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홍석 부사장
'큰 大 믿을 信'이라고 말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회사가 있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대신금융그룹이다. 재벌 혹은 금융지주의 든든한 배경이 없는 대표적인 전업사인 대신증권은 요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며 전통 증권명가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 양홍석 대신증권 부사장이 있다.

평이한 시작, 초고속 승진

올해로 만 31세인 은 고(故) 양재봉 대신금융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이어룡 회장의 아들이다. 현대고를 거쳐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양 부사장은 졸업을 한 달여 앞둔 2006년 7월 공채 43기로 대신증권에 입사했다.

양 부사장의 말단 사원 시절은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너의 직계 가족임에도 본사가 아닌 선릉역 지점에서 사회생활 첫걸음을 뗀 양 부사장은 정수기 물 교체를 비롯, 영업직원들이 겪는 대부분의 일을 몸으로 체험하며 배웠다고 전해진다.

다소 평이하게 회사생활을 시작했던 양 부사장이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승진가도를 질주하기 시작한 것은 입사 2년 차를 맞은 2007년부터다. 2007년 5월 대신투자신탁운용 상무로 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양 부사장은 그해 10월 전무에 올랐고 이듬해 2월에는 부사장 직함을 달았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10개월 만에 임원 자리에 오른 것도 모자라 또다시 5개월, 4개월 만에 이뤄진 양 부사장의 승진행보는 공채 1기로 대신증권에 들어와 임원이 되기까지 10년 이상 걸렸던 부친 고 양회문 대신금융그룹 회장은 물론이고 여타 재벌 후계자들과 비교해봐도 파격적이다. 결국 양 부사장은 2010년 5월 대신증권 대표이사 부사장에 오르며 금융권 최연소 CEO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던 양 부사장의 승진 속도가 갑자기 빨라진 것에 대해 금융업 관계자들은 불행한 가족사를 최대 원인으로 꼽았다. 고 양회문 회장이 2004년 9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에 이어 2007년 1월 동생인 양홍준씨마저 불의의 사고로 변을 당하면서 당시 80대 고령이었던 고 양재봉 창업주가 후계 구도 정립을 앞당겼다는 해석이다. 양 부사장의 누나인 양정연 대신증권 동경사무소 부소장이 양씨가 작고한 2007년 초 급히 대신증권에 입사한 것도 이 같은 해석을 지원했다.

2010년부터 고모부인 노정남 전 대신증권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각자대표를 맡아왔던 양 부사장은 올해 노 사장의 퇴진과 함께 대표이사 자리에서 내려왔다.

유력한 대권주자

올해 5월 대표이사 직함을 내려놓고 등기임원에만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지만 그의 경영권 승계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대표이사에서 내려온 것마저도 원활한 후계구도를 위함이라는 해석이 있을 정도다.

대신증권 주주총회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융권에서는 노정남 사장의 연임을 예상하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비록 지난해 ELW(주식워런트증권) 부당 특혜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불려 나가는 곤욕을 치르긴 했지만 임기 6년 동안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이며 그룹 전체를 잘 꾸려왔기 때문이다. 노 사장이 고 양회문 회장 사후 양 부사장의 실질적인 경영 스승 역할을 해왔던 것도 연임설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노 사장은 결국 자진사퇴 형식으로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이에 일각에서는 "훌륭한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떠난다"는 노 사장의 발언을 바탕으로 '차기 대권주자인 양 부사장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노 사장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있던 양 부사장의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이라는 내용이다. 이 같은 의견에 대해 대신증권 측은 "노 사장의 퇴진은 본인 의견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한 바 있다.

경영능력 검증 안돼

문제는 경영권을 넘겨받기엔 이 너무 젊다는 것이다.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초고속승진을 거듭, 높은 직급에 올라있는 양 부사장이지만 아직까지 경영 능력이 충분히 검증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 일선에서 많은 경험을 해야 할 31세의 젊은 나이에 그룹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된 것이 오히려 양 부사장으로 하여금 제 역할을 차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노정남 사장이 물러날 때 함께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와 같은 여론도 큰 비중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취약한 지배구조도 문제다. 고 양회문 회장, 고 양홍준씨 사후 대신증권의 최대주주로 부상한 양 부회장이지만 지분율이 높지 않아 자칫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양 부사장을 비롯한 오너일가가 몇 년째 꾸준히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으나 미미한 수준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2012년 6월 말 기준 양 부사장은 대신증권의 지분 6.64%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룡 회장(1.35%), 양정연 부소장(1.02%), 노정남 사장(0.07%) 등 친족들의 지분과 양 부사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대신송촌문화재단(0.53%)의 지분을 모두 더한다고 해도 채 10%가 안 된다. 대신증권 자사주(10.29%) 및 우리사주조합(6.95%) 지분을 합해도 26.89% 수준이다. 이론상으로 제3자가 적극적으로 지분을 매집, 277%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는 순간 경영권이 넘어가게 된다. 이러한 까닭에 실제로 대신증권은 오랫동안 외국계 기업의 적대적 M&A설에 휩싸인 바 있다.

남은 것은 실적뿐

여러 이견에도 불구하고 차기 총수로 사실상 내정된 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경영수완을 드러내는 것뿐이다. 특히 삼촌의 품을 벗어나 잠시 숨 고르기를 하게 된 지금, 새롭게 대신증권의 수장이 된 나재철 대신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보좌하며 눈에 띄는 실적을 내는 것이 양 부사장에게는 필수적이다.

유럽 재정위기 등에 따라 증시가 출렁이며 상당수 증권사들의 실적이 급감한 지난해에도 대신증권은 영업수익 4조2,979억원, 영업이익 964억원, 당기순이익 907억원이라는 견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당기순이익의 경우 전년대비 22%나 증가하며 전통의 증권명가로서 체면치레를 했다.

관건은 수익성 다변화다. 수수료 인하 추세 등 증권업계 패러다임이 통째로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까닭이다. 다행히 대신증권은 지난해 6월 중앙부산저축은행(현 대신저축은행)을 인수하고 고유 자산운용부문과 홀세일 영업부문을 강화하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수익의 대부분을 브로커리지(주식매매중계수수료)에 의존하고 있던 것을 감안하면 바람직한 방향이다. 나 사장과 함께 그룹의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젊은 피' 양 부사장이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대신증권의 미래를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