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2010년 '스마트폰 위기' 극복 모토로라·노키아·애플 차례로 넘어서
"인재·기술만이 살길이다" 경영철학


로열티 지불하던 일본 미쓰비시에 2004년 되레 돈 받고 기술 전수
'현장 확인·품질 우선' 시종일관 고수

'억만장자(億萬長者)'

영어의 billionaire에서 따온 말로 재산이 아주 많은 사람을 의미한다. 과거 '부자'의 대명사로 불리던 '백만장자'는 사실상 그 의미를 잃었지만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의 '억만장자'는 여전히 부의 척도로 기능하고 있다. 하물며 그 열 배인 100억달러를 보유하고 있다면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부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전 세계 억만장자 100위에 이름을 올렸다. 100억달러에 육박하는 재산으로 블룸버그 통신이 발표한 BBI(Bloomberg Billionaire Index: 억만장자지수)에 기록된 것이다. 부자들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함께 항상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 회장이지만 실제로 전 세계의 100대 억만장자 명단에 기록된 것은 처음이라 눈길을 끌었다.

정몽구 회장
반도체가 효자 노릇

이 회장을 억만장자로 만들어준 것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등 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약진이었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시장 선도자)'를 쫓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였던 삼성전자가 이른바 '베스트 팔로워(best follower: 최고의 추격자)'로 거듭나면서 자연스레 이 회장도 세계 100대 부자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셈이다.

기술, 자본 등 모든 것이 부족한 후발 기업이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선발 기업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전략은 해당 기업의 기술, 경영기법 등을 배우는 것이다.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한 나라로 꼽힌다. 급성장한 한국 경제의 중심에는 이른바 전차(電車)군단으로 불리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있었고 베스트 팔로워가 된 이들을 이끈 것은 , 의 리더십이었다.

삼성전자의 모태는 1969년 설립된 삼성전자공업이었다. 설립 당시 삼성전자는 세계는 물론 국내에서도 한참이나 뒤늦은 후발주자였다. 1958년 설립돼 국내 최초로 라디오와 전화기, 흑백TV 등을 내놓은 금성사(현 LG전자)를 비롯해 동양정밀, 동남샤프 등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상태였다.

출범 당시 변변한 기술을 지니고 있지 못했던 삼성전자는 일본전기(NEC)와 산요전기 등과 합작, 기술을 전수받았다. 1970년부터 백색가전 및 AV기기들을 생산하기 시작한 삼성전자는 1981년 흑백TV 수출실적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등 선도업체들을 따라잡았다.

삼성전자의 급성장 발판은 1974년 파산 위기에 직면한 한국반도체를 인수, 반도체사업에 진출한 최고위층의 지도력이다. "오늘의 삼성그룹을 만든 것이 삼성전자라면, 지금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것은 반도체사업"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사업 부문이지만 당시만 해도 반도체사업 인수는 모험에 가까웠다. 극심한 기술격차와 막대한 소요자금, 전문인력 부족 등 이제 막 전자업계에 발을 들인 삼성전자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들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난항을 겪던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이었다. 수십 차례 일본을 오가며 반도체 기술을 배워온 이 회장의 집념을 바탕으로 삼성전자는 1993년 마침내 메모리분야 세계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삼성전자는 1980년대 또 하나의 도약을 시도한다. 반도체 사업과 함께 삼성전자의 또다른 축을 지탱하고 있는 휴대폰 사업에 진출한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휴대폰 사업을 강화했던 삼성전자는 2002년 세계 3위 업체로 도약한 데 이어 올해 초 마침내 세계 최고의 휴대폰 제조업체가 됐다.

1967년에 태어난 현대자동차는 올해로 45세의 중년기업이 됐다. 당초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40년 아도서비스라는 소규모 자동차 수리공장을 만들어 자동차 부문에 입문했고, 해방 이후 현대자동차공업사로 명맥을 이어갔다. 정 명예회장은 미군 병기창의 하청을 맡아 엔진 교체를 해주고 낡은 일본차를 고치는 게 고작이었던 현대자동차공업사를 꾸리며 "언젠가는 완성차를 만들겠다"는 꿈을 꿨다고 전해진다.

완성차에 대한 정 명예회장의 꿈은 1967년 현실로 다가왔다. 당시 국내에 진출한 포드와의 합작으로 출범한 현대자동차는 국산화율 21%의 코티나를 처음으로 생산했지만 성능이 받쳐주지 못해 고전했다. 정 명예회장은 포드의 인색한 기술이전을 코티나의 주요 실패 원인으로 꼽고, 고유모델 개발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탄생한 게 1976년 선을 보인 '포니' 다.

첫 고유모델 포니 출시

국내 첫 고유모델 포니는 현대자동차가 도약의 첫 시동을 켠 것으로 평가된다. 이탈리아 디자인사에 스타일링 및 설계용역을, 유럽 자동차업계의 최고 스타일리스트인 조우지 아로에게 차체 디자인을 맡기는 등 당시로서는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 결과는 대성공. 포니는 국내시장 점유율 60%를 넘기고 1984년 단일 차종으로 50만대 생산은 돌파하는 큰 인기를 끌었다.

포니의 성공에 고무된 현대자동차는 엑셀(1985년), 그랜저(1987년), 소나타(1988년)를 생산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특히 엑셀의 경우 미국진출 첫해 20만3,000대가 판매되며 '포춘'이 선정한 '1986년 미국 10대 상품'에 꼽히기도 했다.

의 자동차 행보는 현대자동차가 아닌 현대정공에서 시작됐다. 현대자동차써비스를 경영하며 자동차사업에 대한 감을 키웠던 정 회장은 1991년 국내 최초의 사륜구동 승용차인 갤로퍼를 내놓은 데 이어 싼타모까지 성공시키며 한국 자동차업계에 한 축으로 우뚝 섰다.

현대자동차가 또 한 번 도약한 것은 1998년 열린 국제입찰에서 포드 등을 제치고 기아자동차 인수에 성공하면서부터. 기아자동차 인수로 국내 자동차 시장의 70~80%를 차지한 현대자동차는 안정적인 국내 시장과 사령탑인 정 회장의 진두지휘를 바탕으로 해외에서도 승승장구를 거듭, 현재 글로벌 '빅5'에 올라있다.

카를로스 슬림
재계 1, 2위를 다투고 있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각각 전자와 자동차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사업 분야도 전혀 다르고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삼성전자-현대자동차지만 같은 점은 있다. 자신의 영역에서 '패스트 팔로워'를 넘어 '베스트 팔로워'(best follower: 최고의 추격자)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을 꼽을 수 있다. 국내 언론들이 '퍼스트 무버', '패스트 팔로워'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게 된 것은 애플과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싸움이 본격화되면서부터다.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을 선보이며 스마트폰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을 당시, 삼성전자 휴대폰사업은 여전히 피처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며 통신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미완성작인 옴니아 시리즈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이폰과 비교해 소프트웨어ㆍ하드웨어 모두 열세에 있던 옴니아 시리즈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고, 때마침 닥친 글로벌 경기침체까지 겹쳐 삼성전자 휴대폰사업은 붕괴 직전까지 갔다.

쓰러져가던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을 되살린 것은 경영 일선에 복귀한 이었다. 이 회장은 무선사업부를 전면에 배치하는 체질 개선으로 초강수를 뒀고, 삼성전자 휴대폰 기술의 총집약체인 갤럭시S를 재빠르게 내보였다. 갤럭시S는 7개월 만에 전세계적으로 1,000만대 판매고를 올리며 삼성전자의 텐밀리언셀러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4월 출시된 갤럭시S2와 올해 선보인 갤럭시S3 또한 각각 출시 5개월, 2개월 만에 1,00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갤럭시S 시리즈의 획기적인 성공을 기반으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의 '퍼스트 무버'인 애플을 넘어설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패스트 팔로워'에서 '베스트 팔로워'로 거듭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피처폰 시장에서도 글로벌 1위에 올라 있다. 모토로라, 노키아라는 걸출한 '퍼스트 무버'들을 제친 결과다.

삼성전자가 휴대폰사업을 처음 시작한 1980년대 후반, 처음 맞닥뜨린 강적은 1970년대부터 이미 휴대폰사업을 해왔던 모토로라였다. 도시바로부터 기술을 도입한 삼성전자는 1986년부터 휴대폰 자체 개발에 들어갔고 1988년에는 모토로라 휴대폰 절반 크기의 모델들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이후 휴대폰의 사양, 크기, 무게 등을 대폭 개선해나간 삼성전자는 1994년 최초의 디지털 휴대폰인 애니콜을 출시하며 마침내 모토로라를 따라잡았다.

빌 게이츠
모토로라라는 큰 산을 넘어선 삼성전자는 휴대폰 업계를 지배하고 있던 노키아의 아성에도 도전했다. 삼성전자가 피처폰 시장에서 14년 동안 1위를 고수했던 노키아를 처음으로 제친 것은 지난해 4분기였다. 이후 애플의 도전으로 잠시 주춤했던 삼성전자는 올해 두 분기 연속 글로벌 1위에 오르며 안정적인 선두가 됐다. 휴대폰 시장의 변방에 있었던 삼성전자가 23년 만에 '퍼스트 무버'들을 제친 것이다.

미쓰비시 추월 도요타 뒤쫓아

삼성전자가 따라잡아야만 했던 '퍼스트 무버'가 모토로라, 노키아, 애플이었다면 현대자동차에는 미쓰비시자동차(이하 미쓰비시), 도요타자동차(이하 도요타)가 있었다.

포드와의 합작으로 탄생한 현대자동차이지만, 첫 고유모델은 미쓰비시자동차의 도움으로 만들 수 있었다. 삐걱거리던 포드와의 관계를 정리한 후 마땅한 기술제휴 회사를 구하지 못했던 현대자동차에게 미쓰비시는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다.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로부터 차체와 엔진 변속기에 대한 생산기술을 얻어 포니를 만들었다.

현대자동차가 미쓰비시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은 포니가 출시된 지 15년이 지난 1991년이었다. 그전까지 미쓰비시에 로열티를 지불, 엔진 기술을 사서 써왔던 현대자동차는 1991년 마침내 독자 기술로 알파엔진을 개발했다. 1984년 구보 도미오 당시 미쓰비시 회장의 "용인 마북리 엔진연구소를 폐쇄하면 로열티를 절반으로 깎아주겠다"고 하던 압박을 이겨낸 결과다. 이후 현대자동차는 2004년 개발한 세타엔진을 미쓰비시에 로열티를 받고 역전수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아만시오 오르테가
스승격인 미쓰비시를 기술로 넘어선 현대자동차가 맞닥뜨린 산은 도요타였다. 제한적인 내수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자동차 왕좌에 올랐다는 점에서 도요타는 그동안 현대자동차의 롤모델이나 마찬가지였다. 2008년부터 연평균 10%의 성장을 거듭한 현대자동차는 2010년 처음으로 글로벌 5위에 올랐고, 같은 기간 도요타는 대규모 리콜사태, 대지진으로 인한 부품조달난 등 불운을 거듭하며 하향세를 보였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상반기 글로벌 경제 위기감 속에서 최대 실적을 이끌어내며 도요타를 바짝 뒤쫓고 있는 상태다.

그룹 및 총수 순위도 상승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베스트 팔로워'가 되면서 그룹 및 총수의 글로벌 순위 또한 크게 올랐다.

글로벌 브랜드 평가 컨설팅업체인 브랜드 파이낸스는 세계 500대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평가, 지난 8월 23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해 18위에서 올해 6위로 뛰어올랐다. 브랜드 파이낸스에 따르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382억달러(약 42조200억원)로 평가돼 지난해(215억달러)보다 7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브랜드 가치의 상승으로 삼성은 지난해 높은 순위에 있었던 GE, 코카콜라, 도요타, HP, 맥도날드 등 세계적인 기업들을 제치는 쾌거를 이뤘다.

현대의 브랜드 가치도 크게 상승했다. 현대자동차를 앞세운 현대의 브랜드 가치 평가액은 131억달러를 기록, 전년(44억달러)대비 198%나 폭등했다. 브랜드 가치가 크게 늘어나며 순위 또한 230위에서 63위로 수직 상승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11일 리카싱 청콩그룹 회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성공으로 이건희, 의 자산 또한 크게 늘었다. 이 회장은 지난달 22일 블룸버그 통신이 발표한 BBI(Bloomberg Billionaire Index: 억만장자지수)에 이름을 올렸다. 이 통신에 따르면 이 회장의 순자산은 100억달러(약 11조원)에 육박했다.

평소 40위까지만 집계하던 BBI가 100위까지 집계하면서 이 회장은 순위에 이름을 올렸으나 정 회장의 순위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 21일 종가 기준으로 정 회장의 보유주식 평가액은 7조2,351억원에 달했다. 10조7,073억원을 기록한 이 회장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국내 2위에 올라있는 상태다.

총수 리더십이 베스트 팔로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베스트 팔로워'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재계 관계자들은 이건희, 의 리더십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아무것도 없었던 척박한 토양에 선대 회장들이 씨앗을 뿌려놨다면 이 회장, 정 회장은 그 씨앗을 남부럽지 않은 거목으로 일으켜 세웠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인재경영'과 '기술경영'으로 요약된다. 이는 삼성의 경영이념인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의 발전에 공헌한다'에 잘 나타나 있다.

이 회장은 삼성의 주요 고비때마다 인재경영을 최대 전략으로 강조해왔다. 2002년 인재전략사장단 워크숍에서 "200~300년 전에는 10만~20만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 살렸지만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의 직원을 먹여 살리는 인재경쟁의 시대, 지적 창조력의 시대다"라고 설파했다. 이 회장이 얼마나 인재경영을 중요시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실제로 이 회장은 디자인 경영 강화를 위해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크리스 뱅글과 계약하고 애플과의 특허소송전을 위해 퀄컴 출신의 특허전문가도 영입하는 등 외부 우수 인재 영입에도 적극적이다.

인재육성과 함께 이 회장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는 것은 기술이다. 반도체, 휴대폰 등 삼성전자가 '베스트 팔로워'에 올랐던 분야들은 대부분 막대한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었다. 특히 휴대폰사업의 경우 피처폰에 집중하느라 스마트폰 체제로의 진입이 늦었음에도 짧은 기간에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 갤럭시S라는 걸출한 모델을 만들어내며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었다. 이 회장이 강조했던 기술경영이 낳은 결과로 볼 수 있다.

정 회장은 '현장경영', '품질경영'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정 회장의 현장경영은 2008년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며 빛을 발했다. 정상화에만 적어도 5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회사 내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은 일주일에 두세 차례씩 화성공장과 소하리공장, 광주공장을 번갈아 찾으며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현장으로 출퇴근하는 정 회장의 노력에 힘입어 기아자동차는 인수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정 회장은 요즘에도 매년 수차례 해외법인을 방문해 생산과 판매, 품질 유지 현황을 점검하는 '글로벌 현장경영'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고 전해진다.

한때 저렴한 가격이 제일 큰 경쟁력이었던 현대자동차가 유럽, 북미 등 소위 자동차 선진국에서도 찬사를 받게 된 배경에는 정 회장의 품질경영이 있었다. 해외시장 방문을 통해 품질 불량 차종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곧바로 회사 이미지 실추와 판매급감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인식한 정 회장은 끊임없이 품질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는 미국 최대의 소비자 잡지인 컨슈머리포트에서 선정하는 추천차량에 대부분 차종을 올려놓고 있다.

멕시코 통신재벌 1위


● 세계 100대부호 누가 포함됐나

김현준기자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이번에 이름을 올린 BBI(Bloomberg Billionaire Index: 억만장자지수)에서는 어떤 부호들이 최고를 다투고 있을까?

블룸버그 통신은 매 영업일마다 순자산 수치를 계산, 당일 오후 5시30분(뉴욕 기준)경 그날의 BBI를 발표한다. 그날의 주가 등에 따라 순위가 뒤바뀔 가능성이 큰 셈이다.

이 회장이 100억달러(약 11조원)로 100위에 이름을 올린 지난달 22일(현지시각) 1위를 차지한 사람은 멕시코 통신재벌인 텔맥스텔레콤 회장이었다. 슬림의 순자산 규모는 745억 달러에 달했다. 오랫동안 세계 1위 부호 자리를 지켰던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는 648억달러로 2위에 머물렀다. 인디텍스 회장은 531억달러를 기록하며 3위에 이름을 올렸고 워런 버핏은 481억달러로 4위가 됐다.

아시아권에서 최고의 부자는 홍콩의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이다. 왐포아의 자산은 264억원으로 전체 13위를 차지했다. 이 회장은 본래 40위까지만 집계되던 BBI 범위가 최근 100명으로 늘어나면서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편 삼성이 6위에 오른 브랜드 파이낸스의 브랜드 가치 평가액 순위에서는 애플이 수위를 차지했다. 애플의 브랜드 가치는 706억달러로 지난해(295억달러)보다 139%나 급증했고 순위 또한 8위에서 1위로 올랐다.

2, 3위는 각각 475억달러와 458억달러의 브랜드 가치를 기록한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차지했다. 지난해 1, 2위를 차지했던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선전으로 순위가 한 계단씩 내려앉았다. IBM이 브랜드 가치 평가액 391억달러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뒤를 이었다. 이로써 브랜드 가치만으로 볼 때 1~4위 모두 IT업계가 차지하게 됐다.

브랜드 가치 평가액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순위가 상승했다. 그중에서는 삼성(6위, 382억달러)과 현대차(63위, 131억달러)에 이어 국내 기업 3위인 LG가 98억달러로 지난해 168위에서 87위로 도약했고 기아차도 397위에서 195위로 뛰어올랐다. 대우조선해양, KDB대우증권 등을 내세운 대우는 순위권 밖에서 250위로 올라섰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