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16주년을 맞으며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으로 불리는 두산의 4세 시대가 열리고 있다. 약간의 불협화음은 있었지만 재계에서 보기 드문 '형제경영'을 완성한 두산이 '사촌경영' 시대를 맞이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4세들이 눈에 띄고 있는 것이다.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부사장도 두산가 4세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다.

두산의 전략·기획통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부사장은 1968년에 태어났다. 재계에서 1968년생 원숭이띠들이 갖는 위상은 각별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을 비롯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허용수 GS 전무,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조현준 효성 사장, 이우현 OCI 부사장 등 향후 재계를 이끌어나갈 다수의 젊은 CEO들이 박 부사장과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친구들인 까닭이다.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 등 각각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신임하는 사위들도 1968년생이다.

보성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박 부사장은 미국 뉴욕대에서 MBA과정을 밟았다. 동생 박석원 두산엔진 상무와 사촌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 박태원 두산건설 부사장 등 두산가 4세들은 대부분 뉴욕대 MBA 동문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박 부사장이 처음 택한 직장은 대한항공이었다. 첫 경험을 다른 회사에서 시작함으로써 실전감각을 익히기 위함으로 읽힌다. 짧은 대한항공 생활을 마치고 1993년 두산음료 사원으로 입사한 박 부사장은 (주)두산의 인사와 재무를 총괄할뿐더러 그룹 전체의 구조조정을 사실상 진두지휘해온 전략기획본부 트라이씨(TRI-C)팀에서 3년간 머무르며 전략ㆍ기획통으로서의 경험치를 쌓기 시작했다.

박진원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두산산업차량은 지난해 세계 3대 산업 디자인상 가운데 하나인 'iF 제품 디자인상 2012' 본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수상작인 미래형 콘셉트 지게차 'CF(Concept Forklift)'.
2004년 (주)두산 전략기획본부 상무로 승진한 박 부사장은 2005년 두산인프라코어로 자리를 옮겨 기획조정실 내 경영기획을 담당했다. 2008년 두산인프라코어 산업차량BG(business group)장 전무에 오른 박 부사장은 지난해 5월 일부 BG장의 직급이 상향조정됨에 따라 부사장 타이틀을 달았다. 2011년 7월부터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산업차량BG가 독립해 출범한 두산산업차량의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아 독자적인 경영행보를 걷고 있다.

독립 이후에도 승승장구

박진원 부사장이 BG장을 맡은 2008년 당시 두산인프라코어의 산업차량 사업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신용경색 및 급격한 경기침체로 인해 전반적인 부진을 겪고 있었다. 한때 그룹의 캐시카우로까지 불리던 산업차량BG가 적자의 늪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박 부사장이 BG장을 맡은 이후 혁신적인 구조조정과 중국시장 개척 등을 통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박 부사장은 산업차량BG를 연간 5,000억원의 안정적인 매출창고로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두산 경영대상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박 부사장은 산업차량BG가 두산인프라코어에서 2011년 독립해 나온 두산산업차량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두산산업차량은 출범 원년인 지난해 말 세계 3대 산업 디자인상 가운데 하나인 'iF 제품 디자인상 2012' 본상을 수상하는 등 실적과 명성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트위터 아이디(LIFTLIFT)에서도 알 수 있듯 산업차량에 대한 애정이 깊은 박 부사장이니만큼 앞으로도 관련 분야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 것이라 기대되고 있다.

예술·인문학 조예도 깊어

"서울 도착. 조오타! 근데 이젠 많이 걷는 여행을 하고 나면 무릎이 엄청 아프다. 평소 운동 안 한 영향에 sign of aging(나이 먹는 징후)"

지난 8일 박진원 부사장의 트위터에 올라온 글이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시절부터 SNS를 통한 소통을 즐겨왔던 박 부사장은 트위터로 소통의 장을 옮긴 이후 'LIFTLIFT'라는 아이디로 열심히 활동 중이다. 요 며칠간 박 부사장의 트윗에는 부친인 박용성 회장과 함께 다녀온 스페인 가족여행에 관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좋은 관광명소 및 맛있는 식당에 대한 박 부사장의 소개와 이를 부러워하는 지인들의 리트윗이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박 부사장은 박용만 두산 회장을 필두로 박지원 부회장, 박태원 부사장 등 재계의 트위터 왕국이라 부를 수 있는 두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소통을 즐기는 박 부사장은 예술에 대한 조예도 상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박 부사장의 관심분야는 미술, 클래식, 발레 등 다양하다. 박 부사장은 1968년생 동갑내기인 정용진 부회장, 허용수 전무, 이우현 부사장, 김재열 사장 등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 재계 후원회인 '박물관의 젊은 친구들(Young Friends of the Museum : YFM)' 회원으로 함께 하고 있으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후원회장도 맡은 바 있다. 관심이 후원으로까지 이어진 좋은 예다.

박 부사장은 역사와 철학 등 인문학에도 관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황남대총전을 보고'라는 글을 국립중앙박물관 잡지인 <박물관사람들>에 싣기도 하고 지난해에는 에 '메디치가를 아는가? 역사는 최고의 케이스스터디다'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지분·나이로는 4세 중 3번째

박용만 회장의 그룹 회장 취임 이후 재계의 시선은 3세 경영시대의 막바지에 다다른 두산의 미래에 주목하고 있다. 두산 특유의 '형제경영'을 이을 '사촌경영' 시대의 주역이 누가 될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두산가 4세 중 차기 대권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박용만 회장의 뒤를 이어 (주)두산의 회장을 맡게 된 박정원 회장이다. 고 박두병 두산 초대회장의 장남인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맏아들로 명분이 확실한데다 그룹의 지주회사인 (주)두산의 지분을 가장 많이 확보(2012년 상반기 기준 6.40%)하고 있는 까닭이다. 현재 4세들 가운데 유일하게 회장 직함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박정원 회장의 굳건한 위치를 보여준다. 다음으로는 박정원 회장의 동생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이 꼽힌다. 박지원 부회장은 (주)두산의 지분을 4.27% 보유하고 있다. 직함도 박정원 회장 다음으로 높다.

(주)두산의 보유지분으로 따지면 박진원 부사장은 박지원 부회장 다음 순위다. 박 부사장은 (주)두산의 지분을 3.63%를 확보하고 있다. 나이로도 1965년생인 박지원 부회장에게 밀린다. '형제경영' 전통에 따르면 박정원 회장, 박지원 부회장에 이어 경영권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두산이 '사촌경영' 체제로 넘어가는 데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장남이라는 명분이 있어 경영권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