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이광범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고영권기자
이광범(53) 변호사가 지난 9일 특별검사(특검)로 임명됐다. 이 특검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내곡동 사저 의혹을 규명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특검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해 논란을 종식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초 민주통합당은 특검 후보로 재야 출신 김형태 변호사와 부장판사를 지낸 이 변호사를 추천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여야 협의 불이행을 이유로 사실상 임명을 거부했다.

그러나 특검법에는 야당이 추천하면 3일 이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명시돼 있다. 대통령이 야당의 추천 후보를 거부한다면 실정법 위반이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청와대는 장고 끝에 이 변호사를 특검으로 임명했다.

오는 16일부터 수사에 착수하는 특검팀은 앞으로 30일간 활동한다. 특검팀은 한 차례에 한해 수사기간을 15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따라서 내달 중순 이후에는 수사 결과가 나온다. 특검팀은 청와대 경호처가 사저 터를 매입한 경위, 부동산실명제 위반 여부 등에 대해 수사할 계획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했겠지만 청와대의 이 특검 임명은 자충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이 특검의 스타일상 뭔가 해낼 것이다.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특검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광범이라면 한다"

이 특검은 광주일고-서울 법대를 나와 제23회 사범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이 특검은 서울민사지법 판사, 광주지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서울지법 판사, 광주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2월17일자로 법복(法服)을 벗었다.

판사 경력 25년을 자랑하는 이 특검은 법원 내에서 '걸물'로 통한다. 이 특검은 사석에서 직원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릴 뿐 아니라 술도 제법 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로 잔뼈가 굵은 이 특검이지만 전형적인 '판사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지인들의 대체적인 전언이다. 이 특검은 ▦탁월한 두뇌 회전 ▦독보적인 카리스마 ▦뛰어난 조직 장악력 등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특검은 퇴임 후 대형 로펌들의 끈질긴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정중하게 고사하고 조용히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이 특검은 현실적인 이익보다 더 큰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지난해 2월 이 특검이 법복을 벗은 이유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친형인 이상훈 대법관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한 충정"이라고 설명한다. "형만한 아우는 없다지만 이 특검은 예외"라는 말도 들렸다.

판사 출신인 이 대법관은 2006년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사건의 항소심에서 석명권(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하기 위해 당사자에게 입증을 촉구하는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유명하며 지난해 2월 대법관에 올랐다.

이 특검은 수사팀 실무자들에게 기강 확립 촉구와 함께 수사 관련 기밀 누설 절대 금지 등 엄명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이 특검과 검찰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시작됐다는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과거 특검팀의 경우 수사 진행 과정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외부로 새나가는 바람에 애를 먹었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특검 체제 하에서는 이 같은 일이 좀처럼 없을 거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최교일의 김 빼기?

지난 8일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다. 최 지검장은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사건 수사와 관련해 "대통령 일가가 부담스러워 사건 관련자에 대해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최 지검장은 이날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사저 부지 매입에 관여한 김모씨에 대한 배임죄 적용 여부와 관련해 "형식적으로 보면 배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면 김씨를 기소해야 하는데, 기소하면 배임에 따른 이익의 귀속자가 대통령 일가가 된다"고 밝혔다.

"대통령 일가를 배임 귀속자로 규정하는 게 부담스러워 (김씨를) 기소 안 한 걸로 보면 되냐'는 질문에 최 지검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파문이 확산되자 최 지검장은 "배임죄는 애초에 성립이 안 된다는 전제로 상황 설명을 했다. 배임죄가 되는데도 봐줬다는 식으로 말한 것처럼 왜곡하지 않기 바란다"고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경호처 소속이었던 김씨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 매입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경험이 있는 인물로 수년 전 퇴직했으나, 이 대통령의 사저 부지 매입 업무를 맡기 위해 다시 기용됐다.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최 지검장의 발언을 두고 의미심장한 해석이 나온다. 최 지검장의 발언은 출입기자들과 격식 없는 식사 자리에서 비(非)보도를 전제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한상대 총장 등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특검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검찰은 "이제 기소 여부는 특검의, 유무죄 판단은 법원의 몫이 됐다"며 담담해한다.

그렇지만 김씨가 기소된 뒤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은 또 한 번 체면을 구기게 된다. 최 지검장이 MB를 직접 거명한 것이 특검팀에 대한 '김 빼기'로도 해석되는 이유다.

한편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배임 등의 혐의로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와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등 7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그러나 지난 6월 내곡동 사저 사건의 수사 결과 발표 때 이 대통령과 김인종 전 경호처장 등 관련 인사 7명에 대해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MB 내곡동 사저 사건=청와대 경호처는 지난해 5월 내곡동 9개 필지 2,600m²를 54억원에 매입하면서 이 중 3개 필지 848m²를 시형씨와 공동 지분으로 했다. 그런데 시형씨는 이 터를 공시지가(당시 12억8,697만원)보다 10%가량 싼 11억2,000만원에 매입한 반면 경호처는 공시지가(당시 10억9,385만원)보다 최대 4배(42억8,000만원)를 더 주고 샀다. 결과적으로 시형씨가 부담해야 할 땅값이 낮아져 6억~8억원의 이득을 보게 했다는 것이다. 김씨가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지가 상승 요인 등을 판단해 매매 가격을 결정한 것이 원인이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