자에 10억4,934만3,540달러(약 1조2,000억원)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최종 판결이 나오지는 않은 상태지만 미국 재판의 특성상 배심원 평결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미국 재판 평결에 다들 의아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소송이었던 만큼 특허소송전 첫 결과에 대한 외신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그리고 대부분은 애플의 완승으로 끝난 미국 재판에 대해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CNN머니는 "배심원이 엄청난 양의 자료를 읽고 서류를 작성해야 했으나 단 3일밖에 평결시간을 갖지 못했다"며 "평결 내용 중 일부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IT 전문매체인 폰 아레나는 배심원이었던 마뉴엘 일라간의 말을 인용, "배심원단이 평결 첫날부터 '삼성전자가 애플 특허를 침해했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기울였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방송사인 NTV는 "9명 배심원단에 보험사 직원, 가정주부, 기계공, 아마추어 게이머 등이 포함됐다"며 "가정주부, 기계공이 애플과 삼성전자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소송의 배심원 평결이 타국의 재판과 전혀 다른 내용으로 나왔던 것 또한 세간의 의구심을 자아냈다. 영국 법원의 경우 애플에 "삼성전자가 애플의 디자인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자사 사이트에 6개월 게재하고 신문과 잡지에 광고까지 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호주 법원은 '우스꽝스러운 소송'이라며 양사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명령한 바 있다. 삼성전자가 위치한 한국 법원에서는 양사의 특허침해를 모두 인정했다.

IT업계 발전 저해할 평결

IT업계 전문가들은 애플의 손을 들어준 미국 판결에 대해 우려를 보였다. IT업계의 혁신을 저해할뿐더러 자국 기업에 대한 보호무역주의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미국 이외의 재판부는 애플이 주장한 특허에 대해 일반적인 디자인 속성을 특정 기업이 독점할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지었다. 스마트폰의 발전과 함께 최적화돼 온 일반적인 디자인 속성이 특정기업의 전유물로 인정된다면 다른 업체들도 소송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소송 배심원 평결로 자국 기업인 애플이 보편적인 스마트폰 디자인을 독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됐다.

반면 미국 재판부는 애플이 삼성전자의 표준특허를 단 한 건도 침해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표준특허에 대해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경우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한 IT업계의 표준기술발전 자체가 정체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번 평결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라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코오롱 인더스트리와 듀폰 간의 소송에서 버지니아주 연방법원 배심원들은 1억1,990만달러의 평결을 내렸다. 이는 듀폰이 위치한 버지니아주에서 일어난 판결이라는 점에서 보호무역주의의 결과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지난 7월 미국 상무부가 월풀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산 세탁기에 최고 82%의 관세를 부과하는 반덤핑 예비판정을 내린 것도 마찬가지다. 이번 특허소송이 글로벌 판매량에서 애플을 넘어선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제한하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는 까닭이다.

극적인 역전승 거두나

미국 재판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평결 이후 사람들의 시선은 코앞으로 다가온 최종 판결에 쏠리고 있다. 배심원 평결에 대해 양사가 의견을 개진하면 재판부는 이를 종합해 평결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리게 되는데 애플의 손을 들어줬던 배심원들의 뜻이 그대로 반영될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애플 측 변호인은 21일 루시 고 담당판사 앞에서 배심원 평결에 대한 반박논거와 마지막 입장들을 밝힐 예정이다. 루시 고 담당판사는 배심원 평결과 양사 변호인들의 마지막 주장을 종합해 최종 판결을 내린다. 대부분 배심원 평결을 존중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만 국내외 여론의 동향을 감안 기존 평결을 뒤집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로 캐나다의 RIM과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엠포메이션과의 소송에서 배심원들은 RIM에게 1억4,720만달러 배상평결을 내렸지만 당시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 판사가 이례적으로 평결을 기각한 사례가 있다.

"둥근모서리 사각형 애플 고유디자인 아니다"
자사 공식 블로그에 반박글
6개월 앞서 디자인 출원

삼성전자가 애플과의 미국 특허소송 평결에 대한 부당함을 국내 소비자들에게 직접 해명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18일 자사의 공식 블로그인 '삼성 투모로우'에 '갤럭시에 대한 오해와 진실 #1'이라는 제목의 해명글을 올렸다. 미국에서의 특허소송 평결이 나온 이후 국내 소비자들에게 관련 내용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해명글 첫머리에서 "온라인에는 실수로 혹은 의도적으로 필요한 정보만을 편집한 '갤럭시 디자인'에 대한 오해가 많이 있다"며 "온라인상의 네티즌 문화를 존중하고 기발한 발상들에 놀라고 즐거워도 하지만 소비자들의 오해를 풀고자 진실을 밝힌다"라고 전했다. 그동안의 갤럭시 시리즈가 애플 아이폰의 디자인을 모방했다는 내용이 인터넷에 퍼지자 이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기조를 밝힌 것이다.

삼성전자의 미국 내 광고
향후 이어질 해명글들의 처음에 위치할 이번 글에서 삼성전자는 둥근 모서리의 사각형이 애플 고유의 것이라는 내용에 대한 반박에 나섰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애플은 아이폰의 둥근 모서리와 유리 표면, 검은색 배경을 커버하는 'US D593,087 S' 특허를 2007년 7월에 출원, 2009년 5월에 획득했다. 반면 삼성전자의 핸드셋 F700 디자인 특허는 2006년 12월에 출원, 2007년 11월에 출시됐다. 삼성전자의 주장에 따르면 애플은 삼성전자가 6개월 앞선 디자인을 따라했다는 뜻이 된다.

또한 삼성전자는 자사의 MP3 플레이어인 'YP-Q3'를 예로 들며 애플이 주장한 아이폰4 둥근 모서리와 메탈 프레임 디자인 침해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삼성전자 자료에 따르면 YP-Q3는 아이폰4가 출시된 2010년 6월보다 두 달 앞선 2010년 4월에 의장출원했다. 출시만 그해 9월로 아이폰4보다 늦을 뿐이었다. 심지어 삼성전자의 또 다른 MP3 플레이이어인 'YP-Z5'는 2006년 2월에 출시, 아이폰4보다 4년 가까이 빨랐다.

삼성전자, 미국 내 TV 광고로 반격
갤S3 TV 광고, 유튜브에 공개
소송전 아쉬움 홍보전으로 설욕

삼성전자가 미국 내 TV광고를 통해서도 애플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미국 특허소송전에서 한발 물러서야만 했던 아쉬움을 홍보전에서는 설욕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아이폰5 출시를 목전에 둔 지난 19일(현지시각) 갤럭시S3 관련 TV광고를 유튜브에 공개했다. 해당 광고는 아이폰5를 사기 위해 애플스토어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선 애플 팬들이 갤럭시S3를 부딪치며 음악을 공유하는 행인들의 모습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담겨있다. 아이폰5에는 탑재되지 않은 NFC(근거리무선통신) 기능을 이용해 영상, 음악 등의 파일들을 쉽고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갤럭시S3의 S-Beam 기능을 부각시킨 것이다.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 침해 주장에 반박하며 내놓은 해명 사진.
이어 TV광고는 아이폰5와 갤럭시S3의 화면크기 및 4G LTE에 대한 비교로 이어진다. 애플 팬들이 커진 화면과 4G LTE로 무장된 아이폰5를 자랑하자 갤럭시S3 이용자들이 갤럭시S3는 이미 LTE를 사용하고 있었고 화면도 더 크다고 설명하는 내용이다. 해당 TV광고는 "다음에는 갤럭시S 시리즈를 사자"는 애플 팬들의 말에 갤럭시S3 이용자가 "애플이 다음에 내놓을 혁신도 이미 갤럭시S3에 다 있다"고 말하며 마무리된다.

삼성전자가 공개한 이번 TV광고는 지난 16일 미국의 주요 일간지에 게재했던 지면광고의 후속판이다. "천재가 아니라도 알 수 있다"라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웠던 지면광고에서 삼성전자는 갤럭시S3(27개)와 아이폰5(13개)의 주요 기능을 열거하며 갤럭시S3가 월등히 고사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면광고의 마무리 역시 "애플이 다음에 내놓을 혁신도 이미 갤럭시S3에 다 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됐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