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은 불가피했지만 최선은 아냐 유신은 어떻게든 정당화될 수 없는 일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뛰어넘을 역사관 가져야
안철수 출마 결심했다면 검증 받아야 야권 문재인 후보와 결국은 단일화될 것 단일화 과정 추태 보이면 대선서 필패


박근혜ㆍ문재인ㆍ안철수 대선 후보들의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관심은 '12월 대선'으로 쏠리고 있다. 세계적 경제위기, 동북아 질서재편이란 흐름 속에서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국가의 앞날과 민생을 좌우할 '정책 대결'이 꼭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상대 후보를 흠집내는 네거티브나, 눈앞의 표를 의식한 과거 논쟁이 이번에도 여전할 전망이다.

이런 흐름에 꾸준히 '쓴소리' 내는 정치 원로가 있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신문과 방송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다. 국회의원 8선에 국회의장만 두 차례 역임한 한국 정치사의 산 증인으로, 현역 못지 않은 '쓴소리'로 세상을 일깨우고 있다.

이 전 의장은 20일 주간한국 창간 48주년을 기념한 특별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이 향후 대한민국 운명을 좌우하는 만큼 후보들의 자질과 국민의 이성적 심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요즘 근황은.

"이렇게 주간한국에서 나오라면 나오고(웃음), 사람들 만나고 책 보면서 지내는데 요즘 언론 등 부쩍 찾는 곳이 많아 바쁘게 보내고 있다."

- 언론에서 '쓴소리'를 자주 하시던데.

"원로라 그런지 인터뷰 요청이 많다. 신문이나 TV에서 요청하면 피곤하더라도 몸을 아끼지 않고 나라를 위해 바른 소리를 하려 한다. 내가 지금 할 일이 그것 아닌가. 이 나라는 우리만 살고 갈 나라가 아니라 자손 대대로 살아갈 나라가 아닌가. 바른 소리 해주고 당당하게 살다가 웃으면서 죽겠다는 생각이다."

- 유력 대선 후보들이 결정되고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고 있는데 후보들에게 새겨둘 말씀을 한다면.

"후보들은 표심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민심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지금 내가 기어이 표를 얻어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이 어려운 나라를 구하고 어떻게 바로 세우느냐에 고민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더욱이 앞으로 2~3년은 국가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시기이다. 국내적으로는 경제가 어렵고, 국제적으로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가 미묘한 중요한 때다. 대통령의 지위는 권력을 행사하고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자리라는 것을 명심하고, 이 나라를 위해 언제든지 생명을 바치겠다는 애국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 역대 대통령들의 비판자로, 또는 동반자로 국정에 관여했는데 대통령의 자질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은.

"우선 대통령이 될 사람은 정직하고 양심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둘째는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말의 꼼수 정치가 아니라 진실로 국민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셋째는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국가 선진화와 평화통일도 국민들의 통합된 에너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넷째는 신중한 판단과 과단성 있는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판단하기 전에는 신중하게 하고, 결심 하면 과단성이 있게 밀어붙이는 결단력이 요구된다. 다섯째는 한국 현실과 관련해 고도의 외교적 능력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4강과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

- 안철수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는데.

"안 후보가 1년 동안 출마를 한다, 안한다 모호한 태도를 취해 굉장히 답답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처럼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명예로운 존재로 머무는 것이 본인과 국가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이제 출마를 결심했으니 국민들에게 막연한 안개 같은 인기가 아닌, 국가 장래에 대한 비전, 국가운영에 대한 구체적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생겼다 없어지는 무지개가 아니고 태양이 빛을 발하듯 어떤 빛을 비추겠다는 구체적인 비전과 정책을 내놔야 한다. 그리고 국민검증을 받는 게 좋다."

- 박근혜 후보는 요즘 역사관 논란이 뜨거운데 5ㆍ16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 했고, 유신에 대해선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했다.

"5ㆍ16과 유신에 대한 평가는 달리 봐야 한다.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내가 얘기한다면, 5ㆍ16은 불가피했지만, 유신은 잘못됐다. 나는 자유당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기를 누구보다 갈망했고, 갖은 탄압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투쟁했다. 그런데 장면 내각의 민주당 정부는 많은 지식인과 언론인을 완전히 실망시켰다. 학생들은 매일 판문점으로 가 이북학생과 남북문제를 다루자며 데모하고, 심지어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데모에 나섰다. 경찰조차 국회 앞에서 연좌데모를 했고, 4ㆍ19 부상 단체는 3ㆍ15 부정선거 관계자 처벌이 미비하다며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한마디로 나라가 무정부상태였다. 대부분의 국민이 '이래선 안되겠다'고 생각했고 4월 혁명설, 5월 혁명설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5ㆍ16이 일어나자 윤보선 대통령은 "올 것이 왔다"고 했고, 민주당 정권 탄생에 앞장섰던 나도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하고 말했다. 5ㆍ16이 없었으면 나라가 어떻게 될 지 모를 정도로 심각한 위기상황이었다. 5ㆍ16은 불가피했다.

- 그런 5ㆍ16을 박근혜 후보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표현했는데.

"박 후보가 5ㆍ16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한 것은 맞지만 '최선'이란 단어는 빼는 게 옳다. 최선은 군사 정변이 안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젊은 언론인이나 학자들이 민주주의 이론만 갖고 5ㆍ16을 비판하는데 당시 시대상황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5ㆍ16은 시대 정황상 불가피했다."

- 박근혜 후보가 유신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유신은 누가 뭐래도 잘못된 것이다. 3선 개헌과 유신은 장기집권을 하기 위한 것으로, 나는 박정희 대통령과 나라를 위해 끝까지 반대하다가 8년간 정치탄압을 받았다. 유신으로 인권을 탄압했고, 부마항쟁을 낳았으며, 10ㆍ26이란 비극까지 일어났다. 유신은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 안 된다. 박 후보가 유신 때 영부인 역할을 하고 아버지를 생각해서 정면으로 '유신 은 잘못됐다'고 얘기하지 못하더라도 '유신과 장기집권으로 인해 고통받은 분들께 위로하고 사죄한다'고 하는 정도는 해야 한다."

-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도 박근혜 후보는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했는데.

"인혁당 사건은 억울한 사건이다. 박 후보가 두 개의 재판을 언급했는데 사법부의 최종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인혁당 사건뿐만 아니라 조봉암 사건, 민주일보 조용수 사건 등, 그때 사형은 '사법살인'이었다. 박 후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에서 인혁당 사건 가족과 피해자들을 생각해야 한다."

- 박근혜 후보의 역사 인식에 대해 하실 말씀은.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을 뛰어넘는 객관적 역사인식을 가져야 한다. 아버지의 역사적 공적을 계승하려는 효심은 이해하지만 이제는 여당의 대선 후보로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대통령 박정희와는 구분해야 한다. 이번에 아버지를 뛰어넘어 객관적 역사관을 정립해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이 되더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

- 박근혜 후보의 대선 행보를 평한다면.

"박 후보의 통합 노력은 평가할만하다. 다만 박 후보를 뒷받침하는 캠프가 짜임새가 없고 중구난방이어서 안타깝게 보인다. 예컨대 박 후보의 인혁당 발언에 대해 여러 대변인이 서로 다른 말을 해 혼란을 주고, 공보단장이란 사람은 오해 살 말을 하는가 하면, 경제민주화를 놓고 주요 인사들이 말다툼을 하는 모습은 박 후보에게 부담만 줄 뿐이다."

- 이번 대선의 최대 관건(변수)이라면.

"야권 후보가 누가 되느냐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 국민에게 감동을 주느냐, 실망을 주느냐가 중요한 변수다."

- 문재인ㆍ안철수 후보 간 단일화에 대해.

"양 후보 간 단일화는 된다고 본다. 두 후보가 독자 출마 하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결국 단일화 할 것이다. 그런데 단일화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거나 추태를 보이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 단일화 과정이 아름답고 깨끗하고 공명정대해야 한다. 단일화는 두 후보가 대화로 담판하거나 국민배심원제를 구성해 결정하거나 또는 경선 투표를 하는 방식 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 어떤 경우든 국민에게 감동을 줘야지 그렇지 못하면 대선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 이른바 '박근혜 대세론'에 대해서는.

"그런 얘기는 민주통합당 후보가 결정되기 전에 나올 법하지만 이미 (민주당)후보가 결정됐고, 안철수 후보까지 출마해 3자 대결로 압축된 상황에서 대세론을 말할 형편이 아니다. 문재인ㆍ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되면 굉장히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박 후보는 대세론에 안주하기보다 절대 겸손하고, 진실로 서민을 위하고 통합하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 네거티브 공세가 심해지고 있다.

"후보에 대한 국민적 검증은 필요하지만, 정략적 네거티브 공세는 자제해야 한다. 후보에 대한 검증도 격(格)을 갖춰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최근 새누리당이 안철수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은 옹졸하게 보이고 선거 전략상으로도 유리하지 않다."

- 이명박 정부 임기가 반년도 남지 않았는데 국정운영을 평가한다면 .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아 믿음을 상실했다. 말의 꼼수 정치가 많은 반면, 실제 행동은 거의 없었다. 가족, 측근 비리도 전혀 단속하지 못했다. 최근 '내곡동 사저 특검법' 수용을 놓고 망설이고 있는데,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자기와 관련된 것이라고 비토해선 안되고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물론 이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 하기 위해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애도 많이 썼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 이유는 국민에게 믿음을 못 줘서다. "

- 이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 하려면.

"그만두는 날까지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조용히 민생 문제를 챙기면서 국민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 19대 국회에 대해 전임 국회의장으로서 고언을 한다면.

"대선은 대선이고, 국회는 할 일을 해야 한다.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 선출안을 통과시켜 가까스로 1년2개월의 재판관 공석 사태를 해결했는데 이것은 국회가 본연의 책무를 방기한 것이다. 또 민생현안 법안 처리는 팽개친 채 여야가 자당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를 놓고 격하게 대립하는 모습도 보였다. 18대 국회가 폭력으로 얼룩져 19대 국회는 달라지기를 기대했는데 식물국회, 방탄국회로 초반부터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국회는 대선과 별도로 민생법안을 빨리 통과시키고 앞으로 실시될 국정감사에서도 대선 때문에 성원이 미달하거나 수감기관 공무원들을 몇 시간씩 기다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마무리 하면서 국민에게 하실 말씀은.

"우리나라 헌정사를 보면 어려운 고비가 많았지만 이만큼 발전한 것은 오직 위대한 국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4ㆍ19, 5ㆍ18, 6월 항쟁 등 어려운 고비 때마다 위대한 국민이 민주주의를 지켜왔다.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 과정에서 전국이 혼란스럽더라도 국민이 이 나라를 지킬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 여러분들이 감정보다 이성으로, 최선의 후보가 없으면 차선의 후보라도 정직하고 양심적인 후보를 선택해줬으면 한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1932 대구 출생

1957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58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1963 제6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1965 민주공화당 원내총무

1967 제7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1979 제10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1981 제11대 한국국민당 국회의원

1985 제12대 한국국민당 국회의원

1985 한국국민당 총재

1992 14대 민주자유당 국회의원

1993~1994 제14대 국회의장

1996 제15대 신한국당 국회의원

1997 신한국당 대표서리

1997 국민신당 총재

1998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2000 제16대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2000~2002 제16대 국회의장

2004총선 불출마 및 정계 은퇴 선언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