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열한 거리’의 한 장면.
전국 조직폭력배의 2012년 7월말 현재 조직원수는 5,400명 가까이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강기윤 새누리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이는 5년 전인 2007년 5,269명과 비교해 규모면에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역별로도 소폭의 차이만 있을 뿐 별다른 변화는 감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검거율은 줄고 있다. 조폭들이 활동무대를 '화이트칼라 범죄'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구속율도 함께 낮아지고 있다. 조폭들이 화이트칼라 범죄를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으로 전폭적인 법률적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처럼 조폭들의 서식환경이 좋아지고 있는 반면, 수사환경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범죄는 혐의를 적용하기 쉽지 않은데다, 임의동행ㆍ압수수색ㆍ구속 등의 요건은 강화되고 있다. 당연히 경찰이 조폭 수사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사이 조폭들은 합법과 불법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며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조폭수 불변ㆍ검거율은 하락

경찰이 파악한 전국 조직폭력배는 217개 조직에 조직원은 5,384명으로 파악됐다. 특별시 및 광역시 중에서는 서울이 조직 22개, 조직원 484명으로 가장 많았다. 부산은 23개 조직 381명이 활동해 인구 대비 조직원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밖에 ▦광주(8개ㆍ322명) ▦대구(11개ㆍ310명) ▦인천(13개ㆍ297명) ▦울산(6개ㆍ197명) ▦대전(9개ㆍ144명) 순으로 조직원수가 많았다.

영화 ‘우아한 세계’의 한 장면
도청 소재지 별로는 경기도가 조직 29개, 조직원 912명으로 눈에 띄게 많았다. 이어 ▦전북(16개ㆍ410명) ▦경남(18명ㆍ400명) ▦경북(12개ㆍ391명) ▦강원(17개ㆍ264명) ▦충남(16개ㆍ252명) ▦충북(6개ㆍ252명) ▦전남(8개ㆍ233명) ▦제주(3개ㆍ137명) 순이었다.

경찰은 그 동안 조직폭력 범죄의 근절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폭력조직 규모는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전국의 조직과 조직원수는 ▦2008년 5,413명(221개) ▦2009년 5,450명(223개) ▦2010년 5,438명(216개) ▦2011년 5,451명(220개) ▦2012년 5,384명(217개)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폭력ㆍ갈취ㆍ사채ㆍ성매매ㆍ마약매매 등 조폭의 전통적인 업무영역과 관련해 구속되는 사례는 감소하는 추세다. 해당 혐의로 검거된 인원은 ▦2008년 5,411명(구속 1,468명ㆍ불구속 3,943명) ▦2009년 4,645명(구속 1,094명ㆍ불구속 3,551명) ▦2010년 3,881명(구속 884명ㆍ불구속 2,997명) ▦2011년 3,990명(구속 719명ㆍ불구속 3,271명) ▦2012년 7월말 기준 1,737명(구속 328명ㆍ불구속 1,409명)으로 줄고 있다.

경제범죄로 일터 옮겨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까닭은 뭘까. 경찰은 조폭들이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로 일터를 옮기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폭력조직의 수입원이 유흥주점 갈취나 사행성 불법영업 등에서 합법적인 영역으로 변하고 있다"며 "특히 최근 들어 건설업, 증권 투자업에 진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는 조폭이 그 동안 꾸준히 정부의 규제를 받아 온 경험에서 비롯 됐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폭계의 전설로 통하는 김태촌과 조양은은 각각 30년과 20년 이상을 철창 안에서 보내야 했다.

이에 따라 조폭들은 연예 등 각종 기획사와 건설업, 대부업, 게임업은 물론 심지어 기업 인수ㆍ합병(M&A) 시장에도 기웃거리고 있다. 그러면서 두목ㆍ부두목이란 호칭은 회장ㆍ사장으로 바뀌었고, 범죄는 점점 교묘하고 치밀해져 갔다.

관련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지난해 목포에서 활동하는 조폭이 증권사 주식실전투자 대회에서 우승한 고교생에게 주가 조작을 의뢰했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앞서 2010년엔 무자본으로 코스닥 상장업체를 인수한 뒤 빼돌린 회삿돈을 주가조작 자금으로 사용한 폭력조직원이 붙잡히기도 했다.

서식환경↑ 수사여건↓

이렇게 합법적인 사업을 가장해 세력을 확장하는 탓에 조폭은 그 어느 때보다 활개를 치고 있다. 반면, 경찰은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 과거 살인, 폭행, 범죄단체 구성 등의 혐의를 쉽게 적용할 수 있었던 반면, 경제범죄의 경우 단속 및 구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조폭들의 '서식환경'이 좋아지는 것과 반대로, 경찰들의 수사 여건은 어려워지고 있다. 먼저 사법부의 공판중심주의와 불구속 수사원칙의 강화로 수사여건이 불리해졌다. 임의동행ㆍ압수수색ㆍ구속 등의 요건이 엄격해진 것도 경찰이 조폭 수사에 난항을 겪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어렵사리 잡아놨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조폭들은 화이트칼라 범죄를 통해 이뤄낸 탄탄한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유력 법무법인이나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철창행을 피하고 있어서다.

실제 조폭의 구속율을 추산해 본 결과 ▦2008년 27.12% ▦2009년 23.55% ▦2010년 22.77% ▦2011년 18.02%로 감소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는 조폭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조폭들은 '합법'과 '불법'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며 국민들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그럼에도 '법 위에 군림하는' 이들을 제어할 장치는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조폭 발본색원을 위한 시급한 대책 마련이 절실한 이유다.

이와 관련, 강 의원은 "효과적인 조직폭력 범죄 대응을 위해서는 검찰과 경찰이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갖춰 조폭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폭 이름 어떻게 만들어지나
지역명·거점·두목 이름이나 별명 등 수사 편의 위해 경찰이 지어

'양은이파', '범서방파', 'OB파', '국제PJ파'….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악명 높은 조직폭력배의 이름이다. 그런데 이 조직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대체 조폭의 조직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경찰에 따르면 조폭 이름의 대부분은 검찰이나 경찰이 짓는다. 수사과정에서의 편의를 위해 조직의 특징에 맞춰 이름 붙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활동 지역이 이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범서방파가 대표적인 예다. 이 조직의 이름은 보스이던 김태촌이 17세 때 폭력사건으로 다른 10여명과 소년원에 들어갔을 당시 그가 살았던 지역인 '광산군 서방면'에서 유래됐다.

이후 김태촌이 광주에서 서울로 근거지를 옮기고 다른 조직을 흡수하면서 다른 세력까지 포괄했다는 의미의 '범(汎)'자를 붙여 범서방파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대구 동성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동성로파', 대구 향촌동을 근거지로 삼은 '향촌동파'도 지역명을 바탕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또 인천의 '부평식구파'도 활동지역 부평을 근거로 만들어졌고, '신오동동파'도 마산의 동네이름 오동동에서 이름을 따왔다.

조직의 근거지 및 집결지 인근 술집이나 음식점 등의 상호에서 조직명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1980년대 전국 3대 조폭 'OB파'의 전신인 '대호파'는 근거지가 광주시 충정로 일대 '대호다방'이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후 집결지를 광주시 충정로 5가의 레스토랑 'OB'로 옮기면서 조직명이 OB파로 바뀌게 됐다.

전남의 '국제PJ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광주시 충정로의 국제당구장과 PJ 음악감상실을 주요 집결지로 애용하면서 자연스레 국제PJ파로 불리기 시작했다. 광주시내 동아다방을 거점으로 한 '동아파'도 이렇게 붙은 이름이다.

 이밖에 광주시 내 공중전화부스 15개를 중심으로 활동한 조직은 '콜박스파'로 불렸고, 광주 '신양관광파'는 인근 신양관광호텔이 주무대였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됐다.

두목의 이름에서 따온 경우도 있다. 김태촌과 함께 조폭계를 양분했던 조양은의 조직 '양은이파'가 그런 경우다. 이밖에도 대전 '옥태파'와 '진술파', 서울의 '기종이파', 구미 '오영이파' 등도 모두 두목 이름에서 비롯됐다.

 두목 별명에서 착안한 경우도 있다. 서울 청량리 사창가 일대를 주름잡던 '까불이파'는 두목의 별명이 까불이였다. 인천 최대 폭력조직이었던 '꼴망파'와 서방파의 전신인 '번개파' 역시 두목의 별명에서 착안했다.

그렇다면 조폭들이 직접 스스로의 이름을 짓지 않는 까닭은 뭘까.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행법상 정해진 이름과 행동수칙 등이 있으면 '범죄단체'로 몰려 조폭의 우두머리는 최고 사형까지 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원도 가중 형벌 대상이다. 결국 조폭들이 조직명을 정하지 않는 건 무거운 형벌을 피하기 위해서인 셈이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