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개별 구성원들이 개인과 조직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과 그러한 이해관계가 맞을 수 있도록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구성원의 이해관계가 변화할 때는 이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2010년 1월 다보스포럼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올라온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의 인터뷰 내용이다. 당시 재계는 27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 유창한 영어로 효과적인 조직(기업)의 조건과 리더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드러낸 김 실장에 주목했다.

올해 재계의 눈은 다시 김 실장에게 쏠렸다. 부친인 김승연 한화 회장의 부재 때문이다. 그동안 그룹의 미래인 태양광사업에 전념하던 김 실장이 부친의 공백을 훌륭히 메꾸고 확고한 후계체제를 다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졸업후 공군통역장교 지원

1983년에 태어난 김동관 실장은 미국 세인트폴 고등학교와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마친 김 실장은 바로 공군통역장교에 자원, 3년 4개월의 군 복무도 마쳤다. 국방부 국제협력과에 복무하던 2009년 10월, 내한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과 정운찬 국무총리의 회담 통역 보좌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구속으로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의 경영권 승계 시점이 앞당겨지고 있다. 사진은 2011년 3월 5일 미국 뉴욕타임스퀘어 나스탁 마켓사이트 타워에서 한화솔라원의 새로운 사명 출범을 알리는 김동관 기획실장(다섯번째).
김 회장은 김 실장이 제대하마자 회사로 불러들였다. 김 실장의 입사 나이(27세)는 국내 남성들의 평균 수준이지만 여타 총수 자제들이 보통 군 면제를 받고 유학을 선택하는 데 반해 군 복무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2010년 1월 (주)한화에 공식적으로 입사한 김 실장은 다른 신입사원들과 함께 3주간 그룹 연수를 받고 차장 직급으로 일을 시작했다. 김 실장이 처음 배속된 곳은 회장실이었다. 그룹의 전반적인 업무를 파악하는 동시에 부친인 김 회장의 곁에서 직접 경영수업을 받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김 회장이 김 실장의 경영수업에서 가장 무게를 둔 것은 글로벌 비즈니스였다.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2010년 다보스포럼을 시작으로 김 실장은 김 회장이 글로벌 경영 현장행을 보좌하며 비즈니스 매너와 주요 인맥에 대해 배웠다.

김 실장은 지난해 말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에 임명됐다. 김 회장 곁에서 1~2년 경영수업을 받다가 해외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을 것이라던 재계의 예상을 비켜간 셈이다. 이후 김 실장은 한화의 미래성장동력인 태양광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회사내 스터디 만들어 공부

김동관 실장은 독서와 스포츠라는 상반된 취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김 실장 사무실에는 책이 가득 담긴 박스가 한 달에도 수차례 배달된다고 전해진다. 경영 관련 책들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고 좋은 책들을 골라 주변 직원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다. 집중하고 있는 태양광사업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며 직원들과 함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관련 전문지식을 쌓았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승마,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김 실장이 가장 잘하는 종목은 브라질 유술인 '주짓수'다. 하버드대 재학 당시 주짓수를 처음 경험했다는 김 실장은 현재 파란띠(2단)다. 하버드 한인유학생 회장 시절 주짓수 무술 동호회를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한화는 미래먹거리로 태양광사업을 선정,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2009년 대우조선 인수 실패 이후 한동안 M&A 시장에서 잠잠하다가 이듬해 4,341억원을 들여 솔라펀파워(현 한화솔라원)을 차지한 이후 한화는 그룹의 미래를 태양광사업에 건 상태다.

이는 투자규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승연 회장은 올해 초 계열사 대표들이 참석하는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태양광사업의 투자금액을 전년(1조6,000억원)대비 21% 늘어난 1조9,300억원으로 책정했다. 한화케미칼을 포함, 모든 계열사가 뛰어들어 원료부터 발전사업까지 수직계열화된 태양광사업에 적극 뛰어든 것이다.

한화 태양광사업의 중심에는 김동관 실장이 있다. 김 회장은 지난해 12월 태양광사업을 지속할 것이라 천명하고 장남인 김 실장을 한화솔라원 본사가 있는 중국 상하이 현지로 보냈다. 이후 김 실장은 한화솔라원의 경영전략과 집행을 아우르며 한화의 태양광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 8월 김 회장이 구속된 이후 한화의 태양광사업이 좌초되지 않았던 것도 김 실장 덕분이라는 평가다. 한화는 김 회장이 구속된 지 불과 열흘만인 8월 27일 세계적 태양광 셀ㆍ모듈 제조업체인 독일 큐셀 인수를 확정지었다. 그룹 총수의 공백과 상관없이 대규모 M&A가 가능했던 것은 태양광사업의 실질적인 주체가 김 실장이었기에 가능했다.

김 실장의 공격적인 경영으로 2010년 출범 이후 줄곧 이어져 오던 한화솔라원의 적자 폭은 개선되고 있다. 여기에 한화케미칼이 여수에 건설 중인 1만톤 규모의 폴리실리콘 공장이 완공되어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태양전지-모듈-태양광발전의 수직계열화가 완성될 경우 그룹의 재정적 지원을 등에 얻고 있는 한화의 태양광사업은 글로벌 경쟁사들과의 치킨게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족한 지분확보가 문제

김승연 회장은 1981년 부친 김종희 한화 창업주의 타계로 그룹 총수에 올랐다. 김동관 실장이 29세가 되면서 총수 등극 당시 부친의 나이와 같아진 올해, 공교롭게도 김 회장의 공백이 발생하며 한화의 후계구도가 다시금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젊은 나이에 그룹의 총수에 오르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김 회장은 아들인 김 실장에 대한 경영수업을 확실히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입사 때부터 자신과 함께 글로벌 현장을 돌게 한 점이나 그룹의 미래먹거리인 태양광사업을 맡겨 경영실력을 키우게 하려 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김 회장의 구속이라는 피치 못할 상황은 김 실장의 대권 승계 시기를 좀 더 앞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김 회장 구속 이후 김 실장은 그룹의 주요 회의에 참석하며 경영 전면에 나설 준비 중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완전한 승계를 위해 선행돼야 할 지분확보가 아직 미진하다는 점이다. 한화는 총 31개의 고리를 통해 순환출자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중 가장 핵심이 되는 계열사는 (주)한화로 22개의 고리와 연관돼있다. (주)한화의 지분을 확보하면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김 실장은 (주)한화의 지분 4.44%를 보유하고 있다. 2003년 10월 한화증권이 보유했던 (주)한화의 지분 2%를 처음으로 매입한 이후 수차례의 매입과정을 거치며 현재에 이르렀다. 김 회장(22.65%)에 이어 2대주주에 올라 있지만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해 지주회사 지분을 확보하는 여타 총수 자제들처럼 하기에는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눈치가 보이는 까닭이다. 경제개혁연대는 "2005년 (주)한화가 한화S&C 주식을 김동관 실장에게 저가로 매각했다"며 2008년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주주명부 열람 가처분신청을 낸 바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