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이 긴장하고 있다. 국세청이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에 팔을 걷어붙인 때문이다.

사실 아모레퍼시픽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규모는 수백억원 수준으로 타기업에 비해 크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문제는 내부거래 비율. 그룹 내 '지원사격' 없이는 자생이 어려울 정도다. 출자 구조도 문제다. 서 사장이 해당 계열사들 지분의 절반 이상을 간접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개인회사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일감 몰아주기의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세액은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려되는 건 기업 이미지 하락이다. '내부거래를 통해 오너가 배를 불리고 회사가 뒤처리를 한다'는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거래·출자 비율 높아

국세청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위한 사전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세청은 재벌가 오너가의 가족관계등록자료를 수집해 특정 법인들과 관련한 '가계도'를 구축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경배 사장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일감 몰아주기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업들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건 아모레퍼시픽이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최대 화장품 전문 기업으로 지난해 매출만도 2조5,000억원에 이른다.

아모레퍼시픽은 삼성, 현대차, SK 등 국내 유수의 기업에 비해 규모와 매출에서 뒤처지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감 몰아주기 과세와 관련해 비상한 관심을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부거래와 오너가 출자 비율이 타기업에 비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먼저 퍼시픽패키지. 포장인쇄 전문업체인 이 회사는 사실상 그룹에 매출을 의존하다시피 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435억원 중 85%인 373억원을 그룹 내 계열사인 아모레퍼시픽(250억원), 태평양제약(9억원), 에뛰드(4,800만원)와의 거래를 통해 올렸다. 2010년에도 총 308억원 가운데 255억원(82%)의 매출을 내부거래를 통해 창출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계열사인 퍼시픽글라스의 매출 대부분도 '안방'에서 나왔다. 퍼시픽글라스는 지난해 총 매출 611억원 가운데 301억원(49%)을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도 50~55%의 내부거래 비율을 유지했다.

오너가의 출자 비율도 돋보인다. 이들 회사의 최대주주는 지주사인 아모레퍼시픽그룹이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퍼시픽패키지와 퍼시픽글라스의 지분 99.36%, 100%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또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최대주주는 지분 51.37%를 가진 서 사장이다. 이들 회사가 서 사장의 개인회사라는 말이 나도는 이유다.

증여세 내며 사업해야

이들 회사는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일감몰아주기 과세법안의 칼날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법규 적용대상은 특수관계법인으로부터 정상거래비율을 초과한 일감을 받은 수혜법인 지배주주와 그 친족(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중 사업연도 말 기준으로 수혜법인에 3% 이상을 출자한 대주주(개인 또는 법인) 등이다.

세법시행령에서 규정한 정상거래비율이 30%인 것을 감안하면 이를 초과하는 매출은 과세 대상이 된다. 퍼시픽패키지와 퍼시픽글라스의 경우 지난해 기준 약 65%, 20%씩에 해당하는 내부거래 매출에 세금이 추징되는 식이다.

세무업계에 따르면 서 사장이 이들 회사에 증여한 것으로 간주되는 증여의제이익은 세후영업이익에 정상거래비율 초과분을 곱한 뒤 여기에 보유지분에서 한계보유비율(3%)를 차감한 비율을 곱해서 계산된다. 보유지분은 간접출자비율도 포함된다.

이들 회사의 지난해 매출을 기준으로 이 공식을 적용, 추산해보면 서 사장의 증여의제이익은 퍼시픽패키지와 퍼시픽글라스가 각각 10억원과 2억원씩이다. 증여세율이 5억원 이하에서 20%, 10억원 이하에서 30%가 적용되는 점을 감안하면 어림잡아 3억4,000만원의 정도의 세금이 부과되는 셈이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법안은 국회를 통과, 발효되고 있지만 당장 과세가 시작되거나 과거 미납분을 포함한 세금폭탄이 부과되는 건 아니다. 소급과세를 적용하지 않기로 한데다가 기본적으로 법인에 대한 과세제도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제도가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건 올해 법인세 신고납부가 완료되는 내년 3월 이후다.

그렇다고 당장 내부거래 비율을 줄이긴 어렵다. 해당 회사들의 의존율이 너무 커 사실상 자생력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회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세금을 내면서 사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미지 손상이 더 큰 문제

사실 수억원 규모의 세금은 아모레퍼시픽 입장에선 그리 큰 돈이 아닐 수도 있다. 서 사장의 지난달 말 기준 지분가치는 무려 2조6,432억원에 이른다. 올해 초보다 8,741억원(49.4%) 늘어난 규모다. 서 사장은 현재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쟁쟁한 재벌 총수를 제치고 국내 주식부자 4위에 올라 있다.

문제는 이미지 추락이다. 그러잖아도 상생이 재계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고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증여세를 추징당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세간의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내부거래를 통해 오너가 배를 불리고 그 책임은 회사가 진다'는 시선이 부담이다. 아모레퍼시픽은 "해당 계열사들이 업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어 해당 회사와 거래를 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기업에서 '이미지'는 가장 중시되는 부분 중 하나다. 여기에 문제가 생길 경우 자칫 회사의 근간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업계에서 아모레퍼시픽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